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온다는 예보는 듣지 못했는데 갑자기 하늘이 어둑어둑해지고 흐려지더니 추적추적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내일 아침은 기온이 2도까지 뚝 떨어진다고 한다. 2도면 이건 겨울 날씨가 아닌가? 마침 휴일이고 해서 겨울 준비를 미리 하기로 했다.
우선 옷 정리를 시작했다. 점점 짧아지는 가을 때문에 간절기 옷들이 불필요해진다. 여름이 끝날 무렵에 여름옷이 너무 지겨운 나머지 가을옷이 나오면 반가워 샀던 옷들을 한 번밖에 입지 못했다. 아무리 개성이라고 하지만 나는 왠지 계절과 맞지 않은 옷들은 입기가 꺼려진다. 레이어드를 잘해서 입는 사람들도 있던데 나는 그런 쪽으로는 재주가 없나 보다. 나이가 드니 좀 더 편한 옷들을 입게 되고 그러다 보니 사놓고 입지 않거나, 몇 년 동안 한 번도 입지 않은 옷들도 있다. 그런 옷들은 따로 정리해 두고 겨울옷을 꺼내 보았다. 다림질이 필요한 구겨진 옷들은 추려 놓고 코트나 패딩 외투 주머니에 혹시나 기대하지 않은 행운이 올까, 싶어 살며시 손을 넣어 본다. 하지만 역시나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하긴 요즘 거의 현금을 쓰지 않으니 그런 일이 있을 리가 없다. 실망 아닌 실망을 하고 옷 정리를 서두른다. 내 옷이 끝나면 남편 옷과 아들 옷도 정리해야 한다. 이것저것 분리하고 정리하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
거실에는 포근하고 부드러워 보이는 아이 보리 색 러그를 깔아주고 차가운 가죽 소파 위에는 따뜻한 극세사 패드를 놓아주고 무릎담요도 꺼내 놓는다. 내친김에 식탁보도 겨울 분위기가 나는 것으로 바꾸어 본다. 또 뭘 해야 하나 둘러보니 베란다에 화분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래, 내일 아침에 갑자기 떨어지는 기온에 너희들도 춥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거실 한자리를 마련하고 베란다에 화분들을 깨끗이 닦아 하나하나 들여놓는다. 몇 개 안 되는 화분이지만 거실에 들이니 집이 훨씬 더 아늑한 느낌이 든다.
예전 어른들은 겨울이 온다고 하면 쌀을 들여놓고 연탄을 쌓아놓고 김장도 하셨지. 김장을 생각하니 문득 작년부터 엄마가 힘이 드셔서 김장을 안 하겠다고 하신 일이 떠오른다. 엄마가 항상 철마다 김치를 해 주셔서 그 수고로움과 고마움을 잘 알지 못했다. 아니 바쁘다고 김치를 가져가라는 얘기조차 귀찮을 때도 있었다. 막상 작년에 김치를 사서 먹어 보니 엄마 김치가 너무 그리웠다. 그리고 나는 우리 가족이 김치를 그렇게 많이 먹는지도 미처 몰랐다. 올해는 김장을 어떻게 해야 하나, 어디서 사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내 마음을 마치 읽기라도 한 것처럼 김장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마침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와 얘기 끝에 엄마가 올해는 김장을 다시 해야겠다고 하신다. 본인도 김치를 사서 먹어 보니 마음에 들지 않았다고 하시면서. 나는 엄마가 올해 김장을 하신다는 얘기에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 죄송함과 미안함, 그리고 엄마가 김장하고 나면 또 아프실 생각에 갑자기 울컥한 마음이 들었다. 아마 엄마는 본인이 사 먹었던 김치가 마음에 들지 않은 게 아니라 내가 지난번에 산 김치가 맛이 없더라, 하는 말을 마음에 두셨던 거 같다. 올해는 김장하는 날 일찍 가서 엄마가 김장하는 것도 거들어 드리고 뒷정리도 맡아서 해야지 생각했다.
김장까지 해결이 되고 나니 올 월동 준비는 다 된 것 같다. 미리 준비를 마친 이번 겨울은 우리 가족 모두에게 어느 해보다도 따뜻한 겨울이 되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