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의 순간

by 재인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은 두려움이다. 실패할까 봐 두려운 걸까? 이것은 아이의 마음을 대변한 마음일까? 나의 순수한 감정일까? 내가 느끼는 막연한 두려움은 마치 내가 20년을 키워 온 나의 아이에 대한 성적표를 받는 기분이다. 아니 평가서를 받는 느낌이기도 하다.


오늘부터 정시 원서를 접수한다. 결정해야 할 일이 이제 정말 끝에 다가온 거다. 웬일인지 아침 일찍 깬 아이에게 아침을 차려주며 얘기를 꺼냈다. 나는 마지막으로 확인차 하는 얘기였는데 아이는 같은 얘기를 반복하는 내가 짜증 난다는 말투다. 조심스럽게 다시 같은 공부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 시간을 다른 것에 쓰는 게 더 효율적이 아닐지에 대해 주절이 주절이 얘기해 본다.


내가 살아온, 내가 살아본 삶에 대해서 아이에게 얘기해 주고 싶고 너는 좀 더 나은 삶을 살아가면 좋겠다는 말을 하고 싶은데, 너의 선택을 존중하고 응원한다는 말을 하고 싶은데 정작 하는 말은 퉁명스럽게 나오는 부정적인 말들뿐이다.


어젯밤 잠이 오지 않아 손에 들었다가 다 읽게 된 이정훈의 “위로는 서툴수록 좋다”에서 그는 “살아간다는 것은 계속해서 마주하는 것이다. 두려움을, 타자를, 그리고 자기 자신을, 그 마주함의 순간들이 쌓여 우리는 조금씩 더 온전한 존재가 되어간다.”라고 했다.


나이가 들면 모든 걸 척척 결정하고 해결하는 줄 알았다. 안정되고 걱정 없는 삶일 줄 알았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더 겁은 많아지고, 더 두려움이 앞서고, 점점 더 결정장애가 오는 거 같다. 그러면서 가끔은 이런 마음을 들킬까 봐 걱정도 된다.

이정훈 작가의 말처럼 살아간다는 것은 계속 마주한다는 말이 맞는 거 같다. 인생은 계속되는 선택의 연속이고 그 선택에 책임지는 것이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마침내 원서를 접수한다. 원서는 3일 동안 접수할 수 있고 대부분은 눈치 싸움을 하며 마지막 날에 접수한다고 한다. 하지만 접수 기간 3일 내내 더 이상의 갈등을 하고 싶지 않아, 더 이상의 머리싸움을 하고 싶지 않아 소신껏 접수를 끝낸다.


왈칵 눈물이 쏟아진다. 왜일까? 무엇에 대한 눈물일까? 시험을 끝내고 그간 마음고생에 대한 눈물일까? 앞으로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의 초조함에 대한 눈물일까?

오늘 밤도 잠을 자기는 그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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