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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에게 1

by 김추억 Feb 20. 2025

새벽에 눈이 떠졌어.
어둠 속에서 가만히 앉아 깊은숨을 몰아 쉬었지.

'꿈이었구나.'

나는 안도했어. 시간을 확인해 보니 새벽 4시 25분.
다시 잠들기엔 글러버린 꿈을 꾼 거야.
나는 꿈을 칼라로 꾸니까 꿈속에서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분별하기가 매우 어려워.
그래서 흥미진진하게 꿈을 꾸지.
얼마나 몸에 힘을 주고 꿈을 꾸는지 알려 줄까.
주먹을 꼭 쥐고 꿈을 꾸는 모양인데 꿈에서 깨어나면 손목이 몹시 구부리기 힘들 정도로 경직되어 있어.
오늘은 어떤 꿈을 꾸었는지 이야기해 줄까.
꿈속에서 어떤 여인이 바쁘게 걸어가는 걸 보았어.
그 여인 뒤로 그림자 하나가 여인의 몸에 들어갔다 나왔다 다시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꿈.

그러니까 그림자가 여인을 쫓아가기 바쁜 꿈이었어.
그런데 말이야, 그림자가 누워있는 게 아니라 서 있었어. 그 여인의 키와 똑같은 그림자였는데 그림자가 많이 힘들어 보였어.

그 여인은 씩씩하게 걸어가는데 그림자는 부드러운 곡선으로 흐느적거렸고 이따금씩 보이는 표정은 무너지듯 지쳐 보였어.
그림자 색은 검은색이 아닌 조금 밝은 잿빛이었는데 그 여인의 몸에 들어갔다 나왔다 할 때마다 명암이 조금씩 달라졌지.
그때 어떤 할아버지 한 분이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어.

"지금 저 그림자가 보이면 안 돼."

그 소릴 듣고 나는 꿈속에서 굉장히 무서웠어.

무슨 의미인지 되묻진 않았지만 본능적으로 무서웠어. 많이 무서웠어. 꿈인 줄 몰랐으니까 현실에서 느끼는 두려움과 같은 거지.
저 그림자가 보이면 안 된다는데
보이는 걸 어떡해.

나는 순간 두 눈을 질끈 감아 버렸어. 그러니까 세상이 암흑이 되었어.
눈을 감는다고 해서 눈앞에 있는 것이 없어지는 건 아닌데... 바보 같았지.
그런데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두 눈을 질끈 감아버리는 일 밖에는 없었어.

꿈속에서 간신히 깨어났는데 몸이 몹시 아팠어.
꿈이 질척거려서 몸이 아픈 걸까, 아니면 몸이 아파서 이런 꿈을 꾸게 된 걸까.
침대를 짚고 있는 손바닥, 손가락 끝을 뿌리 삼아 손바닥을 세워 보았어. 미등에 그림자가 바로 생겨 났지. 그림자가 누워 있는 걸 보고 입꼬리가 올라가며 웃음이 났는데 그림자가 따라붙듯 시큰한 마음이 따라붙었고 눈물도 쫓아왔어.

내 의식은 내 힘겨움을 수천 번, 수만 번도 넘게 다 흘려보냈다고 생각했는데 왜 내 무의식은 내 의식과 따로 놀고 있지? 꿈속에서 일어나는 일은 내가 도통 제어 할 수가 없어. 통제 불능이야. 내 잘못이 아니야. 내 의지랑은 상관없다고. 그러니 나를 답답해하지 말아 줘. 그러니 잠들기가 싫어서 버티게 되잖아.
안녕히 주무세요 라는 인사처럼 듣기 좋은 인사가 없어.
몸이 허해지니까 그냥 이런 꿈을 꾼 거겠지?
또 쓸데없는 주절거림이지? 미안해.
그냥 원기회복 염소즙 하나 주문해서 먹으련다.



2024/5/10  입원 中에 쓴 무시무시한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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