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가장 기쁜 날의 훼방꾼

by 바람처럼


스무 해의 먼지 속에서

몇몇 생명이 깨어나고 몇은 떠났다

둥지를 이제 털어낸다


먼지 뒤집어쓴 바비인형

책상 위 웃음은 그대로

낡은 문제집을 치우자

서랍 속 일기장이 슬며시 눈을 떴다


해맑던 아이

먼 길 달려온 웃음이

방 안 가득 흩어진다


옷장 속 교복

졸업날 축 처진 어깨

그날의 억지 힘이

조용히 되살아난다


늦은 밤, 이불속 흔들림을 지나

아침에 짓던 미소

햇살처럼 가슴을 적셨다


툭, 떨어진 봉투

상처 입은 통장

도망친 숫자들—

쓰레기봉투로 흘러간다


무릎 튼 바지

땀에 절은 조끼

버릴 수 없는 손자국을 쥔 채

한참을 맴돈다

이 방, 저 방

상자 속 기억들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다 버리려 했는데,

하나도, 나를 떠나 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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