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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인에게 드리는 詩

by 김추억

<어느 시인에게 드리는 詩>
거친 세월이 느껴지는 소라 껍데기를 어느 시인에게 드려요.

이 마모된 소라 껍데기는 詩가 되거든요.

제가 그렇게 일곱 가지 마법을 걸어 놨어요.

참고로 마모되지 않은 소라 껍데기는 스테고사우루스의 등에 나있는 뿔처럼 단단하고 뾰죡해요.

<소라 껍데기에 걸어둔 일곱 가지 마법>
1. 소라 껍데기를 귀에 대고 있으면 쏴아~파도소리가 들려요. 소라 껍데기 안에서 들려오는 바람 섞인 파도소리를 가만히 듣고 계시면 시가 들려올 거예요.

그러면 바다처럼 깊고 넓은 시를 옮겨 적으시면 됩니다.

2. 소라 껍데기 안에는 시의 주된 맛이라 할 수 있는 짠맛이 품어져 있어요.

그 짠맛이 초고추장이나 고추냉이 같은 신만 단맛 매운맛 쓴맛 오묘한 맛? 등등 인생의 다양한 맛을 만나면 놀라운 감칠맛이 됩니다.

그 감칠맛을 담아낸 시를 쓰시면 됩니다.


3. 소라 껍데기는 꽃게나 쭈꾸미의 훌륭한 은신처, 집이 되어 줍니다.

소라 껍데기에 달라붙은 따개비와 아기 홍합, 아기 굴처럼 누군가에게 집이 되어주는 시가 소라 껍데기에 달라붙습니다.

떼서 쓰시면 됩니다.

뜨거운 햇볕, 추운 비도 막아 주는 지붕 같은 시,

찬 바람을 이겨내는 벽과 창문 같은 시를 읽고 독자들이 위로를 받습니다.

조용한 (시)집에 숨어 눈물을 마음껏 떨구어도 되는... 누군가에게 편안함과 안전함을 내어주는 시가 소라껍데기 속에 있을 거예요.

꽃게와 쭈꾸미들이 고마움에 시를 자꾸 물어다 줄 겁니다.

4. 소라 껍데기 안에서 시원한 바닷바람이 불어요.

바닷바람을 귀에 쐬시면 몸속 구석구석 바람이 붑니다. 그 바람에 앓고 계신 삶의 염증들이 꼬슬꼬슬 다 말라서 치료가 됩니다... 아픔이 치유되어 건강한 시가 나올 거예요.

5. 강아지 같은 사람들의 짖음을 들었을 때 소라 껍데기를 귀에 대면 그 속으로 그들의 짖는 소리가 빨려 들어갈 거예요. 블랙홀처럼요.
(사실 제일 작은 소라 껍데기는 휴대용입니다. 살면서 강아지 같은 사람을 만나러 가야 할 일이 발생했을 때! 필요시 사용하세요.)
그것뿐만이 아니에요.

소독과 정화작용을 하는 바닷물이 소라껍데기에서 나와서 귀를 말끔히 씻어 줄 거예요.

안 들은 귀 삽니다!라고 외치고 싶을 때 소라 껍데기를 얼른 두 귀에 갖다 대 씻으세요.

그러면 평온한 마음에서 고요한 시가 나오게 될 거예요.

6. 소라 껍데기 안의 공명이 늘 울림통 역할을 해서 시인의 피부와 심장이 늘 시를 느끼며 살 겁니다.

보고 듣는 것마다 시가 되는 마법입니다.


7. 소라 껍데기는 돈이 되지 않아 시인님이 이 선물을 받는데 아무 부담이 없죠.

그런데 돈이 되는 시가 소라 껍데기 안에서 나옵니다.

파도 소리가 그 안에서 그치는 일이 결코 없듯 영혼을 울리는 시가 지칠 줄 모르고 끝없이 나올 거예요.


우체국에 가서 빠른우편으로 소라 껍데기를 부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요.

그치만 계신 곳을 알 수 없어서 보내 드릴 순 없네요.

어느 날 운명이 우리를 만나게 할 날에 이 소라 껍데기를 드릴게요.

그때까지 제가 잘 간직하죠.

지금은 그저 이 마법 같은 詩만을 드릴 수밖에요.

마모된 소라껍데기 안에서 詩가 나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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