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은 무상이라 했다. 고귀하다는 사랑도 그 대진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럼에도, 한 때 우리는 그 대진리에 귀를 막고 눈을 가려, 사랑 앞에서 맹세를 하며, 변치 않을 거라 다짐했었다. 아뿔사! 내 가슴은 그 다짐한 것 조차 까마득히 잊고 있었네.
나는 커피에 대한 나의 사랑만큼은 변치 않으리라 자신했다. 나뿐만 아니라 내 주위의 많은 이들도 그런 나의 사랑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30년을 같이 해왔다. 내가 해본 사랑 중에 가장 오래 내 안에 머문 사랑이라 하겠다.
커피와의 만남은 고1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의 커피는 인스턴트 맥스, 초이스 커피였다. 처음엔 커피, 프림을 넣고 마셨겠지만, 고등학교 졸업하기 전 이미 블랙 맛을 알았으니 그 쓰디쓴 사랑에 눈이 빨리 떴다고 할 수 있다.
유학 시절에도 늘 내 책상 위에는 커피잔이 놓여 있었다. 하루의 시작은 커피였고 커피 향이었다. 유학 시절,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30년 전 일본에는 맛있고 다양한 원두커피가 많고, 커피숍도 곳곳에 있었다. 피곤할 때도 기쁠 때도 무료할 때도 늘 내 곁에 있어준, 말 그대로 희로애락을 같이 한 동지이며 벗이었다.
누군가는 커피를 마시면 잠을 잘 수 없다고 하지만, 나는 커피를 마시지 않고, 그 향을 맡지 않으면 잠들 수 없을 만큼, 그를 향한 사랑은 중독이었다.
대만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암담하게 느껴졌던 것도 "커피" 때문이었다. 2,30년 전만 해도, 대만에는 커피 맛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적었다. 커피숍에서는 커피가 가장 비쌌고, 그 맛은 형편없다 못해 용서할 수 없는 맛이었다. 남자친구(훗날 남편)를 따라 여름방학에 대만에 갔을 때, 그러니까 25년 전 어느 날, 커피숍에서 제일 비싼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설레며 기다렸는데, 정작 나온 커피 한 모금을 입에 물고 화장실로 직행해서 뱉어내었던 기억이 있다. 인스턴트커피, 설탕, 프림 이 3가지를 아마도 같은 비율로 듬뿍듬뿍 넣어 걸쭉 할치만큼의 진한 커피였다. 그 일 이후로 나는 커피숍에서 커피를 시키지 않았다.
2006년, 일본 유학을 마치고 대만에 갔을 때는 스타박스가 대만에 진출된 후였다. 가게가 듬성듬성 생겨나더니 어느새 전국으로 점포가 늘었고 대만 자체의 브랜드 커피숍도 덩달아 생겨났다.
스타박스 덕분에 대만의 커피 수준을 껑충 높여놓았다고 해도 전혀 과장된 말이 아니라 생각한다. 그즈음에 나는 "아, 이 대만도 살만 하구나"라고 느끼기 시작한 것 같다.
커피에 대한 내 마음은 정말 진심이었다. 원두커피를 찾아 대만 구석구석을 찾아다녔다. 집에서 뿐만 아니라, 내 연구실에서도 아침부터 원두를 갈고, 막 갈아낸 원두 가루로 커피를 내리며 하루가 시작되었다. 내 연구실에서 뿜어 나는 커피 향은 무취인 건물 이곳저곳으로 퍼져 들어갔고, 내 연구실 앞을 지나는 교수들, 학생들에게 늘 무료로 커피 향을 제공하는 셈이었다. 그래서인지 내가 커피를 좋아하는 것은 인문대학에서 소문이 꽤 나 있었다. 커피 인구가 한국에 비해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내게 있을 수 없는 대형사고가 터졌다. 갑자기 커피가 싫어졌다. 싫어진 거라기보다 몸이 커피를 거부한 것이다. 커피 향이 메스껍고, 냄새 만으로 위가 쓰려왔고, 마셔도 그 어떤 감흥이 일지 않고 그저 쓰기만 했다.
