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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 터미널

by 김추억
멀리 현수막 하나가 나를 부른다. 가까이 갔더니 현수막이 내게 말을 건넨다. ​

<해운대 터미널>

여보세요, 해운대로 바로 가는 터미널이 생겼어요. 그거 아세요? 해운대 터미널은 당신을 위해 건설되었어요. 어때요? 해운대 버스로 바로 몸을 실어보시겠어요. 아! 오늘 詩도 써야 하고 걷기도 해야 하고 낮잠도 자야 한다고요? 음, 그렇담 이렇게 하시죠. 해운대까지 가는 소요시간 세 시간 동안 시를 쓰시죠. 마침 시 쓰기 좋은 계절이네요. 창밖 풍경을 감상하시면서 떠오르는 시상들을 받아 적으세요. 그럼 시 쓰기 계획은 해결됐고, 걷기는 해운대 백사장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한 번 걸어 보세요. 혹시 부산에 사는 친구가 있나요? 연락해 보세요. 친구가 시간이 된다 하면 잠깐 점심 한 끼 사주고 오세요. 친구가 연락을 안 받으면 그냥 간헐적 단식한다 생각하고 한 끼 굶으세요. 친구를 만나게 되면 행복하고 못 만나게 되어도 당신은 가벼워지고 건강해져요. 마지막 계획이 뭐였지요? 아, 낮잠! 낮잠은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주무세요. 그거 아시잖아요. 잠은 교통수단에서 자야 꿀잠이라는 거요. 흔들림 없는 편안함도 좋겠지만 저는 당신이 덜컹거리는 삶에 더 익숙하고 편안해한다는 것을 알아요. 아! 곧 버스가 출발해요! 어떻게 할 거예요! 갈 거면 서두르시고 안 가신다 하면 당신을 위해 건설된 해운대 터미널이 오늘도 당신을 기다리며 울겠죠 뭐.


오전 9시 10분 버스를 타버렸다. 해운대에서 오후 2시 30분 버스를 타고 다시 돌아와야겠다.
지금은 풍경 속에 詩 쓴다. 버스 창문에 주룩주룩 하늘의 눈물 자욱이 너무 심각해서 풍경을 바라보며 쓰여진 모든 詩가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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