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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중심中心

by 김추억

어머니, 겨울이 이렇게 아름다운 줄 알았다면 저는 추위를 구차하게 피하려 하지 않았을 거예요. 저는 이제서야 겨울의 풍경 속을 거닐어요.
제게 따뜻한 옷과 신발이 생겼거든요.
따뜻한 모자와 장갑도 있어요.

어머니, 제가 오늘 맨 처음 거닐은 곳은 겨울의 들녘이었어요. 사람이 추위에 닭살이 돋듯 땅들이 모두 쭈뼛쭈뼛 곤두서 있었어요. 그 모습이 어느 집 담장에 박아둔 유리조각처럼 날카로워 보였어요. 자동차 타이어가 펑크 나듯 제 신발의 밑창이 터지진 않을까 염려가 들 정도였어요.
제가 땅들을 위한답시고 땅의 날카로운 신경들을 두 발로 지근지근 눌러주었는데 잘한 건지는 솔직히 모르겠어요.

어머니, 떨어진 낙엽들마다 천사의 날개옷을 입고 빛나고 있었어요. 냉해 입은 것들에게 햇살마저 비치니 반짝거림이 얼마나 심한지 저는 눈이 부셔서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어요. 푸른채로 얼음의 결정이 되어버린 풀들을 만났는데 미안하게도... 그 아름다움은 제 기억 속에서 영원할 것 같아요.
어머니, 죽어간 모든 것들을 아름답게 입히는 계절이 겨울인 줄을 알았다면 저는 얇은 이불속에서 덜덜 떨고만 있지 않았을 거예요. 이불을 박차고 겨울의 중심 속에서 실컷 아름다움을 만끽했을 거라구요.

어머니, 사시사철 소나무가 푸르다는 것은 거짓말이었어요. 가시 같은 솔잎이 전부 얼어버려서 흐릿한 청녹으로 변했어요. 다른 계절에 볼 수 없는 빛깔이었는데 봄이 되면 시침 떼고 사계절 푸른 듯하고 있겠지요.
어머니, 솔잎처럼 냉동인간은 왜 다시 살아나는 법이 없을까요. 사람은 나무처럼 뿌리가 없어서 그런가 봐요.

어머니, 어쩌다 저는 깊은 산속까지 들어와 버렸어요. 겨울의 중심은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깊은 산속에 숨어 있다는 걸 알았어요. 세상의 모든 것을 집어삼킨 눈雪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아니더군요.
그 차가운 걸 보듬기 위해 대지도, 나뭇가지와 작은 돌멩이마저도 모두 차가운 냉기가 되기로 결심했던 것을 제가 진즉 알았더라면... 저는 겨울을 원망하며 살지 않았을 거예요. 누군들 따뜻한 품이 되어주고 싶지 않을까요. 원망소리, 미운소리 들으며 그 누가 차가운 걸 맞춰주고 견뎌주겠어요. 겨울이 감사하다는 걸 알았더라면 저는 겨울을 녹이는 뜨거운 눈물을 결코 언 땅에 떨구지는 않았을 거예요.

어머니, 눈 덮인 길이 보석처럼 반짝여요. 얼어버린 세상은 차가운 다이아몬드길을 펼쳐주네요. 어머니, 꽃길을 걸어본 사람은 있어도 다이아몬드길을 걸어본 사람은 없을 거예요. 다이아몬드길인지도 모르고 걸었을 테니까요. 찬란한 길에서 미끄러져 엉덩방아를 찧었는데 그마저도 재밌어서 웃음이 났어요. 신비가 서린 이 길에서 저는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어도 좋았어요.

어머니, 왜 제게 가르쳐 주지 않았나요. 어머니도 모르셨나요. 이 시린 계절이 이토록 아름답다는 것을요. 겨울이 이토록 아름답다는 걸 알았다면 제 상처도 아름답게 얼릴 수 있었을 거예요. 이 흉터를 이제라도 이대로 얼려 볼까요.

엄마, 나랑 함께 겨울을 거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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