그 대형사고는 201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느닷없이 들이닥친 우울증에서 살아나려고, 찌프라기라도 잡는 듯한 심정으로 명상을 배웠다. 그 해 6월에 처음 명상을 배우고, 7,8월 여름방학 기간 동안 집에서 맹훈련을 했다. 외부와 거의 차단하고 하루종일 명상하다 불서를 읽고, 불서를 읽다 명상을 하며 보냈다. 인간이 낭떠러지 끝에 서 있으면 초능력을 발휘한다고 하는데, 내게도 그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처음에는 10분, 20분, 30분으로 시작한 명상이 1시간, 2시간을 몰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때 경험한 얘기는 언제가 다른 곳에서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명상 수련한 지 1달 후, 감동에 요동치던 내 마음은 바람 한 점 없는 고요한 호수 상태로 변해 있었다.
8월 초 어느 날의 새벽 4시. 모두가 꿈나라에 있는 시간에 나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슬그머니 거실로 나와 방석을 깔고 좌선을 했다. 조식을 한 후, 8시쯤에 커피를 내렸다. 자동 모드로 이루어진 행위이다. 그런데 그날의 커피 향이 어제까지와 달랐다. 며칠 전 개봉한 커피 원두인데 그윽한 향기는 어디론가 사라졌고, 맛도 쓰기만 했다. 울 엄마가 생전에 블랙커피를 마시는 내게 "그게 뭐가 맛있니? 쓰기만 한데..."라고 하던 말이 생각났다. 너무나도 이상해, 구매한 가게에 전화해서 문의했다. 단골손님의 기록 장부가 있어서 내가 이번에 갖고 온 원두가 예전과 다른지 확인 요청했더니, 같은 거라 했다.
그래도 나는 필사적으로 그 한 잔을 비웠다. 그날까지만 해도 커피를 버린다는 게 용납이 되지 않았다.
커피를 마시고 1시간 후에 또 좌선을 해서 명상을 하는데 심장이 두근거렸고 손이 떨려 명상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카페인에 몸이 과도하게 반응하는 거였다.
그다음 날 아침에도 나는 또 커피를 내렸다. 이 날은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어제와 같은 반응을 보일까하고 말이다. 이번에는 어제보다 한층 더 그 커피 향이 역겨웠고, 위가 아프기 시작했다. 커피를 조심히 입에 조금 물어보았는데 도저히 삼킬 수가 없었다.
이 엄청난 현실을 나로서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로부터 얼마 없어 9월에 학기가 개강했는데, 그 누구에게도 내가 커피를 마실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릴 수 없었다. 말했다가 나중에 또 마시게 될 수 있으면 어떡하지! 명상 때문에 마실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나 자신도 들어본 적이 없는 터라 그 인과 관계를 설명하기도 좀 그랬다.
결과적으로 커피와의 인연은 30년으로 끝이 났다. 언제부터인지 기억할 수 없지만, 커피가 떠난 자리에 우롱차가 들어섰다. 대만의 우롱차는 종류도 다양하고 등급도 천차만별이다. 커피만큼이나 우롱차의 세계도 깊고 넓은 것 같다.
새로 맺어진 우롱차에 대한 사랑도 지난날의 커피만큼이나 진심이다. 뭔가에 푹 빠지면 걷잡을 수 없는 성격이기에 그럴 것이다.
오랜 세월 같이 했던 커피가 떠난 지 곧 10년이 되려는 지금, 커피가 머물던 자리에 우롱차가 깊숙이 들어와 있다. 그 둘을 가지고 어느 게 더 좋다 나쁘다 저울질할 마음은 없다. 필요하니까 떠난 거고, 필요하니까 나를 찾아온 것일 게다.
그게 어디 기호식품에 국한된 일이랴. 인생 전반에 걸쳐 나타나는 현상이지. 오늘 사랑할 수 있는 것들을 원 없이 사랑하고, 때가 되면 미련 없이 보내자. 언제든 이별에는 진통이 따르지만 말이다.
인생의 맛을 제대로 아는 중년이 되었다고 자부하기엔 아직 거리가 멀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