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먼저 행복해야 하는 이유

by 이경보

내가 먼저 행복해야 한다. 지구는 나를 중심으로 움직여야 되고, 나는 우주의 중심이어야 된다. 이런 말을 들으면 거부 반응이 일어나기도 하고, 이기적인 생각이라 여기는 이가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살아 보니, 내가 먼저 행복해야 하는 까닭을 알게 된다.




홀로 서기 1년 전, 그러니까 큰 애가 고3, 작은 애가 중3 때였다. 두 아들은 3살 터울이어서 같은 시기에 대입과 고입을 치러야 했다. 한 지붕 아래 수험생이 둘씩이나 있으니 여느 때 보다 그 공기는 무거웠다. 아니, 무겁다 못해 아프기까지 했다.




누군가를 지지하고 응원하려면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걸, 그 때 절실히 깨달았다.

고3, 중3 입시생의 두 아들을 온 힘을 다해 격려하고 응원해줘야 하는데, 내게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고갈되어 있었다. 낮에 혼자 집에서 거울을 보며 웃으려 애쓰지만 미소가 지어지지 않는다. 시험일이 다가올수록 말수를 줄이고 내 감정을 드러내지 않도록 노력하는 게 고작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지금이라도 폭발해버릴 것 같은 감정을 다스리는 데 쓸 베터리도 아슬아슬할 정도여서 두 아들에 대한 몰입이 어려웠던 거라 생각한다.




이 1년간, 인제 껏 한 번도 발생하지 않았던 교통사고가 3번이나 발생했다. 한 번은 나의 부주의, 두 번은 상대 부주의였는데, 멀쩡한 정신으로 운전했더라면 예방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세 번의 사고는 불행 중 다행으로 사람은 크게 다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발생했던 교통 사고는 큰 아들 대입 시험 전날, 아들을 데리고 시험장을 보러 가는 길에서 발생했다. 시험일이 아니라 전날에 액땜했다고 말하며 동요하는 아들을 진정시켰다. 누가 그게 불운의 징조라는 걸 알까?




그렇게 감추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너덜너덜, 쭈글쭈글한 내 마음의 상태가 두 아들에게 고스란히 스며든 것일까?

저마다 목표를 갖고 열심히 입시 준비를 한 두 아들의 결과는 참담했다.

큰 애는 영어 0.5점 차로 한 등급 낮은 등급을 맞는 바람에 희망하는 대학을 포기해야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누군들 다 희망하는 대로 가는 게 아니지라고 생각했다.

큰 애는 목표했던 학교를 포기하고 원서를 제출했는데 제1지망의 학교에 아들과 동점인 다른 학생은 합격하고 아들은 떨어졌다. 결국 입시 준비할 때 최악의 경우 선택하겠다던 학교에 들어가야 했다.


작은 아들에게는 더 심각한 일이 발생했다.

모두가 어렵다고 하는 과학반 시험 1차 필기에 합격하고, 2차 시험(면접, 실험)을 앞두고, 시험 전날 코로나에 걸려 고열을 내고 2차 시험에 응할 자격이 상실되어 버렸다. 2차 시험에 실험이 있기에 온라인으로 응할 수 없다는 게 주최측의 설명이었다. 고열로 비몽사몽 한 상태에서 깨어난 작은 아들은 시험 자격 상실이 되었다는 걸 알고는 죽어 버리겠다고 난리를 쳤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열심히 공부한 결과가 이거냐며 울부짖었다. 그 어떤 위로의 말도 먹혀들지 않았다. 11층의 방에서 뛰어내리지 않을까 겁이 났다. 큰 아들도 내 마음과 같았을까? 시험 당일 동생 방에서 떠나지 않고 바짝 동생 곁을 지켰다.


한 애는 죽어 버리겠다고 소동 치고, 한 애는 슬픔을 내게 보이지 않으려고 방문을 걸어 잠그고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어 있다. 그런 두 아들을 보며, 나야말로 죽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뭐라고 할 수 없는 그저 죄스러움만이 내 안을 가득 채웠다.



며칠 후 큰 아들과 나는 외출했다. 어디로 갔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차 안에서 큰 아들이 침묵을 깨고 꺼낸 말만 뇌리에 남아 있다.


“엄마, 올해 우리 집 이상하지 않아? 왜 이렇게 불행이 이어지는데?

엄마, 왜 참으면서 살아? 엄마 행복 찾아 나가. 난 엄마가 행복해졌으면 해.”


나는 가만히 듣고 있었다. 해 줄 말이 없었다. 그저 미안하기만 했다.




나는 큰 아들이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코로나가 터지고 온라인 강의가 시작되면서 한 식구가 24시간 집에 있다 보니, 예리한 작은 아들 눈에 우리 부부의 관계가 포착되었고, 왜 엄마 아빠가 말을 하지 않냐고 끈질기게 물어왔다. 그 때가 큰 아들이 고1, 작은 아들이 중1이었다.


