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께였던 그 모든 순간들 -
8세기경, 동로마 제국의 콘스탄티노플에서 성상파괴가 한창일 때 박해받던 동방 정교회 신도들은 로마로 건너와 터전을 잡은 후 산타 마리아 인 코스메딘 성당(Santa Maria in Cosmedin)을 세웠다. 성당 문을 열고 들어가면 코스메딘식 모자이크로 장식된 대리석 바닥이 눈에 들어온다. 소박한 지금의 모습과는 달리 건축 당시, 성당의 내부가 화려하게 장식되었기 때문에 '코스메딘'이란 이름이 붙여졌는데, 이는 '화려한 장식'을 뜻하는 그리스어 '코스미디온'(kosmidion)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 양식은 중세의 성당에서 바닥, 주교좌, 성가대석 및 천개(발타키노) 등을 장식하는데 사용되었고, 오늘날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 라테라노의 성 요한 대성전, 성 크리소고노 성당(San Crisogono)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원, 사각형, 삼각형 등의 기하학적인 문양의 코스메딘식으로 꾸며진 대리석 바닥을 따라가면 나지막한 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성가대석(Schola Cantorum)이 나온다.
대리석 벽으로 둘러싸인 성가대석의 측면, 두 개의 독서대가 있는데, 하나는 동쪽의 제대를 향해 있는 적자색의 대리석으로 사도 서간 낭독을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복음 선포용 독서대이다. 그 옆으로 웅크리고 있는 사자 조각이 돋보이는 기둥 모양의 파스카 촛대가 서 있다. 거룩한 장소를 지키는 사자는 힘과 권한을 지닌 존재로 상징화되었기에 주로, 왕좌나 주교좌 장식으로 쓰였는데, 이는 태어나면서 죽은 것처럼 보이다가 셋째 날에 눈을 뜨는 사자의 습성을 그리스도의 부활과 연관시켰기 때문이다. 두 개의 독서대와 파스카 촛대, 성가대석의 공간은 하느님과의 자유로운 대화를 암시하기에, 이 모두는 원죄가 없던 에덴동산 그리고 그리스도의 부활이라는 복음을 선포하는 영역임을 함축하고 있다.
성가대석과 주제단 사이 놓인 페르굴라(Pergula, 난간)는 비잔틴 지역에서 공간 구분을 위한 것으로, 통로를 따라가면 만나게 되는 주제대에는 네 개의 코린트식 대리석 기둥 위로 예수 탄생 예고를 묘사한 모자이크를 감싼 금색 배경의 펜던트가 놓여 있다.
교황 아드리안 1세가 카타콤에서 가져온 유물을 보관하기 위해 8세기에 지어진 지하 무덤은 성가대석 아래에 위치해 있으며 양쪽의 개방된 계단을 이용하면 된다. 이곳에는 여러 성인의 유해가 보관되어 있는데, 그중 '밸런타인데이'로 유명한 성 발렌티노의 두개골이 보관되어 있으며, 성 발렌티노의 축일인 2월 14일을 연인들의 축일로 기념하게 된 것은 14세기부터였다 한다.
현재는 중앙 통로(Nave) 양쪽 벽과 승리의 아치 위쪽으로 8세기~12세기에 그려진 프레스코화만 남아 있어 과거의 명성과 의미가 많이 퇴색했지만, 비잔틴 교회에서 벌어진 성화상 논쟁으로 인한 박해를 피해 로마로 온 그리스인들에 의해 세워진 산타 마리아 인 코스메딘 성당은 말씀에 순종하고 그리스도의 복음 전파를 권고했던 성당이라는 점에서 가톨릭인에게 그 의미는 실로 크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산타 마리아 인 코스메딘 성당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성당의 현관인 포르티코(portico)에 있는 '진실의 입'(Bocca della Verita)이다. 약 1.75m의 이 원형 석판이 놓인 시기는 1632년으로 추정되나, 그 역사는 BC 1세기 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비가 온 후에 트리톤의 입은 빗물을 금세 숨겨 버린다.'
