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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게 3

by 김추억

오늘은 아침에 잠깐 병원에 갔다 왔고
집에 오자마자 창문을 열어 놓고 지금 이 시각까지 잠을 잤어.

요즘은 창문 밖으로 새소리보다는 매미소리가 더 크게 들려와. 매미소리가 멈추면 새소리가 그제야 들리고 다시 매미소리가 시작되면 새소리가 매미소리에게 잡혀 먹혀. 계속 이렇게 매미소리와 새소리가 번갈아 가며 들려온다.
이 매미소리는 분명 백색소음일 거야.

그냥 소음이었다면 나는 벌떡 일어나 창문을 이중으로 걸어 잠갔을 것인데 이 시끄러운 매미소리가 꽤 좋은 자장가가 되어준다.

오늘은 게으를 수 있어 행복한 날이야.
오늘은 게을러서 이 편지를 쓴다.
나는 난생처음 부산에 가서 부산스러운 맘을 정리하고 왔어.
오늘 하루는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누워서 게을러야 하는 날이고 내일 하루는 인생 전략을 잘 짜는 날이고 내일모레부터는 움직여 보는 날이 될 거야.

너 지금 내일은 없다고 피식거렸지?

내 속도로 달려야지 네 속도로 달리다간 난 나가떨어질지도 몰라.
바쁜 일상을 살아가고 있을 너에게 내 게으름이 갑자기 민망해한다.

한철 들리다 사라질 매미소리가 슬프고 아름답고 또 굉장히 간절하게 들려온다. 지치지도 않아. 잠깐 호흡을 가다듬는 시간이 있을 뿐이고 매미소리는 또다시 들려와. 매미소리는 내가 잘 들어줄게. 매미소리는 배고픔도 없는지 점심시간도 없어. 나는 배고파서 밥 먹을래.

친구야, 너의 하루를 응원할게. 밥 단디 먹고 좋은 하루 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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