작은 아들의 집요한 질문에 처음에는 요리저리 피했지만 공격적이고 날카로운 그에게 항복할 수 밖에 없었다. 때가 왔구나 싶어 처음으로 두 아들에게 우리 부부 사이가 소원해진 이유를 설명했다. 그 때까지 아들들은 우리 부부 사이의 심각성을 눈치채지 못했던 것 같다. 아침에 집을 나서면 밤이 되어서야 돌어왔고, 4 사람이 각기 자기 방에서 지내고 있었다. 우리 부부는 소리 내며 싸우지는 거의 않았다(싸워야 할 때 싸우지 못했던 게 큰 문제였다).


내 설명을 들은 두 아들의 반응은 달랐다.

"엄마, 미안해. 외국인인 엄마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큰 아들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엄마 바보야? 우리 반친구들은 엄마 같은 환경도 아닌데 다들 일찍감치 이혼했어. " 작은 아들이 버럭버럭 화를 냈다.


자신들은 다 컸으니 헤어지라고 말하는 아들에게 물어 보았다. 너희들은 누구랑 살려고 해?

"동생이 엄마 따라 나가면 난 아빠랑 있을래요. 엄마든 아빠든 어느 한쪽을 외롭게 할 수 없으니까." 큰 아들이 대답했다.

그 한마디가 나를 그 집에 더 붙들어 놓은 것 같다. 인제까지도 참았는데, 2년만 더 참았다가 큰 아들 대학 들어가면 기숙사로 들어가니까 그때 나가야지 생각했던 것이다.


그 시간이 머지않아 다가온다고 생각하니 이제까지 긴장해 있던 끈이 점점 느슷해진 것인지, 더 이상 참을 기력이 남아 있지 않은 건지, 방전된 몸을 이끌고 하루하루 지낸 듯싶다.



홀로서기한 지 14개월이 되었다.

그토록 노력해도 지을 수 없었던 미소가 저절로 지어진다. 사소한 일에도 불쑥불쑥 튀어나오던 짜증, 화의 횟수도 부쩍 줄었다.

내게 변화가 찾아왔고, 언제부터인가 두 아들에게도 변화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큰 아들은 대학 들어간 후 1년째는 전자공학과의 공부가 어렵다며 전과, 전학을 몇 번 꺼낸 적이 있다. 그러더니 2학년이 된 지금은 잘 적응하고 지난번 시험도 성적이 잘 나왔다고 자랑하며, 열심히 해서 석사 과정까지는 밟겠다고 한다.

요즘은 여친을 만나 한층 활기가 있어 보이고 즐겁게 지내고 있는 듯하다. 긍정에너지로 가득 차 있는 해맑은 미소를 보여주는 여친이다.

"그녀를 만나게 하기 위해, 신이 그 학교, 그 학과로 안배해 준 거구나!"

며칠 전 이렇게 말했더니, 아들이 고개를 크게 끄덕인다.




작은 아들에게도 이 1년간 작고 큰 변화가 나타났다. 무엇보다 까칠했던 성격, 나와의 잦았던 충돌이 확연히 줄어들었다. 내 말에 조금이라도(아들은 조금이라고 생각하지 않음) 뾰족함이 있으면 민감히 반응하여 그 몇 배로 거칠게 돌려주곤 했는데, 언제부터인가 아들의 선인장 같은 가시가 덜 날카롭고 조금씩 부드러워지고 있다.

며칠 전에는 나랑 말하다가 툭 튀어나온 거친 말에 스스로 입을 탁 때렸다. 불쑥 튀어나온 습관적인 말투에 대한 스스로의 조치였다. 학교 성적도 생각하지 못할 만큼이나 좋아지고 있다.




스쳐지나갈 뻔 했던 기회를 잡는 축복도 있었다. 경매에 '경'자도 모르던 내가 경매로 마이홈을 장만했고, 일터에서도 새로운 기회들이 생겨난다.


답은 희생이 아니라 내가 웃어야 한다. "웃으면 복이 온다"라고 하는데, 웃으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노력한다고 웃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진정한 미소는 평온한 마음에서 저절로 생겨난다.



나의 미소는 나 혼자의 행복에 그치지 않고, 곁에 있는 자식에게로, 학생들에게로 번져 나간다.

내가 강의실에서 학생들에게 미소로 긍정적인 에너지로 대한다면, 그 에너지는 학생에게서 멈추지 않고 그들의 가족, 친구들에게 번져 나가지 않을까? 생각해 보면 한 줄기의 긍정적인 빛은 그 파장의 범위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한다.


그러기에 먼저 자신의 행복을 챙겨야 하는 것은 나만을 위함이 아니라 나와 나의 주변 모두를 위함이라는 걸 기억하고 싶다. 만물은 에너지로 형성되었다고 하지 않는가. 이 지구의 에너지는 내게서 발산하고, 또 누군가의 에너지는 내게로 스며든다.


[사진 출처: 이미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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