[연재소설] moments_26

- 함께였던 그 모든 순간들 -

by 슈크림빵

"파스타가 어지럽데요."

그의 손아귀에서 빠져나온 포크는 접시 위로 몸을 던지며 그제야 참았던 숨을 내어 쉬었다.

"최후의 만찬인 만큼,, 여운을 남겨야지."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이 예문을 싫어합니다."

포크 한가득 파스타 면을 돌돌 말아 입 안에 넣고 오물거린 후에 다시금 아라는 채찍질을 했다.

"제사 지낼 시간 없다니까."

손목에 찬 시계를 연거푸 흔들어대고는 마치 제 것인 양, 손에 쥔 끝이 세 갈래로 갈라진 포크로 그의 파스타 면을 단단히 감아쥐고는 입 안 가득 밀어 넣었다. 호기로웠던 좀 전의 태도는 오간 데 없고 현저히 느려진 입의 움직임과 살짝 기울인 고갯짓은,, 참지 못하고 곧바로 평을 해댔다.

"이거였구나. 까르보나라는 전문 식당에 양보하세요~ 오늘의 교훈이네요."

그러고는 자신의 접시를 진호 쪽으로 슬며시 밀었다.

"입맛이 없네요."

뚱한 표정을 한 그를 빤히 보더니 아라는 작은 숨을 토해냈다.

"그렇다면 일어나요."

토마토소스로 범벅인 파스타가 그득한 접시를 들고 아라는 벌떡 일어났다. 그녀를 따라 거의 손도 대지 않은 접시를 들고 그 역시 자리에서 일어나자, 기다렸다는 듯 다른 이들이 곧바로 엉덩이를 붙였다. 삼켰다 이내 뱉어내느라 정신없는 스물네 개의 플랫폼 못지않게, 테르미니 역의 il Mercato Centrale 푸드코트 안도 총성 없는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지금의 상업적인 공간들은 철도사업의 민영화에 의한 것으로, 그중 가장 유명한 건 나이키 매장이라는. 1층으로 들어오면 티켓 오피스와 중앙의 전광판, 전에도 말했듯 1-10번 플랫폼은 도시와 도시를 오가는 고속 열차, 근교를 오가는 일반 열차 R, IC는 11-23번 플랫폼, 24번 플랫폼은 공항 익스프레스가 정차하는 곳이라는. official Baggage Service는 24번 플랫폼 쪽 출구 뒤쪽에, 화장실은 1번, 24번 플랫폼 쪽 지하에, 차량 렌트 역시 24번 플랫폼 쪽이나 이건 필요 없을 테고, 중앙시장이라 불리는 il Mercato Centrale는 착한 가격은 아니나 이탈리아의 다양한 요리를 빠르고 편하게 접할 수 있다는 장점 덕에 늘 분주하며, 위치는 24번 플랫폼 쪽, 단 까르보나라는 비추라는.."

슬쩍 새긴 웃음을 급히 지우고 곧게 세운 검지를 앞세워 진호를 지목하고는, 커다랗게 만든 눈을 내밀며 딱 떨어지는 말투로 아라는 말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하로 내려가면 파란색 바탕에 흰색으로 새긴 대문자가 반기는 곳,, 이곳은 무늬만 슈퍼마켓이지, 기념품이 될 만한 것들은 귀신같이 알고 비싸게 팔고 있으니, 게다가 한국 사람 호구되는 단골 가게이니 조심하길. 덧붙이면, 역사 안도 다를 거 없으니 지갑은 닫아 두시고, 그러나 빵은 사야죠. 10번 플랫폼 앞 파네라(PANELLA)는 현지인들의 맛집인데, 이 집이 두각을 나타낸 건 따로 있어요. 바로 터줏대감처럼 버티고 선 수동 레버로 커피를 내리는 기계,, 오늘날 자주 접할 수 없기에 눈도, 입도 즐기러 go!! 아~, 마지막은 내 취향인가? 아무튼.."

말끝에 흘긋 그의 표정을 살폈다. 바라만 볼 뿐 진호는 꿀을 잔뜩 퍼먹은 벙어리 행세를 하고 있었다.

"조그만 그 머리 칭찬해. 안 해줘요?"

"꽃놀이도 삼세번이면 질린다 하니까."

수긍하듯 아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인데. 참 열심히다."

"대충은 체질에 안 맞아서. 내가 먼저 출발하니 심심하면 여기저기 둘러보라고. 단언컨대, 색다른 경험이 될 테니. 그러게 시간차를 두고 오면 좀 좋아."

타고난 거짓말쟁이가 아님을 알기에, 맘에도 없는 말로 행여 들통이라도 날까 봐 아라는 부러 좌우를 둘러보았다. 이렇다 할 말은 없었지만, 그의 얼굴에도 서운함과 아쉬움뿐 아닌 여타의 감정들마저 공존하고 있었다. 헤어짐의 순간은 늘 아쉽고, 서먹하기에 아라는 선수를 쳤.

"만나고 헤어질 때 서양에서는 이런다지."

오른손을 쭉 내밀어 보란 듯이 흔들어대자 잠시 바라보던 그도 왼손을 내밀어 살며시 그녀의 손을 잡았다.

