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 동안 우리 학교의 현직 교수의 비보가 2번이나 들렸다. 평소에 우리는 죽음을 아주 먼 미래의 일로 생각하다가, 주변 사람의 비보를 들으면 죽음이 우리 가까이에 있음을 새삼 느끼게 된다.
60세의 예술가이신 여교수님은 옆 학과의 교수였다. 그분의 옷차림, 걷는 모습, 말씨 등에서 품위가 느껴져서, 늘 멋있고 분위기 있는 분이라 생각해 왔다. 그분의 추모식에 참가했다. 추모식에서는 정부와 지역 사회에 기여한 많은 예술 업적들이 소개되었다.
돌아가시기 한 달 전, 암으로 입원 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의사에게 양해를 구해 강의하러 학교에 오셨다는 얘기는 추모식에 참가한 많은 학생들, 동료 교수들의 눈시울을 적시게 했다.
몇 달 후, 또 다른 비보도 들려왔다. 우리 학교의 부총장직을 역임하셨던 분이 건강 악화로 몇 달 전에 직을 내려놓은 후 얼마 없어 세상을 떠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2년 전, 학교에서 건강진단을 받을 때 내 앞에 서서 줄을 기다리셨던 그분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50대 중반인 그분은 그날도 자신의 건강이 좋지 않다고 말하며, 동료들과 웃으며 농담을 주고받고 계셨다. 그 웃음 속에 감춰진 불안을 헤아리지 못하고, 그분이 건네는 농담에 웃고 있던 우리들이었다.
작년에는 대만의 한국어 학계에서 존경받던 대선배님이 돌아가셨다. 그분은 평생을 사명감과 열정으로 일하다 정년퇴직을 하셨고, 퇴직 후에는 가족들과 평온한 시간을 보내겠다고 학회 회의에서 말씀하셨다. 그로부터 1년 뒤, 발병하여 2년간 암과 싸우다가 세상을 떠나셨다.
이 분들이 죽음의 문턱에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하고 추모식에 앉아 나는 생각했다.
영혼들이 추모식에 참여했다면, 그곳에서 깨알 같이 적혀 있는 자신의 업적이 모니터에서 소개되는 장면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추모식에 앉아 있는 낯익은 동료와 선후배들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셨을까?
그분들은 한 생을 마감하며 깨달은 심오한 진리를 우리들에게 전하고 계시지 않았을까? 단지 주파수가 달라 우리는 그 영혼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다.
"최선을 다하면 죽는다"라는 책이 나와 있다. 나는 아직 그 책을 읽지 못했지만, 저자는 그 책에서 설렁설렁 대충 살라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보내려는 내용은 아닐 게다.
인생 여정에는 워밍업 하는 단계, 전력 질주하는 단계, 속도를 늦춰야 하는 단계, 쉬어야 하는 단계 등이 있다. 전력 질주 단계에서는 200% 몰입하여 전진해야 하겠지만, 만년 할 수도 없으며, 하려 해서도 안 된다.
우리는 몸에 이상 신호를 느끼면서도 오랜 세월 몸에 익숙해진 생활 패턴을 뜯어고치기가 쉽지 않다. 심신이 끝없이 우리를 향해 절규하는 데도 무시하거나 알아차리지 못한다. 나 역시 그랬다.
50대 들어서던 해, 나는 하루아침에 몸을 움직이지 못하게 되어 버렸다. 서는 것도 걷는 것도 눕는 것도 혼자서 할 수 없게 되었다. 이 병원 저 병원 다니며 검사를 했고, 발병하고 1달 반 후에야 목디스크라고 판명되었다. 이 흔한 병을 왜 병원에서는 수많은 검사를 하고도 못 찾아냈을까 지금도 의문이다.
학교를 3주 병가 내고 침대에 몸을 던진 채 하루종일 꼼짝 못 해 있으니까 저절로 내 삶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나?
뭐를 위해 전력질주하고 있지?
누구를 위해?
발병하고 5일째 되던 날, 5일간 얼굴도 씻지 못했다는 것을 의식하게 되었다.
중3의 큰 아들이 밤에 집에 돌아와서는 내 방 문을 열고 들어왔다.
"엄마, 좀 괜찮아요?"
"응"
"편히 쉬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자기 방으로 돌아가려는 아들에게,
"내가 딸을 낳았어야 하는데..." 작은 소리로 말했다. 아들은 내 말에 걸음을 멈추고 빤히 나를 쳐다보았다.
"엄마 5일간 세수 못 했어."
아들은 내 말을 듣자 수건에 물을 적셔 와서는 내게 내밀었다.
"엄마 팔을 움직일 수 없어."
아들은 젖은 수건으로 내 얼굴을 닦았다.
"아, 너무 아파. 살살 닦아 줘."
세게 닦은 것도 아니었지만 닦는 충격에 몸이 아팠다.
거동이 불편하고 통증에 시달리다 보니, 자신의 몸을 챙기지 못한 채 열심히만 살아온 나날들이 너무 어리석게 느껴졌다.
그때 나는 기도했다. 이런 통증은 내가 죽기 1달 전에 겪게 해달라고. 죽기 전 1달간의 통증이라면 받아들이겠다고.
그리고 나는 맹세했다. 앞으로는 건강을 1순위로 하겠노라고.
발병하기 전부터 목 결림, 뻐근함이 있어 마사지를 다니곤 했었다. 그러나 일의 양, 속도는 변함없었고, 일본에서 개최하는 학술회의 출장에 갔다 와서 2주 후의 터진 거였다.
우리의 에너지는 배터리와 마찬가지로 유한하다. 유한한 에너지는 때로는 충천하고, 때로는 속도를 낮춰야, 필요시 일시적으로 풀가동할 수 있다. 때때로 멈춰 쉰다는 것은 정지가 아니라 충전이라는 것을 기억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삶의 틈을 만들어 깊은 호흡을 하고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유한한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임을 뒤늦게 깨달았다.
최선을 다 하는 것만이 잘 산다고 생각해 왔던 나.
자신이 무엇을 위해 어디로 가는지 묻지도 않은 채 전진만 하려 했던 나.
채워지지 않는 마음을 일에서 찾으려 했던 나.
그런 주인을 만나 혹사당했던 몸과 마음에 사죄를 하며, 인제는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