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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고 동창

by 재인

내 고등학교 친구들은 다들 멀리 산다. 그렇다고 지방에 사는 건 아니고 서울에 사는 나만 빼고 다 경기도에 흩어져 산다. 다 떨어져 살다 보니 한 번 모이기가 쉽지 않다.

이번 주말은 누가 약속이 있어서 안 된다고 하고, 토요일은 아이 학원 픽업해야 해서 안 된다고 하고, 다음 주말은 시댁에 가서 안 된다고 하고,

연말에 보기로 해서 미리 11월부터 날짜를 조율했는데도 다 같이 볼 수 있는 날이 없다. 아니 도대체 언제 시간이 되는 걸까? 아니 만날 생각은 있는 걸까?


그렇게 2024년 연말은 만나지 못한 채로 해를 넘겼다. 다음 해 연초에 보기로 잠정적 약속을 하고..

2025년이 되었다. 그리고 1월이 지나고 2월이 지났다. 아무에게도 연락이 없다. 나만 기다리고 있나? 나만 약속을 기억하고 있나? 내가 뭘 잘못 알아들었나? 별생각이 다 들었다. 그래서 단톡방에 글을 남겼다. 우리 언제 만나냐고?

근데 돌아오는 답은 지난 연말과 별반 다르지 않다. 누구는 이번 달에 시댁에 행사가 많다고 주말에 시간 내기 어렵단다. 누구는 지금 싱가포르 여행 중이라 다녀와서 연락하자고 한다. 그리고 누구는 다음날까지 그 카톡마저 확인하지 않고 있다. 하. 마치 내가 만나 달라고 징징대는 꼴 같다.

하긴 예전에도 그랬다. 우린 다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까지 다들 비슷하게 결혼을 했다. 그리고 시험관 시술로 6년 만에 아이를 가진 나 빼고는 다들 수월하게 첫째, 둘째를 낳았다. 그래서 우리 아이는 친구들 아이의 둘째와 비슷한 나이다. 그 당시는 내가 아이를 가지기 전이라 내가 친구들이 사는 곳으로 만나러 다녔다. 평촌에도 가고 안산에도 가고 분당에도 가고.


그러다가 내가 아이를 가지게 되고, 키우게 되면서 일과 육아를 병행하느라 친구들 생각을 하지 못했다.

어느 날인가 문득 친구들 소식이 궁금했다. 다들 잘살고 있나? 누구 첫째는 벌써 고3이겠네. 누구 신랑은 이제 집 근처로 발령받았으려나? 그때는 주말부부였는데, 누구는 이제 시집살이가 좀 나아졌으려나?

사소한 것들이 궁금해지자 나는 당장 친구들 연락처를 찾아 단톡방을 만들고 친구들을 한 명 한 명 초대를 했다. 갑자기 톡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마치 다들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처럼. 무지 반가웠다. 서로의 안 부을 묻고, 아이들 학교 얘기도 하고, 신랑들 얘기에 시댁 얘기까지,

1시간이 넘도록 카톡방은 불이 났다. 친구들은 내가 분가를 해서 시어머니랑 따로 산다는 얘기에 흥분했다. 그리고 우리 아이가 국제중에 다니고 있다는 얘기에 놀라워했다. 우리는 한번 만나자는 의견을 모으고 약속날짜를 정하고 지칠 줄 모르던 톡을 종료했다.


그 후로 우리는 1년에 1-2번 정도는 만나자고 해 놓고 4년 동안 딱 2번 만났다. 내가 단톡방을 만들고 우리가 흥분해서 만났던 그날 뒤로 1번 더 만난 셈이다. 그사이 친구들 아이들은 대학에 들어가고, 군대에 가기도 하고, 재수를 하기도 하고, 우리 아들은 고3이 되었다.

세월은 금세 지나간다. 10대에 만나 벚꽃 피던 봄에 교정에서 짧은 카트 머리에 교복을 입고 사진을 찍던 게 엊그제 같은데, 그때 누구 집에서 ’ 더티 댄싱‘이란 비디오를 빌려와 몇 번이고 돌고 보곤 했었는데, 벌써 50대가 되었다니. 이제 조금 있으면 누구의 아들이 결혼했네, 누구 딸이 손녀를 낳았네, 하겠지.


그러니 얘들아, 우리 자주자주 만나자.


얘들아, 보고 싶다. 연락 좀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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