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씨, 당신 안의 분노를 다 뽑아내면 당신 안에는 무엇이 남는가요. 당신은 재가 되어 사그라드나요, 아니면 또 다른 분노가 스멀스멀 리필되나요.
언제 터질 듯 모르는 아가씨는 활화산, 뜨거운 당신 앞에서 나는 언제나 차가운 살얼음 길을 걷고 있어요.
아가씨, 당신이 내뿜는 뜨거운 수증기를 나만이 쐬입니다. 아니, 당신은 나에게만 수증기를 발사해요. 그렇게 해서라도 아가씨가 터지지 않으면 다행이지만...
그 수증기를 자꾸 쐬면 나는 어찌 되는지 아십니까.
데쳐진 시금치 보셨습니까. 아무튼 데쳐진 나물들이요. 당신의 홧김, 콧김, 뚜껑 열린 머릿 수증기에 내 세포들은 화상을 입고 숨이 푹 죽어요. 내가 그러면 얼마나 살겠어요. 서서히 아무도 모르게 나는 데쳐지다가 사람들이 사인死因도 찾지 못하고 아가씨만이 아는 나의 사인에 혹여 아가씨 가슴이 죄책감에 눌려 숨도 못 쉴까 걱정이 됩니다. 나는 데쳐지면서도 끝까지 아가씨 걱정을 했다는 거 아가씨는 아실랑가요.
아가씨, 활화산이 휴화산이 되려면 아가씨가 빨리빨리 끓어 폭발하는 방법밖에는 없는가요. 아가씨의 폭발이 작은 분화구로만 남길 바랍니다. 글쎄 어떤 화산은요, 폭발이 굉장해서 산 자체를 날려버린다네요. 아가씨, 폭발하실 때 부디 조심하세요. 아가씨, 당신의 폭발 전조증상 좀 알려주세요. 이를테면 새떼들이 미친 듯이 울어댄다거나 동물들이 일제히 어딘가로 향해 뛰어간다거나 하는...
아가씨, 사랑해요. 아, 뜨거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