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한 크리스마스 날에

by 이경보

오늘은 크리스마스. 쨍쨍한 날씨 탓일까?

이 곳 대만 가오슝은 크리스마스 분위기라곤 찾아볼 수 없고, 그에 걸맞게 공휴일도 아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학교 연구실에 도착한 후 우롱차를 한 잔 우려냈다. 한 잔을 마시고 화장실에 갔는데, 화장실에서는 장화를 신은 청소 아주머니가 열심히 청소를 하고 계셨다. 마주칠 때면 늘 인사를 나누고 간단한 인사말을 나누는 정겨운 아주머니시다. 볼일 보고 연구실로 돌아온 나는 불현듯 차 한 잔을 그분에게 드리고 싶어졌다. 서늘해진 날씨 탓일까?


우롱차를 따른 찻잔을 들고 화장실 앞으로 갔다. 화장실 앞에서 찻잔을 들고 잠깐 서 기다리는데, 좀 이상한 광경이라는 생각에 혼자 웃음이 피식 나왔다. 청소하고 나온 아주머니에게 따뜻한 우롱차 한 잔을 내밀었더니, 좀 놀라시면서 환한 표정을 지으셨다.


"제가 마시는 우롱차예요. 한 잔 드리고 싶어서요. 날씨도 춥고, 아, 오늘 크리스마스이고요."

크리스마스라서 드리려고 한 것 아니었는데, 순간 이유를 찾다 보니 크리스마스가 뇌리를 스친 거였다.

60세는 훌쩍 넘어 보이는 아주머니는 연거푸 맛있다고 하시며, 자신의 보온병에 있던 물을 버리고 내 우롱차를 부어 넣었다. 그리고는 내게 한 마디,

"聖誕節快樂(메리크리스마스)!"




잠시 후에 누군가 연구실 문을 노크했다. 1학년 한 여학생이 들어왔다. 아까 복도에서 만났을 때, 오늘 시험 보고 난 후에 날 찾아오라고 했더니 찾아 온 게다. 그 학생에게 선물 봉지를 내밀었다.


"한 학기 동안 반친구 도와줘서 고마워요. 내가 할 일을 해줘서 너무 감사해요!"

"아니에요, 제가 무슨 일을 했다고?" 하며

"이거, 다 저 주시는 거예요?"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응, 별거 아니에요. 뭐 좋아하는지 몰라, 한국 과자랑 한국 음식을 좀 샀어요."

"감사합니다, 교수님, 메리크리스마스!"




이번 학기에 개강하고 3주째가 되던 날, 처음 보는 등치 큰 남학생이 앞쪽에 앉아 있었다. 쉬는 시간에 나를 찾아와서 인사를 꾸벅 하며, 비자 문제 때문에 인제야 대만에 들어올 수 있었다고 말하는 베트남 학생이다. 더듬더듬 말하는 중국어에다, 한국어 자모도 잘 읽지 못해, 내 강의에 따라오려나 걱정이 되었다. 마침 앞자리에 혼자 앉아 있는 여학생은 입학 전에 한국어를 꽤 공부한 학생이었다. 그래서 그 여학생에게 옆에 이 베트남 학생 앉아도 될까? 물었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나는 한국어를 좀 가르쳐 주라고 부탁했다.


교수한테서 부탁을 받아 거절하지 못하고 가르쳐주기 시작한 것이 한 학기가 끝날 무렵까지 한국어 공부를 보살펴준 것이었다. 민감한 여학생이었다면 거절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는데, 그 여학생은 강의 시간에도 못 알아듣는 중국어를 옆에서 도와주었고, 그가 잘못 쓴 한국어를 수정해 주곤 했다. 덕분에, 그 베트남 학생은 꾸역꾸역 따라오고 있다.

외국 친구를 도와주는 마음씨 착한 학생, 그리고 열심히 하려는 외국 학생, 나는 이 두 학생을 몇 번인가 강의 시간에 칭찬과 격려를 한 적이 있다.




학기가 곧 끝나니까 어제 집에 가는 길에 소소한 선물을 사서 오늘 건네준 것이었다.


작은 마음 내켜 드린 따뜻한 한 잔의 우롱차, 감사의 마음으로 건낸 작은 선물이 뜻하지 않게 크리스마스 날에 전한 덕분에 크리스마스 선물이 되어, 받는 이도 주는 이도 그 기쁨이 배가 된 듯하다.


아침에는 크리스마스가 오는지 가는지 모르는 곳이라 생각하며 집을 나섰는데, 집에 돌아올 때는 풍성한 크리스마스라고 생각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렇구나, 의미는 내가 부여하기 나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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