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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지배하는 호르몬

by 재인

나는 원래 남의 얘기를 귀담아듣는 사람이 아니다.

더군다나 남이 하는 얘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도 아니다. 그렇다고 내 얘기만 하는 스타일도 아니지만.

아무튼 나는 프로 리스너는 아닌데, 요즘 들어 남의 말을 잘 듣는다.

아니, 남의 얘기를 많이 들으러 다닌다.


오늘은 도서관의 날 행사로 도서관에서 주최하는 한 강의를 들으러 왔다.

강의 주제가 호르몬의 한 종류인 ‘도파민’에 관한 것인데, 강의가 듣고 싶어서라기보다는 이번 달 주민기자단 기사로 괜찮다 싶어 취재차 오게 되었다.

토요일 오전 이여서인지, 작은 강의실인데도 사람들이 꽉 차지 않아서, 강의하러 오신 샘은 호르몬 분야에서는 꽤 유명한 분이라고 하시던데, 강의를 계획한 도서관 사서가 좀 민망해하는 거 같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샘은 2시간을 꽉 채운 재미있고, 알찬 강의를 해주셨다.


호르몬이란 일반적으로 신체의 내분비기관에서 생성된 화학물질을 통틀어 말한다고 한다.

샘은 호르몬은 우리 몸 안에서 생성되는 물질이고, 비타민은 우리 몸에서 생성되지 않는 물질이라고 한다.

그래서 비타민은 따로 섭취해야 하는 것이고, 호르몬은 관리할 수 있다고 하신다.

사람은 태어날 때 멜라토닌을 가지고 태어나서 점차 성장호르몬을 통해 성장하고 인슐린, 코르티솔, 도파민 등 다양한 호르몬(약 4천 가지 정도의 호르몬이 있다고 한다.)이 분비되다가 노년기에 들어서면 성장호르몬이 줄어들면서 노화가 시작되고, 멜라토닌이 줄어들고 죽음에 이르게 된다고 한다.

성장호르몬은 성장기에만 나오는 걸로 알았는데, 성장기를 지나면 줄어들 뿐 계속 나온다고 한다.

특히, 성장호르몬은 노화와 관련이 있다고, 잘 관리하면 천천히 늙을 수 있다고 한다.

요즘 말하는 저속 노화인가 보다.

여기서 잘 관리한다는 것은 체계적인 운동과 균형 잡힌 식단, 즐겁게 많이 웃으며 살기 라고 하신다.


또 재미있는 실험 한 가지를 해주셨는데, 동물 중에 가장 난잡한 생활을 하는 동물이 쥐라고 한다. 쥐는 일부일처제가 아니고 서로 많은 짝과 교미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쥐의 호르몬 검사를 해보았더니 수컷은 바소프레신 호르몬이 낮고, 암컷은 옥시토신 호르몬이 현저히 낮았다고 한다. (다른 동물들에 비해)


이에 수컷과 암컷 쥐에 각각의 바소프레신 호르몬과 옥시토신 호르몬을 주입하였더니 난잡한 교미를 하지

않더라는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사람의 경우에는, 전 세계에서 바람을 가장 많이 피우는 북유럽 남성들을 상대로 호르몬 검사를 해보았더니, 이 남성들이 역시 바소프레신 호르몬이 낮게 나왔다고 한다. 너무 재미있는 결과가 아닐 수 없다.


샘은 이런 얘기를 하고 나면, 꼭 강의 끝나고 본인을 조용히 찾는 사람들이 있다고 (주로 아내들이 자기 남편에게 이 호르몬 주사 줄 수 있냐고 물어보신다고) 하신다.

도파민 중독에 관한 얘기도 하셨는데, 도파민은 원래 동기부여, 집중력, 학습 등 어떠한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를 향해 달려갈 때, 목표를 달성했을 때, 나오는 신경 물질로 성취감을 통해 더 나은 행동을 유도한다고 한다.


그래서 도파민이 부족하면 의욕이 없어지고, 이전의 즐거웠던 활동에 대해 흥미를 잃게 되고, 집중력 감퇴,

기억력 감퇴, 무기력증, 피로감 지속 등이 나타난다고 한다.

하지만 현대에서는 도파민 중독을 말하는데 이것은 신체 내에서 흥분, 각성, 흥미 상태가 오래 지속되어,

결국 에너지가 고갈되는 상태를 말한다고 한다.


현대인들은 모든 것들이 너무 빠르게 진행되고, 그런 사회에서 살다 보니 좀 더 달콤한 것, 좀 더 매운 것,

좀 더 재미있는 것 등 계속해서 더 강한 자극을 원하고, 그것이 당 중독, 탄수화물 중독, 게임중독으로 이어지는 거 같다.


하지만 이러한 도파민 중독은 도파민 디톡스 치료로 스마트폰 사용을 줄이고, 규칙적인 운동, 건강한 식단

등으로 좋아질 수 있다고 한다.

오늘 내가 배운 호르몬은 인간의 몸에서 참 많은 일을 하는데, 우리가 어찌

보면 호르몬의 조정으로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이 든다.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 보면 유전의 주체는 개체가 아닌 유전자이고, 사람은 단지 유전자 전달자라고 했다.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에서는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라는 개념을 얘기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우리의 의지대로 살고 있는 거 같지만, 실제로는 유전자의 힘과 호르몬의 영향과 자연선택으로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 슬프기도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내가 가진 많은 고민들이 아무것도 아닌 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우주적인 관점에서 보더라도 우리가 사는 지구는, 우리 은하계에서 아주 작은 행성일 뿐이고, 그 지구의 대한민국에서 사는 나는, 먼지조차 안 되는 존재일 텐데.

그러면 결론이 나온다. 무조건 즐겁게 웃으며 살아야지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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