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든다는 것은 무언가의 경계가 흐릿해지는 느낌이다. 좋고 싫음이 뚜렷하지 않아 너무 좋은 것도 그다지 싫은 것도 없어진다. 하지만 유독 슬픔이라는 감정은 더 선명해지는 거 같다.
가끔은 쓸모를 다한 물건에도 슬픔이 느껴지고 나랑 관련이 없는 사건이나 사고에도 울컥할 때가 있고 Tv에서 드라마를 볼 때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기도 한다. 다른 감정들은 다 무뎌지는데 슬픔이란 감정만은 내 안에서 더 확장되어 살아있는 거 같다.
얼마 전에 유재석이 진행하는 유퀴즈에 탤런트 박근형 배우와 손숙 배우가 나온 적이 있었다. 그분들이 살아온 인생 이야기를 들으며 지금 70대 이상이신 분들은 저런 생각을 하시는구나 생각이 들었는데 그중에 그분들이 요즘은 자신들의 물건들을 하나씩 정리하고 계신다는 얘기를 하셨다. 특히 본인들의 사진이나 기사 모아두었던 것들을 없애고 계신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나중에 자기 자식들이 이걸 가지고 있으면 버리기도 뭐 하고 가지고 있기엔 너무 짐이 된다고 하시면서 본인이 미리 다 정리하고 가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고 하신다. 나는 그때도 그 얘기를 들으면서도 엄청 울었지만 이 얘기를 쓰고 있는 지금도 눈물이 또다시 차오른다. 인생의 마지막을 차분히 돌아보고 자신의 삶을 잘 정리하고 계시는 점이 가슴 아프면서도 진짜 어른 같다는 생각을 했다.
좀 더 젊었을 때는 삶에 지치고 사는 게 참 힘들구나 느낄 때 난 누구보다 열심히 사는데, 왜 이럴까, 왜 나만 삶이 제자리인 것 같을까, 삶이 나에게만 가혹한가?라는 생각을 했었다. 근데 요즘 이런 여러 어른들의 이야기들을 들으면 세상 사람 모두가 다 열심히 치열하게 사는구나, 나만 그런 게 아니었어, 그런 생각이 들면서 부끄럽기도 하고 한편 위안이 되기도 한다.
요즘 갱년기로 인해 나에게 일어나고 있는 안면홍조, 피부 건조, 체력 저하 같은 몸의 변화들과 이제 웬만한 것은 다 이해되고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은 이런 마음의 변화들이 어떻게 보면 이제 나를 진짜 어른으로 만들어 주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나는 이제 인생의 2막을 시작했다. 아직 할 일도 많고 하고 싶은 일도 많다. 내가 하는 일들이 잘 되어 목표한 바를 이루면 좋겠지만 혹시 잘되지 않아도 크게 실망할 일은 없다. 그저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즐겁게 보내고 싶다.
나는 진짜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