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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보 Sep 08. 2024

내 심장을 뛰게 해 준 과목

대학 1학년 때, 가슴 설레며 기다렸던 강의가 있었다. 일본어 문법 강의였다. 내 심장을 뛰게 했고, 집중하게 만들었으며, 공부의 즐거움을 깨우쳐 준 강의였다.


그 강의를 담당한 교수님은 우리 학과에서 가장 엄격하다고 소문난 분이었다. 선배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들은 교수님의 수업이 매우 까다롭다는 것이었다. 교수님의 강의 방식은 일방적으로 교수님이 진행하시는 것이 아니라, 유사한 문법과 문형을 칠판에 적고  학생들에게 차이점을 생각해 보라고 하는 형식이었다. 생각을 하고 의견을 내놓고 교수님의 설명을 듣는 시간이 너무나 즐거웠다. 학생들의 생각이 틀리면, 틀렸다고 바로 말하지 않으시고 미소를 띠며 ‘그럴까?’ 혹은 ‘음…’하며 여운을 남기고 다음 생각을 기다려주시곤 했다. 


공부의 즐거움을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끼는 순간이었다. 단순히 암기하는 게 아니라 사고하고 또 사고해서 그것을 언어로 표현하는 것, 그 강의 시간은 나의 혼까지 매료되었다. 매주 한 번 있는 그 강의를 마치 데이트를 기다리는 설렘으로 기다렸다. 선배들이 무섭다고 한 교수님에 대한 소문은 그러한 설렘과 두근거림 앞에서 큰 의미가 없었다.



우리 학교의 일본어학과의 교과과목은 1, 2학년 때에는 일본 문학, 문화, 역사, 어법, 일본어 논술 등 폭넓게 공부한 후, 3학년에 올라가면서 자신이 공부할 방향의 폭을 좁혀간다. 4학년 때에는 졸업논문을 써야 하는데 3학년 때부터 그와 관련 강의를 들으면서 준비를 한다고 보면 된다. 3학년에 올라가면서 언어 쪽인지, 인문 사회 쪽인지 큰 방향을 결정해야 해서 많은 학생들이 고민을 했다. 특히 유학생들은 진로 문제, 졸업 후 귀국할지 일본에 남아 있을지, 진학할지와 인생 여정이 바로 연결이 되기 때문에 고민의 강도는 일본 학생들보다 강했다.


나는 언어 쪽을 선택했고 그중에서도 일본어 문법으로 결정했다. 이 결정에는 적지 않은 선배들이 반대의 카드를 꺼내며 신중히 생각하라고 조언했다. 우리 학교는 외국어학교로서 각 분야의 연구에서 제1인자들이 많은 교수님들이 있었고, 교수님들은 학생들에게 높은 기준을 요구했다. 그만큼 그들의 지도 아래에서 버티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으며, 학위를 받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고 중도에 포기하는 유학생들이 적지 않았다는 것이 선배들의 의견이었다. 게다가 외국인으로서 깊은 역사를 가진 일본어 문법을 연구하는 것은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는 경고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일본어 문법 외에는 특별히 끌리는 분야가 없었다. 심장이 뛰고 영혼이 몰입할 수 있는 강의는 일본어 문법뿐이었기에, 내 선택은 확고했다.




결과적으로 내 선택은 옳았다. 관심 있는 분야를 선택했기에 자연스럽게 열정이 솟구쳤고, 열정은 마음먹는다고 해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자연 발생적인 것 같았다. 다른 과목들도 노력했지만, 그와 같은 열정이 생기지는 않았다. 내가 관심 있는 분야를 선택했기에 열정이 생겼고, 그 열정이 점점 불타올라 몰입 경지에 들어갈 수 있었다. 연구에 몰입하는 시간 속에서 내가 살아 있음을 뜨겁게 느낄 수 있었다. 


그로 인해 주위의 학생들과 비교하며 연구의 질을 저울질하는 일이 거의 없었다. 괜찮은 발표를 한 학생이 있으면 그 학생에게서 배우려고 했고, 모르는 것이 있으면 물어보았다. 이런 자세는 문법 연구에 대한 열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또한, 지도교수님의 영향도 컸다. 교수님은 학생들이 연구 주제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해 주셨고, 덕분에 나는 내가 진정으로 관심 있는 주제를 선택하여 연구할 수 있었으며, 그 연구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라. 그러면 당신은 매일 아침 일어나서 최고의 노력을 다할 

수 있을 것이다. (조지 버나드 쇼)




과거의 결핍으로 인해 생겨난 공부에 대한 간절함이야 말로 내 유학 생활에 막강한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 그러한 원동력은 어떤 난관도, 어떤 장애에도 굴하지 않는 든든한 디딤돌이 되어 주었다. 석사 과정에서 박사 과정까지의 연구는 철저히 선택과 집중에 의해 이루어졌다. 당시 내가 어떤 자기 개발서를 읽어 실천한 것은 아니었다. 만약 그때 자기 개발서 한 권이라도 읽었더라면 좀 더 체계적으로 유학 생활을 보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원래 여러 방면에 관심을 두지 않는 편이다. 그러기에 관심이 가는 것에는 남들보다 한층 더 열정을 가지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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