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고3이 되었다. 주위에서 힘들겠네 하는데 처음엔 내가 뭘 힘들어? 했다. 근데 점점 정신적으로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아이는 방학이 되면서 다니고 있던 학원들을 다 정리하고 혼자 인강 들으면서 공부하고 싶다고 했다. 나는 절대 안 된다고 했다. 나는 학원 강사라서 아이들이 학원을 그만둘 때의 패턴을 안다. 아이들이 인강 들으면서 혼자 공부하겠다는 것은 곧 공부 안 하겠다는 얘기다. 근데 이 말에 부모들은 속아서 학원을 끊고 혼자 잘하리라 믿는다. 하지만 몇 개월 후 학부모는 울먹이며 다시 학원을 찾아온다. 샘 말이 맞았어요. 한 일주일 하더니 점점 게임만 하고 이제는 공부는 전혀 안 하는 거 같아요. 그나마 올려 논 성적은 다시 바닥을 치고 어떻게요? 하며 말이다. 그럴 때면 나는 아이들 말을 그대로 믿은 학부모가 참 안타깝기도 하고 야속하기도 했다.
그래서 난 아이들 말을 잘 믿지 않는다. 아니 믿을 수가 없다. 내 데이터에는 잘 된 케이스가 없기에.. 하지만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고. 아이가 계속 고집하는데 별수가 없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때 그 부모들도 모르는 게 아니라 알면서도 속아 준 게 아닐까 하고.
암튼 마지못해 학원들을 정리하고 그러면서 아이 방도 한번 정리해 주기로 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쓰던 책상을 사무용 큰 책상으로 바꾸어주고 의자도 좀 더 좋은 걸로 바꾸어주었다. 공부하기에 좀 더 쾌적한 환경으로 정리하다 보니 이제는 쓰지 않는 물건들이 꽤 많이 나왔다. 전집 책들, 장난감, 악기, 책상 등 그냥 버리기에는 좀 아까운 물건들이었다.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가 당근 사이트에 올려보기로 했다. 우선 부피가 제일 큰 책상을 찍어 2만 원에 올려보았다. 몇 시간 후에 거래 가능하냐는 톡이 왔다. 이게 되는구나. 그렇게 첫 거래를 잘 끝나고 다음에는 플루트다. 플루트는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학교 수업 때문에 구입한 것이다. 플루트를 닦고 있으니 플루트를 처음 구입했을 때가 생각이 났다. 아이가 국제중학교에 합격해서 너무나 좋고 한편으론 걱정도 많이 되고 하던 때였다. 중학교를 졸업하면서 아이가 그때 플루트를 당근에 팔겠다고 했었다. 난 그때도 안된다고 말렸다. 나중에 취미로 할 수 있지 않겠다며. 나는 어릴 적에 다양한 악기를 많이 배워보고 싶었다. 피아노, 바이올린, 비올라, 드럼 등, 그때 내가 배운 건 피아노였는데 그때는 피아노를 배우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할 때여서 다른 악기는 꿈도 못 꾸었다. 그래서 난 아이가 다양한 악기를 배워보기를 원했다. 아이는 피아노, 바이올린, 플루트까지 배웠지만 어느 하나 별로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이번에 다 정리하려고 한 것이다. 플루트 사진을 찍고서 얼마에 올려야 하나 고심하다 처음 악기를 샀을 때의 1/3 정도인 10만 원에 올려보았다. 좀 비싸게 올렸나 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구입하고 싶다는 톡이 왔다. 꼭 구입하고 싶다고 내일 갈 테니 다른 곳에 팔지 말라고 신신당부까지 한다. 이쯤 되니 나는 당근거래가 너무 재미있었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이번엔 무엇을 팔까 하고 물건을 찾아보고 있는 거다. 프런터기, cd플레이기, 서랍장.. 이것들도 잘 팔 수 있으려나. 왠지 모르게 뿌듯한 하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