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나는 없었다.

by 재인

이 작품은 원래 추리소설을 아주 좋아하는데 문득 왜 “애거사 크리스티” 작품은 한 권도 읽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어 가볍게 읽으려고 고른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은 추리소설이 아니다. 추리소설의 틀을 벗어나 인간 심리와 관계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주인공 조엔은 변호사 남편에 세 자녀를 모두 잘 키워 출가시킨 중년의 여성이다. 그녀는 바그다드에 사는 막내딸이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그녀를 간호하기 위해 그곳에 갔다가 다시 영국(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기차를 타기 위해 하루 머무는 곳에서 우연히 오랜만에 고교 동창 블란치를 만나게 되는데 그녀는 조엔의 가족에 대해 이상한 얘기들을 한다. 조엔은 고등학교 시절 인기가 많았던 블란치는 현재 초라해 보이는 삶을 살고 있고 그에 비해 그녀는 우월하고 완벽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며 블란치의 말을 무시한다. 갑작스러운 폭우로 기차가 지연되고 사막 한가운데에 고립된 그녀는 책을 읽고 산책하며 시간을 보낸다. 더 이상 할 일도, 얘기 나눌 사람도 없자 그녀는 혼자만의 생각에 빠진다.


왜 블란치는 막내딸 바버라가 이젠 괜찮을 거라고 얘기했을까? 바버라가 숨기는 병은 무엇일까? 왜 로드니가 호시탐탐 연애할 기회를 노린다고 했을까? 이런 생각을 하며 과거의 기억을 되짚어 보고 자신이 그동안 쌓아온 삶의 만족감에 의문을 가지며 심리적 혼란을 겪는다.


그녀는 남편 로드니가 이웃 레슬리라는 부인에게 남다른 감정이 있다는 것을 눈치챘지만 애써 부정했는데 그것이 결국 사랑이었음을 알게 된다. 바버라가 숨긴 병이 자살 시도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아들 토니는 농부가 되겠다고 집을 떠났는데 아빠인 로드니가 그 꿈을 지지해 주었다는 것도 알게 된다.


조엔은 아이들의 마음에 공감해 주기보다는 자기 뜻과 상황만 주장했고 위선 가득한 삶을 살아왔던 일들을 깨닫게 되고 농부가 되고자 했던 남편 로드니의 꿈을 막았던 일을 진심으로 미안해한다. 그렇게 마치 집에 도착하면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 것 같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집에 돌아온 순간 조엔은 예전 모습으로 돌아온다.

우리는 하나의 개인이지만 사회적인 유기 관계 속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사회와 이웃 그리고 친구와 지인과의 관계를 무시하며 지내기는 어렵다. 누구나 그런 관계 속에서 벗어나기는 힘들 건데, 그렇다면 우리는 나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이나 남의 이목이 중요한가? 아니면 나의 내적 충만이 더 중요할까? 바로 이 서로 다른 관점이 조엔과 로드니 그리고 아이들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성장하는 아이들을 통제하려고만 하지 말고 의견을 존중하고 원하는 삶을 선택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이들에게 좋은 부모란 어떤 것인지, 나는 아이에게 어떤 부모일지 등을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기도 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시 시작되는 삶이, 가족들 모두 다른 생각을 품은 채 행복한 척 살아가는 현실이 안타까우면서도 너무나 우리 현실과 맞닿아 있지 않나 생각해 본다.


SNS 같은 노출 미디어를 통해 사람들은 상대적 빈곤을 많이 느낀다고 한다. 그들이 게시하는 사진이나 글을 보면서 나만 불행하고 초라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보여주는 삶을 살 것인가? 나의 삶을 살 것인가? 는 본인의 선택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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