"토니의 역할은 여기까지.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거예요. 셜리.."

"불쑥하고, 문득하고 생각 날,, 그런?"

"자그마치 12일, 피렌체까지 더하면 대체.. 의학의 도움을 받기 전까지는 그러지 않을까."

에둘러 말하고는 운동화로 시선을 내리깔며 애먼 짓을 하는 아라였다. 짝을 찾지 못한 글자들은 입 안에서 웅성거렸고, 깊게 들이마신 공기는 한껏 꺾인 목으로 인해 헤집고 나올 방법이 없었다. 머물러 층층이 쌓인 그것들이 옥죄여 차츰 기도를 압박해 오는 듯했다. 안 되겠던지 어깨를 들썩여 재빠르게 숨을 내어 보내고는 그제야 고개를 들어 그와 마주했다. 흔들림 없는 시선은 여전했다. 그것은 주파 같기도, 추파인 것도 같았다. 해석이 안 되는 진동이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어색한 상황을 벗어나려 잡고 있는 손을 빼내려 했지만, 그럴수록 잡은 손에 가해지는 힘의 세기는 거세졌다.

"고마웠어요. 그 말 안에 다 담을 수는 없겠지만."

입술을 깨무는 것도 같고, 달싹이는 것도 같았다. 이런 행동으로 미루어 볼 때, 하고픈 말이 아직인 듯했다. 해서 아라는 그의 입술 언저리를 뚫어져라 바라다보았다. 정적만 있을 뿐, 아무것도 없었다. 그나마도 그가 슬그머니 손을 놓아버리자 끝이 났다. 빤히 바라보는 시선뿐, 덧붙이는 말도, 아쉬움의 포옹도 없었다. 내심 기대했었나 보다. 순간, 저도 모르게 새어 나온 작은 숨이 혹 그에게 닿을까 싶어 끌낭의 손잡이를 마구 움직여 속마음을 꽁꽁 숨겨 버렸다.

"갈게요."

서둘러 마침표를 찍고 절도 있게 뒤를 돌았다. 마치 제식 훈련을 하듯 그렇게.. 제 몸만큼이나 커다란 포물선을 그리며 끌낭은 그녀를 뒤따랐다. 고맙게도 말이다. 바닥을 딛고 있는 발의 무게만큼 눈에 물이 그렁- 차올랐다.


'예쁜 여자 그리고 매일 버스에서 만나는 여자, 남자의 호감은 어디로 기울까요? 놀랍게도 후자래요.'


'남녀 사이 친구는 없다~,, 연애 철학인지라. 노선 이탈은 물론 안전 운전할 테니 걱정 말아요.'


그의 말은 사실이었고, 호기롭게 밀어붙인 말들은 결국 서툴게 뽐낸 허세였다. 이런저런 감정들이 한데 얽혀 소용돌이쳤고, 그렁했던 눈물은 어느 틈엔가 가득 차 뿌옇다 못해 시야를 흐릿하게 만들었다. 'Binari Platforms 1-1 est - 2 est, 1번 플랫폼 출구에서 동쪽으로'.. 입술을 달싹여 반복을 했다.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눈을 대신한 목소리가 길이라도 찾아줄 듯 말이다. 툭- 건드리면 주룩- 터질 듯한 눈물, 떨리는 어깨, 느려진 걸음걸이,, 혼자만 다른 그림이었다. 외톨이 같은 자신의 모습이 싫었는지 아라는 무리 속으로 전속력으로 파고 들어갔다.


아로새기려는 듯, 머리부터 발끝까지 놓치지 않으려는 눈동자는 미세한 깜박임조차 허락하지 않았지만, 뚜렷했던 윤곽은 퍼졌다 줄어들었다를 반복하며 어느새 경계를 허물어트렸고, 흐트러진 선의 경계에 색의 충돌이 더해져 급기야 아라를 꿀꺽 삼켜버렸다. 목을 길게 끌어올려 두리번거렸지만 헛수고였다. 손목에 찬 시계를 흘끗 보고는 따라잡기에 충분한 시간이라는 계산이 서자, 끌낭 손잡이를 잡고 있는 손에 힘을 싣는 그 순간..


'out of sight,, out of mind.. 장거리 연애는 보통의 연애보다 더 많은 노력과 수고를 요해요. 그보다도 여행지에서의 끌림은 불완전한 법이니까.'


'보고 또 봐야 돈독해지는 법, 싸웠다가 손 내밀고 그러다가 정들고. 해서 장거리 연애는 덮어놓고 반대라는.'


'노선 이탈하지 말고 지금처럼 잘 부탁해요.'


목표물에 닿지 못하고 되돌아온 부메랑처럼, 한참 전에 활시위를 떠난 명중하지 못한 화살들은 차례로 날아와 단단히 꽂혔다. 지난날,, 쉽게 떨어지던 두 입술은, 막힘없던 글자들은 씹어 삼킬듯한 태도로 전진하여 점차 옥죄여왔다.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으나 되돌리기엔 너무 늦어 버렸다. 날카로운 화살촉은 두 발을 멈칫하게 했고, 앞서 나간 마음을 뒷걸음치게 했고, 눈을 막아버렸고, 손의 힘마저 빼앗아 갔다.


