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의 만남

by 이경보

올 9월의 어느 날이었다.

그날 아침도 나는 빗자루를 들어 맨발 걷기 길을 쓸고 있었다. 밤 사이에 날아온 나뭇가지, 벌레들을 먼저 빗자루로 간단히 쓸고 나면 안심하고 맨발로 걸을 수 있다.

맨발로 빗질을 하고 있는데 산책하던 한 사람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어떻게 맨발 걷기를 하려고 생각했어요?" 한 60대로 보이는 아저씨가 물었다.

이곳 대만은 맨발 걷기 하는 사람이 거의 없기에, 신기해서 묻고 있겠지 생각하고 있는데 그분이 이어 말했다.

"맨발 걷기가 좋다고 지인들에게 여러 차례 말을 했지만 실천하는 사람이 없는데, 이곳에서 보게 되어 반갑네요!"


그는 또 한 마디 건넸다.

"등을 짝 펴고 걸어보세요!"

나는 내가 등을 펴고 바른 자세로 걷고 있는 줄 알았기에 그의 말에 놀랐다. 애써 등을 펴 보였더니, 그가 엄지척을 해주었다.




며칠 후에 그 같은 자리, 같은 시간에 또 만났다. 이번에는 그분이 신발을 벗고 들어왔다. 우리는 맨발 걷기 하며 서로 신상파악이라도 하는 듯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그분은 공원 근처에 아드님이 살고 있으며, 며느리 근무일에 손자를 어린이집에 데려가 주려고 일주일에 2번 정도 아내와 같이 이곳에 오는데 좀 일찍 와서 공원에서 산책을 한다고 했다.


하루는 손자를 내 품에 안겨주었다. 10개월이 된 복스럽고 귀여운 손자를 안고 맨 발로 걸으면서 아내 분하고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10월 10일 대만의 국경일(雙十國慶). 꽤 이른 아침 시간에 라인이 왔다. 그분이 직접 찍은 영상이었다. 지인들에게 집에서 가볍게 할 수 있는 5분짜리 정도의 기공(氣功) 영상이었다. 가볍게 할 수 있으며 매일 연습하면 어깨결림, 허리 아픔 등을 예방할 수 있다는 설명도 들어 있었다. 영상을 보면서 따라 해 보았다. 쉽다고 했지만 내게는 결코 쉽지 않은 동작이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났을까, 자신이 65세 생일이라서 모두에게 선물 하나 한다며 이번에도 5분짜리 정도의 기공의 영상이었다. 누구나 집에서 가볍게 할 수 있다(결코 쉽지 않은)며 보내온 영상.


35757.jpg

(댁에서 찍은 영상의 한 장면 찰칵)


내겐 너무나 신선한 충격이었다. 국경일에, 자신의 생일에 이런 선물을 지인들에게 보내다니!

"얼마나 연마하셨어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30년"

돌아온 숫자의 무게에 나는 이어 할 말을 잃고 말았다.


IT기업에 근무하시다 앞당겨 정년퇴직을 하셨다고 했는데, 그 바쁜 와중에 젊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연마해 온 그의 정신력과 끈기력에 그저 고개가 숙여졌다. 30년간의 연마는 외모에 역력히 드러나고 있다. 군살이 없고 유연한 몸매 앞에서 탄력 없고 불필요한 군살이 더덕더덕 붙은 내 몸을 감추고 싶을 뿐이었다. 생채나이는 그분이 나보다 10년은 젊겠지. 실제 나이가 무슨 소용이 있으랴.




나는 보내온 영상을 보면서 따라 연습했다. 한 번에 최소한 18회 하라고 했건만, 한 두 번 하니 양쪽 팔과 옆구리에 쥐가 났다. 옆구리에 쥐가 나는 것은 난생처음이다. 매일 걷고 가끔 뛰기도 하지만, 거의 써본 적 없는 경직되어 있는 근육들이 화들짝 놀라 쥐가 났을 게다.


수년 전에 목디스크 걸린 후, 나는 책상에 오래 앉으면 뒷목이 뻣뻣하고 당김을 느껴왔던 터라, 이 기공을 매일 하면 해결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곳저곳에서 쥐가 났지만 매일 열심히 연습했다.


그분에게 내 몸 상태를 문자로 알렸더니, 목, 척추 근육을 단련시킬 수 있는 동작을 영상으로 찍어 보내주었기에 따라 했다. 그랬더니 목이 잘라 나갈 것 같은 통증을 느꼈다. 한 번에 연속적으로 여러 차례 하는 건 무리였다. 2회, 3회, 5회, 쉬엄쉬엄 하면서 횟수를 늘려갔다. 아침에 기공을 한 후, 학교에 가서 강의를 하고 있으면 졸음이 몰려왔다. 마사지를 받은 느낌이었다. 전신의 체온이 올라가고 온몸이 나릇 해진다.


그분은 일주일에 1,2번 공원에서 만나면 10분 정도 내 기공의 자세를 봐주며 교정을 해주었다.


(맨발 걷기 길에서 동작을 가르쳐주시는 모습)




기공은 대만에서는 신기하거나 희귀한 운동이 아니다. 아침, 저녁 시간에 공원에 가면 기공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기공이 심신의 건강에 좋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배우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35769.jpg

[공원에서 기공하는 사람들의 모습]




우연한 만남이 나를 기공의 세계로 안내해 주었다. 쉽지 않은 동작들이 하다 보니 내 몸이 받아들이고 있다. 매일 아침 눈을 뜨면 40분 정도 기공을 한다. 자기 전에도 되도록 하려고 한다. 요즘 나는 기공을 인제 껏 해왔던 명상과 접목시켜하고 있다. 앞으로 10년 그리고 20년 후, 기공이 루틴이 되어 있는 내 삶을 상상해 본다.




나와 기공의 인연을 우연으로 치부해 버리면 그만이겠지만, 우리의 삶에는 "시절인연"이라는 것이 있는 것 같다. 모든 게 시기와 조건이 갖추어져야 내게로 다가와 인연이 맺어진다.


내 앞에 펼쳐지는 모든 일과 현상들이 마음을 열고 관심을 갖지 않으면 그저 스쳐 지나갈 뿐이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지만, 그것들 조차 잠깐 내게 머물다 기억에서 사라지고 만다.


평범한 오늘 하루에는 어떤 기회들이, 어떤 만남들이 숨어 있을까? 그리고 얼마나 많이 흘러 보내고 있을까 생각해 본다.











이전 16화인천 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