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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보 Sep 08. 2024

예기치 않은 아픔

인생은 고해(苦海)와 같다. 그 안에서 우리는 고통을 경험하며 성장하고, 배움을 얻는다. (틱낫한)


불교에서는 인생을 고해(苦海)에 비유한다. 크고 작은 고통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삶 속에서, 나에게 가장 깊은 아픔은 유학 시절에 찾아왔다. 사람들은 모든 고통에는 이유가 있다고 말하지만, 나는 아직 그 이유를 찾지 못했다. 신을 원망하지는 않았지만, 신에게 그 아픔이 왜 나에게 찾아왔는지 묻고 싶었다.




그 일은 석사 2학년 때 일어났다. 학부 시절부터 사귀어 온 대만 유학생과 석사 1학년 때 결혼을 했다. 내 나이가 적지 않았기에 서둘러 아이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했고, 석사 2학년 때 임신을 하게 되었다. 그때 내 나이는 서른셋이었다. 임신 5개월 무렵, 태아가 배 속에서 움직이는 것을 처음 느꼈다. 처음 겪는 그 감각은 경이로웠고, 다가올 생명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슴이 벅찼다. 남편과 나는 아이가 태어날 날을 손꼽아 기다렸고, 지도교수님께서는 부모가 열심히 공부하니까, 아이도 분명히 똑똑할 거라고 격려해 주셨다.




그날도 우리 부부는 태아의 모습을 상상하며 동네 산부인과로 정기 검진을 받으러 갔다. 나는 의사에게 태아의 성별을 물었다. 지난번 검진 때에도 물어보았지만 답을 듣지 못해 이번에는 꼭 알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의사는 이번에도 내 질문에 답하지 않고, 혼잣말로 ‘안 보인다’고 중얼거렸다. 이전에도 같은 반응을 보였던 것이 기억났다. 검진이 끝난 후 의사는 큰 병원에서 검사를 받아보라고 했고, 되도록 빨리 가라고 했다. 이유를 설명하지는 않았다.




며칠 후, 큰 병원에 갔고 그곳에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우리 아이가 "무뇌아"라는 것이다. 태어나도 몇 분 혹은 이틀을 넘기지 못할 거라고 했다. 무뇌아의 출생 확률은 만 명 중 한두 명에 불과하며,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일본 법에 따르면, 비록 생존 가능성이 없더라도 뱃속에서 살아 있는 한 아이를 출산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결국, 살아갈 수 없는 생명을 10개월 동안 품어야만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아이의 발길질은 여전히 힘차게 내 배를 두드렸다. 그러나 그 아이가 결국 세상을 떠날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사실은 나를 절망으로 몰아넣었다. 진료실에서 나와 끝내 참을 수 없는 눈물이 터졌고, 진료실 앞에서 엉엉 소리 내며 한없이 울었다. 매일매일이 지옥 같았다. 배 속의 아이는 무심하게도 계속 발길질을 하며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어디를 가든, 온통 눈에 띄는 것은 임산부들과 아이들이었다. 자다가도 눈물에 젖어 깨어나곤 했다. 시간이 흐르며 배는 점점 불러왔고, 만나는 사람마다 출산일을 묻는 것이 두려워졌다.




결국, 나는 고향인 한국으로 돌아가 촉진제를 통해 출산하기로 했다. 출산 후 태아는 연구기관에 기증했다. 우리 아이가 이 세상에 남긴 작은 흔적이, 무뇌아 연구에 조금이나마 기여하여 나 같은 아픔을 겪는 사람들이 줄어들기를 바랐다. 그렇게라도 아이의 짧은 생이 의미 있기를 간절히 원했다.




예고 없이 찾아온 깊은 고통 속에서 나를 구해준 것은 연구였다. 아픔을 잊으려고 더 연구에 몰두했을지도 모른다. 연구에 집중하면서 나는 서서히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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