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꽃인가 봅니다.
이 계절의 호락호락하지 않은 꽃샘추위는 찬 기운을 동반하며 몸을 경직시킵니다. 나는 여전히 겨울잠을 자야 합니다. 여전히 봄을 기약하며 웅크리는 일을 해야 하는 계절입니다.
찬서리에 냉해 입은 밭작물처럼 내 몸도 찬 기운에 노출되어 한 번 얼어버리면 몇 날 며칠을 회복하는 데에만 에너지를 써야 합니다. 그것을 알면서도.. 오늘 몰래 병동 밖을 나가서 병원에서 조성해 놓은 궁궐 같은 정원을 걸음마하듯 한 걸음 한 걸음 감사히 걷고 서늘한 산 아래에 자리 잡은 호수에서 찬바람도 쐬었습니다.
사막의 바람이 모래 언덕을 깎아 흔적 없이 사라지게 하듯이 내게 불어닥치는 호숫가의 바람들에게 나의 아픔을 깎아 사라지게 만들라는 엉뚱한 주문도 했습니다. 무모하지만 내 몸이 냉해를 입어도 좋을 만큼의 풍광을 눈에 담고 왔습니다.
불과 작년까지만 해도 제 끙끙대는 소리가 삶의 질을 뚝뚝 떨어트리는 소리로 들렸으나 지금은 이 끙끙대는 소리가 삶을 이겨내는 대견한 소리로 들려옵니다. 왜일까요. 아픔에 공격당하여 신음하는 소리가 아니라 아픔을 이겨내는 건강한 소리로 들립니다. 마냥 힘겹게 들리지 않는 것은 마음이 희망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한때는 희망이란 녀석이 아주 잔인한 구석이 있어서 친하게 지내지 않으려 외면했었습니다. 그렇지만 결국 내가 기댈 곳은 이 녀석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오늘까지 버티고 살아가는 이유도 이 녀석 때문인 것을 알고 있어요.
슬프게 빛나는 나의 희망은 지금 이불속에서 나를 꽉 껴안고 있습니다. 나의 희망은 따뜻하다거나 차갑거나 하는 온도는 없어요. 다만 나를 아주 꽉 껴안아주는 압력이 있습니다. 숨은 쉬게 해 주는 꽉 막힌 압력입니다. 덕분에 야무진 붕대에 칭칭 감긴 미라처럼 엉성함이 없습니다. 내 몸을 부두껴 안아주는 희망 덕분에 헐렁하거나 허전함도 없이 제가 지금 안정감을 느낍니다. 나를 안아주는 존재가 있어서 감사합니다.
희망은 나와 함께 밤하늘의 까만 여백을 다 채울 듯 별자리의 이음줄을 건들지 않고서 낙서도 하고 그림도 그리면서 시간을 때워줍니다. 보이지 않는 별똥별도 함께 받아냅니다. 별과 별의 반짝임도 비교하며 어느 별나라에 가는 게 좋을지도 함께 고민해 봅니다. 오늘도 간절한 나의 소원을 말없이 듣고 있습니다.
통증은 하룻밤을 꼬박 이리 뒤척 저리 뒤척이게 합니다. 이불속의 뒤척임은 아주 살살, 최소한으로 합니다. 그리움 하나가 바람 되어 탄생할까 봐, 지금 이 애매한 계절에 탄생하면 그리움이 너무 고생할까 봐 그렇습니다.
혹시 행복해서 우신적이 있으실까요. 행복이 가득 차서 행복이 사라질까 봐 불안에 떨은 적은요? 제가 요즘 더욱 그렇습니다.
많은 말들을 하고 싶었던 열정들은 냉해를 입고 주춤합니다. 많은 이야기를 꺼내지 않아도 많은 이야기를 건넨 것 같습니다. 제 수많은 이야기가 들리신다면 기적 같은 일일 것입니다.
나와 함께 밤을 견디는 희망 하나, 희미하게 반짝이는 별빛, 나의 부주의로 어쩔 수 없이 탄생한 그리움들이 제 이야기를 듣습니다. 이 분위기와 이 차분한 감성이 아름답습니다. 그래서 행복해서 눈물짓는 것입니다. 그래서 또 불안한 것입니다. 늘 빼앗겼던 행복을 이 병약한 몸뚱이로 지킬 수 있을까요.
행복이란 단어는 너무 거대하고 거창한 것 같아 바라지도 않고 붙잡지도 않아야 할 듯합니다.
희망이 건네는 행복, 또 희망의 배신은 어쩌면 제 영역밖의 일인 것 같아 체념과 함께 감사를 배우고 달관함에 이릅니다.
이왕 새는 밤, 저도 밤을 새워 시를 쓰는 숨결이 되고 싶은데요, 자신이 시인인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시를 쓰시라고... 나의 이 아까운 밤을 드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2024/2/24 am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