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 나는 순간

by 재인

방학 동안 그래도 계획 세워 열심히 공부하는 것 같더니 며칠 전부터 다시 게을러진 모습이다. 당장 내일이 개학인데 오늘까지 푹 쉬게 놔둘까. 아님 깨워서 싫은 소리를 할까 망설이다가 꾹 참고 출근 준비를 한다. 그러다 문득 샤워를 하면서 든 생각이다. 전에도 생각해 본 건데 우리가 24시간을 보낼 때 아침부터 저녁까지 공부하고 일찍 푹 쉬고 다음 날 또 아침 일찍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하는 것과 오후에 시작해서 밤늦게까지 공부하고 다음 날 또 늦게 일어나는 것 중에 어떤 것이 더 효율적인 것인가? 물론 이것은 내가 언제 더 공부가 잘 되냐는 문제이지 둘의 차이는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근데 나는 왜 화가 날까?

나는 철두철미한 계획형 통제형 스타일의 사람이다. 그래서 MBTI도 INFJ형이다. MBTI를 꼭 신뢰하는 것은 아니지만 예전 사람들이 혈액형을 가지고 사람들을 분류하고 판단했었다면 요즘 사람들은 주로 MBTI를 가지고 얘기를 많이 하다 보니 나도 이것으로 내 성격을 알아보게 되었다. MBTI에 따르면 INFJ형 여자는 생각이 너무 많고 완벽주의자이고 차가워 보이지만 속은 따뜻하고, 계획 세우는 것을 좋아하고 도덕적 기준이 높고 기대치가 높다. 말보다 글로 표현하는 것을 좋아하고 외부보다 내부세계를 더 중요시하는 내향적 직관형이라고 한다. 늘어놓고 보니 나랑 맞지 않는 것을 찾기 어려울 정도로 다 해당이 되는 거 같다. 4 가지 밖에 안 되는 혈액형으로 얘기할 때보다 16가지 유형으로 분류하니 좀 더 디테일해진 것 같기도 하다.

가만 보니 나는 정해 놓은 계획이 어긋나거나, 어떤 일이 도덕적 기준을 못 미칠 때 주로 화가 나는 것 같다. 나는 해가 바뀌면 세우는 큼직한 계획들부터 하루하루 해야 할 세세한 일들까지 늘 계획을 세우고 메모를 하고 가끔 중요한 일이 있으면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도 돌려보고 하는 편이다. 물론 모든 일이 이렇게 다 계획한 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계획이 틀어지면 짜증이 나는 건 사실이다.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일들이 일어날 때 내가 통제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 같다.


내가 평소에 생각하는 도덕적 기준은 이런 것들이다. 직장에서든 학교나 학원이든 지각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사람들과 약속을 하면 꼭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학생들은 숙제를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생각하지만 잘 지키지 않는 사람이 많은데 나는 이러한 사소한 것들이 그 사람을 말해준다고 생각한다. 그냥 좋게 넘어가도 될 사항을 문제 삼고 무엇이 틀렸는지 시시비비를 가리고. 그래서 사람들이 나를 까다롭다고 여기나 보다. 나는 도덕적 기준이 높을 뿐인데.


내가 누구인지 알아가는 과정은 참 여러 가지 면에서 나를 놀라게 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내고 언제 행복한지 알아내고 또 어떤 순간에 화가 나는지를 알게 되니 다시 한번 나를 이해하게 된다. 누구보다 부족한 점이 많고 늘 스스로 자존감이 낮다고 생각하는 나지만 이제는 나를 나로 받아들이고 듬뿍 사랑해 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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