'기회는 지금뿐,, 그러나 그녀에게 다가갈 수 없고, 그녀 역시 그 사실을 알지.. 그것은 암묵적인 조건이잖아.'


깊게 박힌 통증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속에 말이 빈정대며 약을 올렸다. 이에 곧장 반응한 나머지 건전지를 뺀 로봇처럼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었다. 마침 그를 피하지 못한 오가던 누군가와 어깨가 닿았고 끌낭의 무게를 단단히 붙잡아 휘청이는 몸을 간신히 지탱했다. 뭔가 생각난 듯 끌낭을 돌려 재촉하고는 지척에 있는 에스컬레이터에 다급히 몸을 실었다. 징- 반복적인 기계음을 내리쉬며 낮은 곳을 향하여 곤두박질 치자, 한 치의 오차도 없어 보이는 횡과 종으로 총총히 박힌 형광색의 전구는 일제히 인공적인 빛을 발산하고 있었다. 한데 모인 그것들은 천연의 빛이 흉내 낼 수 없는 무한대의 밝기였으나 왠지 모르게 음산해 보였고, 피부에 와닿는 공기는 축축하게 느껴졌다. 삐뚜름히 뒤틀어진 그의 심사가 못마땅했는지, 거대한 지하 세계는 격하게 환영을 했다. 하마터면 오뚝한 콧날이 뭉그러질 뻔했으나 용수철처럼 튀어 오른 허리의 반동에 의해 가까스로 위기를 모면했다. 도착 지점을 잘못 계산한 명백한 실수였지만, 그럼에도 화가 솟구쳤다. 해서 그는 에스컬레이터의 발판을 걷어차며 버럭 성을 내었으나 콧방귀라도 뀌듯 계단 모양의 장치는 유연한 몸짓으로 사람들을 실어 나르느라 여념이 없었고, 이도 저도 관심 없던 어깻죽지는 어느 틈엔가 SUPERMARKET 간판에 닿아 있었다. 뒤룩뒤룩 성난 눈동자에 급히 새겨진 선명하고 뚜렷한 색채는 눈이 부시다 못해 시리게 느껴졌다.

"안뇽하세요."

숱이 많아 한층 탐스러워 보이는 고수머리의 남자 점원은 제법 그럴싸하게 인사를 건넸다. 기념품 될 만한 것들은 귀신처럼 비싸게 판다는, 한국인들이 호구된다는 아라가 경고했던 그 슈퍼마켓,, 한껏 올라간 입꼬리는 이죽거리는 듯했고, 어설픈 한국어는 작전인 듯했다. 해서 그는 떫은 감을 한 입 물은 얼굴을 하고 냅다 쏘아보았다. 생수, 껌, 비스킷, 초콜릿을 빠르게 집어 서둘러 계산대에 내려놓았다. 좀 전의 점원은 여전한 표정으로 한 손에는 물건을 들고, 다른 손에는 스캐너를 쥐고, 달린 입은 그를 향했다.

"한국 사람?"

그는 끈덕지게 말을 붙여왔지만, 진호의 시선은 모니터에 박혀 있었다. 자신의 암산과 그의 계산이 일치하자 곧추 세웠던 어깨는 실망한 듯 스르르 내려앉았다.

"Ciao."

전보다는 처진, 그러나 여전히 올라간 입꼬리를 한 채 그는 마지막까지 제 소임을 다했다. 인사는 고사하고 가벼운 눈짓도 없이 신경질을 부리듯 비닐봉지를 움켜쥐고는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 저쯤 떨어진 곳에 가서야 가게 안을 흘긋거렸지만, 점원의 모습은 오간 데 없었다. 등 뒤에서 공격하는 비겁한 현장을 잡고 싶었던 걸까? 반토막이 난 바람떡마냥 빈 웃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왔던 걸음을 되돌리니 커다란 창문에는 태양이 뿜어낸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눈이 부실 만큼의 채광은 고사하고 눅진한 공기가 팔뚝에 더덕더덕 엉겼다. 대관절 무엇을 버리고 또 얻으려 했던가? 한바탕 분탕질을 할 속셈으로 기껏 찾아갔으나 오히려 혹을 붙이고 온 격이었다. 쌕쌕- 연거푸 터지는 성난 숨을 잠재우려 무던히도 애쓰던 순간,,


'겁쟁이.'


비겁한 속마음이 참지 못하고 불쑥 올라왔다. 흐트러져 있던, 어렴풋했던 진실은 한 뭉치가 되어 둔탁하게 굴러와 똑바로 바라보게끔 했고, 방관자의 역할에 충실한 시간은 째깍째깍- 얄궂게도 흐르고 있었다. 해결책을 모를 때가 난감한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해서 그는 끌낭을 잡고 있던 손아귀에 힘을 가했다. 마치 아는 길을 가듯 좀 전과는 다른 발걸음이었고, 커다란 끌낭은 언제나처럼 경쾌한 움직임으로 그의 옆을 사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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