포세이돈의 아들인 트리톤을 닮은, 하수구 뚜껑이었음을 암시하는 당시의 시의 구절을 보면 알 수 있듯, 이와 같은 선상에서 길 건너편에 있는 고대 로마의 하수도 클로아카 막시마(Cloaca Maxima)를 덮는 뚜껑이라는 설이 보편적이나, 이탈리아산 아닌 그리스에서 수입한 값비싼 대리석으로 만든 것 하며, 물이 빠지는 역할에는 다소 부적합한 작은 구멍 하며, 열고 닫기에는 버거운 12000kg의 무게감 하며,, 이런 이유들로 과연 하수구 뚜껑으로 사용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게 사실이다. '부두의 신 포르투누스' 혹은 '바다의 신 오케아노스'로 추정되는 신의 얼굴을 조각한 것은 입에서 물을 뿜어대는 모양의 여타의 분수로 사용되지는 않았을까?? 했으나,, 고대 로마 당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빗물을 삼키는 '강의 신' 얼굴을 조각한 맨홀 뚜껑이 심심치 않게 발견되고 있으니, 사실 중요한 것은 맨홀 뚜껑 여부가 아니지 않은가!!
15세기 초의 어느 가을날이었다. 얼굴 가득 노기가 가득한 중년의 신사와, 고개를 숙인 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중년의 여인,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로 산타 마리아 코스메딘 성당 안은 북적였으나 한데 모인 사람들의 숫자가 무색할 만큼 머무는 공기는 차갑기 그지없었다.
'Bocca della Verita는 진실과 거짓을 가리는 재주가 있소, 당신도 알다시피 손이 잘린 사람이 한둘이 아니지. 만약 당신이 다른 이와 외도를 하지 않았다면 손을 넣으시오.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 나와 여기 있는 사람들이 똑똑히 볼 테니.'
중년 부부의 사연은 이러했다. 평소 집을 자주 비우던 남편은 아내의 바람기를 의심하고 있었고, 급기야 그의 집에서 나오는 낯선 남자를 여러 차례 목격하게 된다. 이에 그는 지방의 행정관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행정관은 주변 사람들을 상대로 조사를 한 후에 중년의 부부를 Bocca della Verita로 데리고 갔다.
'당치도 않아요. 나는 늘 당신을 기다렸어요.'
아내는 눈물로 호소했지만, 남편과 행정관의 다그침을 이기지 못했고 Bocca della Verita에 손을 집어넣자마자 찌를 듯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손목이 잘린 것은 아니었으나 커다란 상처로 인해 피가 흘렀고, 상처와 거짓말로 인한 두려움으로 좀 전보다 더 크게 울부짖었지만, 싸늘하게 식어버린 남편을 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기독교에서 '배교자'라 칭한 4세기 로마 황제 율리아누스 역시 '진실의 입'의 시험을 받았다는 전설이 있는데, 그는 황제에 오르기 전, 연인으로부터 의심을 받았고, 이에 결백을 밝히겠다며 스스로 Bocca della Verita에 손을 넣기로 했다. 바로 그때 율리아누스는 이상한 목소리를 들었다.
'로마에 이교도 신들을 다시 살게 해 주면 당신의 손을 자르지 않겠소.'
율리아누스는 겁이 났지만 손이 잘리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해 제안을 받아들였다. 악마와의 거래 덕분인지 그의 인생은 급격히 변하기 시작했다. 갈리아의 방위를 책임지는 부황제로 임명되더니, 콘스탄티우스 2세가 죽은 뒤에는 로마 황제로 즉위하게 된다. 약속대로 그는 反그리스도 정책을 펼쳤다. 콘스탄티우스 2세가 진행해 왔던 기독교 우대 정책에 제동을 걸고 로마의 전통적 종교를 되살리려 노력했다. 이에 기독교는 악마와 거래를 한 그를 공개적으로 비판하였고, '배교자'라는 지워지지 않는 낙인까지 찍었다.
