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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게 2

by 김추억 Feb 21. 2025

아이를 등교시킨 것까진 기억이 나는데 내가 왜 거실 바닥에서 잠이 들어 있는지는 기억이 나지가 않아. 나는 기절한 꿈 속에서 기절초풍할 만한 꿈을 꾸고 그 충격으로 깨어났어. 악몽이 나를 살린 것 같아. 잠시 웅크려 정신을 차리고 있는데 아이가 학교 끝나고 들어온다. 내 하루가 어디 갔니? 아이는 학교 텃밭에서 따온 방울토마토라면서 바지 양쪽 주머니에서 귀여운  동그라미들을 내게 건네주고는 친구랑 논다고 스피드 하게 나가버렸어. 아이가 문을 닫기 전 외치는 소리가 기가 막힌다. 방울토마토에 농약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해 주고 자기 것도 남겨달라는 말이었어.


문득 오늘 글 한 자도 못 쓴 게 생각이 나다니 나는 제법 성실한 사람인가 봐. 그런데 이 상황에서 글을 쓴다는 게 제정신 같지 않아 보여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편지만 쓰고 오랜만에 입원하러 가야 할 것 같아.  

너와 농담을 주고받는 일상이 재미져서 한동안 내가 아픈 사람임을 잊고 지냈어. 고마워.

지금 나는 병원보다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바다에 가고 싶어. 낯선 곳을 뭐 이리 좋아하는지 내게 물으면 나는 단박에 대답할 수 있어. 낯선 곳에 가고 싶은 이유 말이야.

기억도 추억도 없는 곳!
나를 알지 못하는 곳!
나에게 슬픔도 기쁨도 줘 본 적 없는 곳!
낯선 것들에 호기심을 갖고 둘러보느라 이런 걱정, 저런 시름 내려놓을 수 있는 곳!
가끔 내가 아는 풍경과 비스무리해서 당황스러운 곳도 있지만 그래도 좋아!
장소만 옮겼을 뿐인데
새로운 나, 전혀 다른 나로 서 있는 그 기분을 설명할 길이 없어! 아무튼 뭉클하고 좋아!

친구야, 내가 건강했다면 너랑 재미난 추억을 쌓고 여기저기 돌아다닐 텐데 그게 좀 내 인생에서 아쉬워. 나의 아쉬움이 너에게 참 다행인 줄 알아라.

죽기 전에 너와 함께 하고 싶은 버킷리스트 하나 생겼는데 들어나 봐. 글쎄 순천에 사는 내 친구가 (나보다 다섯 살 많은 애기 엄마인데 그냥 친구 삼아버림) 얼마 전에 용골산에 갔다 왔다고 하는 거야. 한국의 장가계라면서 막 사진을 보여 주면서 자랑하더라. 그러면서 추억이 너는 아파서 중국의 장가계까지 못 가니까 한국의 장가계는 꼭 가보라고 이야기해 주었어. 70세부터는 무료입장이라고 알려주더라.

너랑 한국의 장가계에 꼭 가고 싶어. 아주아주 아슬아슬하고 스릴 만점이래. 그곳에선 휴대폰 꽉 쥐고 사진 찍으래. 휴대폰 떨구는 순간 다시 찾을 길이 없는 철벽 천 길 낭떠러지래.

친구야, 친구야, 친구야.
너를 이렇게 부를 때 나는 살고 싶어 져.
나는 살고 싶은 순간이 별로 없었어. 그냥 살았지 뭐.
그 힘든 일을 네가 해 낸다.
나 이렇게 주절거릴 때가 아닌데 이렇게 떠들고 있다니...
이 우스운 일을 네가 해 낸다.



2024/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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