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6.29
다 내려놓은 줄 알았는데 더 내려놓을 게 있었다. 오늘은 그 나머지마저 내려놓은 날이었다. 그동안 내가 프리랜서 식으로라도 부여잡고 있었던 곳으로부터 치료에 전념하는 게 좋겠다는 권유를 들었다. 몸이 회복되면 다시 복귀하라 했지만 사실상 나를 생각한 해고 통보였다. 올 게 왔구나, 나는 어쩌면 이 순간이 올 거라는 것을 짐작이라도 한 것 마냥 속이 다 시원했다. 홀가분한데 마음이 헛헛해지는 건 뭘까 싶었다. 오래도록 몸담고 있던 그곳에서 나는 끝까지 뭐라도 하고 싶었고 그곳에서도 그동안 아픈 나의 처지를 생각해서 나를 많이 배려해 주었다. 그러나 나는 갈수록 입원 횟수가 많아졌다. 이름뿐이었던 직책과 허울뿐이었던 명예와 번지르르했던 욕심 덩어리를 내려놓았는데 정작 나는 울지 않고 나를 둘러싼 사람들이 운다. 나의 자존심을 지켜주느라 애쓴 사람들이 이제는 내가 지고 있는 짐을 내려주고 싶다고 했다. 나를 가볍게 해 주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내가 호수 위의 평화로워 보이는 오리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수면 아래서 정신없이 발버둥 치는 평화로운 오리 같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사실상 오늘 나는 진정한 백수가 되었다. 나는 이제 나의 가정 외에는 이 세상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자유의 몸이 되었지만 나는 왜 자꾸 얽매이고 싶고 또 서글퍼지는 것인지. 일에 고된 자는 쉼을 원하고 쉼에 지친 자는 일에 고되고 싶다. 쉬면서도 마음이 고되다 말하면 복에 겨운 사람이라는 소리를 들을지도 모른다. 고됨과 쉼, 그 사이에서 적절한 중간지점을 도통 찾을 수 없는 것은 이래저래 건강치 못한 내 탓이다. 현재의 나는 과거의 내가 만든 거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납득해야만 하겠지. 과거의 고단했던 내가 부러워하던 쉼을 내가 지금 누리고 있으면서도 나는 피로에 찌든 이전의 삶으로 회귀回歸하고 싶다. 이런 미련함과 우둔함이 또 어디 있을까 싶어 스스로에게 조소 섞인 미소를 지어주었다. 웃음이 이렇게 쓰디쓸 수 있다는 것을 배운 하루, 과거의 나는 현재를 부러워하고 현재의 나는 과거를 부러워한다. 그 모습을 보고서 나의 미래는 껄껄껄 웃었다. 잇닿을 수 없는 서로를 부러워할 거라면 그냥 그냥 그때그때의 나를 부러워하자고 나는 나를 달랬다. 끝까지 붙잡고 싶었던 것, 그러나 붙잡고 있으므로 괴로웠던 것을... 놓았다. 다 내려놓은 줄 알았는데 더 내려놓을 마음이 있었다니 이건 놀라움이다. 이제는 더는 진짜 내려놓을 것이 없겠지라고 잠깐 생각했는데 그것도 내 오산일지도 모른다. 이 세상의 길을 내가 걷는 것 같지 않다. 누군가 이미 정해놓은 길을 나로 하여금 걷게 하고 있는 것 같다. 마치 마리오네트처럼. 오늘은 하루 종일... 내가 지나온 길과 내가 지나갈 새로운 길을 번갈아 바라보느라 나의 하루가 다 갔다. 비가 하염없이 내린다. 길이 다 축축이 젖었다. 굵은 빗줄기가 후둑 후둑 세상을 때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