Bocca는 '입', della는 '~의', Verita는 '진실'을 뜻한다. 글자 그대로 '진실의 입'인 셈이다. 15세기 무렵 로마에서는 거짓을 말할 시에는 손목이 잘린다고 믿었으며 이를 뒷받침하는 일들이 종종 발생했다 한다. 이는 비단 남녀 사이 외도에 의한 진실규명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당시 로마의 행정관들은 거짓말을 일삼거나 자백하지 않는 범인들을 '진실의 입'에 세웠다. 다시금 거짓을 말한 이의 손은 가차 없이 반토막이 났는데, 그것은 사람에 의해서였다는 것,, '진실의 입' 뒤에 사람과 둔기를 숨겨두고 신호에 의해 형을 집행했다는 것이다. 숨겨진 장치는 알 턱이 없는 구경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진실의 입'이 범인을 단죄한 것으로 알 테니..
종래,, 이런저런 이유들로 로마인의 머릿속에 각인되고,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음은 물론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 또한 퇴색하지 않은 듯하다. 산타 마리아 인 코스메딘 성당 현관의 한편, 진실만을 말하는 입 앞에 선 채로 익살스러운 표정, 비탄에 빠진 표정, 고통에 시달리는 표정 등을 부러 새기니 말이다. 단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를 담기 위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것뿐, 고대 로마 시대부터 이어져온 이 풍습은 영겁의 세월 속에서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사진도 안 찍었으면서 기부는 왜 한 건지."
"반대의 경우를 묻던데. 보통의 경우는."
"유턴하지 말고."
"반가운 한국어 때문이라면."
"어? 어!!"
"당신의 손길이 한 생명을 살릴 수 있습니다~. 매번 TV로 접했으나 의심이 앞서길래. 설마 성당에서 수작질은 안 할 테니."
후훗- 웃음을 흘린 아라는 말을 이었다.
"별개 다 궁금하다. 잠깐!! 설마 지금 앙갚음인가?"
"빙고!! 성당 사정권 안이라 그런지 살아 있네."
신이 난 진호와는 달리 아라는 작정하고 미간에 실주름을 새겼다. 그런 모습에 아랑곳할 진호가 아니었다.
"그러게 왜 기회를 발로 차. 앞의 연인들처럼 사이좋게 인증샷 남길 수도 있었잖아. 영화처럼 멋지게."
요는,, <로마의 휴일>에서처럼 남자의 장난으로 그의 품에 안기는 여자의 모습을 재연한 그들 앞에 있던 외국인 커플을 지칭하는 것일 테지. 이에 내리 고개를 젓고서 아라는 앙칼지게 쏘아붙였다.
"<로마의 휴일> 아닌 <그린 북> 찍자 하지 않았나? 노선 확실히 하자며 선 그은 사람이 누구더라!!"
할 말이 없는 건지, 아님 찔린 건지,, 그는 말이 없었다. 그와는 반대로 몸을 반 자 앞으로 내밀어 아라는 틈을 좁혔다.
"내 차례인가? 그러지 마요. 멜로 눈깔 위험해요."
"부풀리기는. 사람 참.."
"별거 아닌 일을 또 별일 만들었네요. 그거 내 주특기니 헷갈리게 하지 말고."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진호는 연신 고개를 돌려댔다. 손을 집어넣은 진호, 그렇지 않은 아라, 그들의 속마음은 진실의 입만이 알 테지. 그는 할 말이 있는 듯 입을 벌리고 있었지만, 꼬리를 무는 사람들의 손짓에 결국 제 할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야경 보러 가자길래 내심 기대했더니만. 때 이른 납량특집인가?"
변변한 가로등 하나 없었다. 컴컴하고 인적까지 드문 티베리나 섬의 밤의 모습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 아르노 강은 쉼 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그 모두의 합이 더해지자 두려웠나 보다. 양팔을 감싸 쥐는 것도 모자라 아라는 강의 거친 물살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벌렸다.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서."
"투게더 좋아하는 그쪽 취향은 알겠는데 난 아니올시다라서."
분명, 가타부타 반응이 올 시점이었다. 그러나 흐르는 물살에 시선을 둔 채로 그는 옴짝달싹도 하지 않았다. 걱정보다는 궁금함이 앞선 나머지, 아라는 손에 든 휴대폰을 매만져 플래시를 켜서 전방을 비췄다. 그의 고개가 돌아간 건 그때였다.
