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장녀

by 재인

휴대폰을 충전기에 꽂아 놓고 잊고 있어서 엄마에게 전화 온 줄도 몰랐다. 얼른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통화가 연결되자마자,


어디 나갔니? 아니, 집에 있으면서 왜 전화를 안 받니?

충전기는 방에 있고 나는 거실에서 책 보고 있어서 몰랐어요. 왜요?

어, 내가 사진 하나 보낼 테니까 찾아서 주문해 봐. 요새 엄지발톱이 다 빠질 것 같아 아파서 걸을 수가 없어. 오늘 수영장 갔더니 누가 이거 발라보라고 하더라.


그 애지중지하는 아들은 바로 옆방에 있을 텐데. 이런 건 꼭 나에게만 시킨다. 엄마는 홈쇼핑을 보다가도 마음에 드는 상품이 나오면 내게 전화해서 몇 번 채널 틀어보라고 하고 그거 괜찮지 않냐며 주문해 달라고 한다. 물론 엄마가 무조건 공으로 그러는 것은 아니다. 우리 아이가 사립학교에 다니는 동안 학비에 절반 이상을 내주신 것도 바로 엄마다.


나는 누구에게도 내가 무르다고 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는데 엄마한테만은 고분고분하고 무른 것 같다.(음, 엄마가 인정할지는 모르겠지만) K-장녀라서 그럴까?


잠깐의 폭풍 검색으로 엄마가 원하는 발톱 에센스를 찾아 주문 완료하고 다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주문했어.

응, 얼마니?

이만 칠천 원

어? 이만 오천 원이라던데

헐, 엄마는 가격을 다 알고 있으면서 미리 얘기 안 하고 주문하라고만 한 거다.

내가 검색한 것 중에서 그게 제일 싸.

그래?

여러 개 사면 좀 더 싸긴 해.

아니야, 일단 써보고.


나는 얼른 전화를 끊고 저녁을 차리려고 했다. 근데 엄마는 발톱이 너무 아파서 걷기가 힘들다는 얘기를 또 했다. 나는 이럴 때 정말 T 같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고? 그런 생각이 드는 거다. 발톱이 아프다는 엄마의 하소연을 1차로 듣고 어제 장 본 얘기로 넘어갔다.


네가 이마트 세일한다고 해서 갔더니 사람만 많고 별로 살 것도 없더라. 그리고 회원들만 할인이 된다고 해서 못 샀어.

아, 엄마 아직도 이마트 회원 아니야?

응, 그거 카드 만들어야 해?

그렇지, 회원 카드, 처음에는 만들어야지. 요즘엔 핸드폰으로도 되긴 해.

아, 엄마는 카드면 또 돈 나가는 줄 알고 그래서 전에 안 만들었어.

엄마 이건 그냥 회원 카드야. 동네 마트 회원 카드랑 같은 거야.

그래? 그러면 담에 만들어야겠다.


나는 엄마가 이럴 때마다 답답하고 한편으로 속상하기도 하다. 이마트를 몇 년 전부터 다니셨으면서 지금까지 회원이 아니라는 게. 그리고 회원 카드를 잘 몰랐다는 것도.


갑자기 전에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어느 한 편이 생각났다. 어느 날 류준열이 집으로 전화해서 급하다며 라미란에게 여권번호를 알려 달라고 했는데 라미란이 대답을 못 하고 전화를 끊었다. 화가 난 류준열이 집에 와서 왜 안 알려줬냐고 하니까 라미란이 조용히 말했다. 정환아, 내가 영어를 못 읽어, 미안해


그때 정환의 마음이 지금 내 마음과 비슷하다. 엄마에게 미안하고 언제나 나에겐 큰 산 같은 엄마가 안쓰러워지는 마음.


다음 주에는 엄마를 보러 가야겠다. 같이 가서 회원 카드도 만들고 엄마가 좋아하는 아보카도 커피도 마시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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