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닷없는 사람 되고 싶다
문득 아침에 일어나 하릴없는 사람이 되어
첫 번째로 떠오른 사람 얼굴을 느닷없이 찾아가고 싶어지는 날
마패는 없지만 암행어사처럼 불시에 그 얼굴을 찾아가 울고 있는지 웃고 있는지 일어나서 빠릿빠릿 집안일을 하는지 누워서 낑낑대고 있진 않은지 마당에는 잡초가 화초를 덮고서 난리부르스는 안 추는지 빨랫줄의 빨래는 잘 마르는지 현관의 신발들은 가지런한지 가스렌지 위에 냄비에는 무슨 국이 있는지...
한마디로 잘 살고 있는지 보고 싶어지는 것이다 느닷없이
눈물샘은 마른 지 얼마나 되었는지 마음에 뻥 뚫린 구멍은 없는지 손톱은 얼마나 단정한지 내쉬는 숨소리는 얼마나 평온한지 목소리의 옥타브도 측정해 보고 눈빛에 근심은 없는지 발걸음은 사뿐한지 내가 안았을 때 등허리에 타고 내리는 흐느낌은 없는지
왠지 느닷없이 쳐들어가야 정확하게 그 얼굴의 현재를 알 것 같은, 나를 보고 흠칫 놀라는지 나를 보고 반가워서 꼬리는 흔들지 못해도 눈꼬리의 주름은 사정없이 접히는지
첫 번째로 떠오르는 얼굴이 나를 떠나버린 사람이어서 두 번째 떠오르는 사람... 두 번째는 반대로 내가 떠나보낸 사람이어서 세 번째 사람... 세 번째 사람은 나를 울린 사람...
떠오르는 얼굴들이 다 상처가 나있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더니 바람이 내 얼굴에 걸렸다
나도 바람이 되어 바람과 섞여서 바람 흘러가는 대로 무작정 그렇게 그렇게 걸었는데
바람이 멈춘 곳에 나도 멈추니 쨍한 금계국 느닷없는 표정 되어 나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