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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은 곧 그 사람이라 믿는 편

by 김추억

글은 곧 그 사람이라 믿는 편.

글을 읽다 글과 사랑에 빠지곤 하는 편.

잘생긴 글과 예쁜 글에 맥박이 빨라지는 편.

가만히 있는 글에서 움직이는 감정이 보이는 편.

가만있는 글에서 맥없이 유혹당하는 편.

유혹하는 글에 마음을 뺏기기 싫어 이성적으로 까칠하게 구는 편. 그러나 지성의 언어에 이성이 얼마 못 버티는 편.

사랑에 빠진 글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계속 뚫어져라 보는 편.

차마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글을 만나면

수도 없이 그 글을 몰래몰래 훔쳐보는 편.

매력적인 글 앞에서 몹시 수줍어하는 편.

나를 이해하는 고마운 글을 만나면

빗소리에 숨어들어 흐느끼며 우는 편.

탄복하는 글은 흠모까지 하는 편.

흠모하는 글 앞에서 무릎까지 꿇고 무장해제 되어 버리는 편. 헤어 나오지 못하고 그 글과 밤을 지새우는 편.

사랑하는 글에게 영혼을 바치고 싶어 안달하는 참으로 어리석은 편. 그 글이 시키는 대로, 혹은 할 수 없는 일 마저 하고야 말리라 각오하는 꽤 멍청하고 무모한 편.

설레는 글 주위를 다리 아픈 줄 모르고 맴도는 편.

한밤중에 전화해서 목소리를 듣고 싶은 글, 그래서 자꾸 떠오르는 문장에 전전긍긍하는 편.

사랑에 빠진 글에 온 마음을 올인하는 편.

매력적인 글에 일단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오지 못하고 중독되는 편.

애달픈 사랑이 되어 그 글의 좌표를 묻고 어떻게든 찾아가고야 마는 편.

사랑하는 글과 손잡고 싶은 편, 팔짱 끼고 고개를 기대고 싶은 편. 아니, 글의 품 속에 푹 파묻혀 글의 숨소리와 글의 심장소리를 들으며 영원히 잠들고 싶은 편.

그 글과 모든 시간을 함께 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 마음이 아픈 편.


글은 곧 그 사람이라 믿는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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