"둘보다는 셋, 천리안까지는 아니지만."
비 오는 날, 빗물을 쓸어내리는 차량에 붙은 와이퍼처럼, 아라는 연신 휴대폰을 움직여댔다.
"조난 신고도 아니고."
"따따따 따-따-따 따따따."
목소리는 간결하게, 박자는 절도 있게,, 아라는 조난 신고의 정석을 선보였다.
"집중을 할 수가 없네. 갑시다. 가요."
"홍해의 기적이라도 보이려 했나?"
아무런 대꾸도 없이 그는 커다란 두 손으로 아라의 등을 힘껏 밀어 앞에 세웠다. 고개를 뒤로 돌려가며 아라는 연신 입을 움직였으나 그럴수록 등에 닿은 손에 힘의 세기는 커져 앞으로 또 앞으로 나아갔다.
"아경이란 본디.. 이런 거라지."
높고도 넓은 하늘은 온통 짙은 먹색이었지만, 간간이 박힌 작은 별의 반짝임, 사람들이 찍어대는 카메라의 깜박임과 산탄젤로 성으로 이어지는 다리 위 수호성인들을 부각시키려 낮게 쏟아지는 가로등의 빛이 더해져 더없이 포근했다. 한 바퀴 빙 둘러보고는 만족스러웠는지 휴대폰을 앞에 세우고 제자리에서 일정한 각도로 몸을 틀자 산탄젤로 성을 등지고 있는 진호의 모습이 카메라 앵글에 꽉 차게 들어왔다. 이에 아라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셔터를 눌렀다.
"불법적인 용도로 쓰지 않을 테니, 그건 걱정 말고. 산탄젤로 성 인증샷. 오케이."
"왜 건너뛰는 건지."
"랭던과 비토리아가 아닌지라."
보일 듯 말 듯 아라는 웃음을 흘렸다.
"볶음밥 사태는 막고 싶어서. 눈높이 교육은 그만하면 된 것 같아서."
말끝을 웃음으로 얼버무리려는 아라가 못마땅했나 보다. 그는 입술을 부루퉁하게 내밀었다.
"같이 좀 웃읍시다."
"단연 콜로세움인줄 알았더니,, 못지않아서. 오길 잘했다고."
"그렇다면."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을까!! 순간 진호는 아라를 끌어당겨 자신의 어깨에 틈 없이 붙여 세웠다. 그러고는 꽤나 능숙한 동작으로 휴대폰을 매만졌다. 눈 깜짝할 사이 당한 일에 아라는 그저 어안이 벙벙할 뿐, 입은 본래의 제 기능을 잃어버린 듯 숨만 쌕쌕- 뱉어 내고 있었다.
"잘 나왔다."
"엄마야."
미소를 띤 채로 자신만만하게 그가 들이민 휴대폰 속 사진에 시선을 고정한 아라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비어져 나올 수밖에.. 놀란 토끼눈은 귀엽기라도 하지. 튀어나올 듯한 눈과 벌어진 입이 멋대로 얼굴을 변형시킨 탓에 아주 볼썽사나운 모습이었다. 그것은 마치 산탄젤로 성의 다리에 있는 천사들을 잡으러 온 괴수의 얼굴처럼 흉측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해서 아라는 거세게 항의해 보았으나 그의 힘을 당해내기엔 역부족이었다. 높은 곳에 매달린 과자라도 따먹듯 그의 손에 꼭 쥐어진 핸드폰을 빼앗기 위해 폴짝폴짝 뛰는 모양새는 가히 낭만적이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다리 위 열 개의 천사상들은 한껏 날개를 펴고 있었지만 누구 하나 달려오지 않았고, 산탄젤로 성 위 대천사 미카엘 역시 커다란 날갯짓 한 번이면 닿을 거리였으나 날갯짓은커녕 눈길조차도 주지 않았다.
*클로아카 막시마(Cloaca Maxima) - 로마 포룸 내에 있는 고대 로마시대의 하수구이며 세계에서도 가장 오래된 하수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