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감기 기운이 있는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다녀왔다. 병원 의사 선생님이 올해 고3인가요? 수능이 다음 주인데 빨리 낫게 해 줘야겠네. 하신다. 무심코 틀어 놓은 TV에서는 올해 수능이 며칠 남지 않았다고 수험생 모두 응원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어제 저녁을 먹으면서 아이가 서울 시립대도 많이 세던데 어떠냐는 얘기를 했다고 한다. 목표로 하는 대학 이하는 쳐다도 안 보던 아이가 많이 초조한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덩달아 나도 갑자기 긴장되고 초조해졌다. 지난번 백담사에서 108배를 하고 온 이후로 마음이 좀 안정되었는데 다시 조급한 마음이 들었다.
나의 이런 마음을 아이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하다 보니 얼굴은 더 딱딱하게 굳어진다. 고3 엄마는 이렇게나 힘들고 마음을 조리는 일 년을 보내는 건데 몇 년 전에 나보다 고3 엄마를 먼저 경험했던 나의 친구들에게 나는 네가 공부하냐? 뭐가 힘들어. 하는 얘기를 서슴없이 했었다. 아, 얼마나 후회되는 말인지. 지금이라도 친구들에게 미안했다고 말하고 싶었다.
나의 이런 미안하고 불안한 마음을 알기라도 한 것처럼, 마치 미리 짜기라도 한 것처럼 오늘 친구들은 저마다 각기 카톡으로 전화로 응원한다는 연락을 해왔다. 몇 년 전에 나는 그녀들에게 달랑 찹쌀떡을, 초콜릿을 보내주었는데 오늘 그녀들이 보내준 응원의 말들은 생각보다 많은 힘이 되었다. 시험 당일 날 아이에게 괜스레 힘내라고 하지 말고 평소처럼 보내라. 아침에 많이 긴장하면 청심환 먹여 보내라. 아침은 부드러운 걸로 먹이고 점심도 너무 많이 보내지 말고 아이가 평소에 잘 먹는 것으로 준비해라. 등등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들과 너도 많이 긴장되지? 그래도 아이에게 티 내지 말고. 금방 지나간다. 대학이 뭐 중요하냐. 취업이 더 중요하다는 등등
나는 곧 스무 살이 되는 아들의 엄마이고 학원 아이들에게 선생님이고 한데 학창 시절 친구들과 얘기하다 보니 나는 영락없는 10대 아이인 것만 같았다. 여리고 눈물 많던 내가 나이기를 알기 전에 나를 알고 있는 내 친구들이 내 아이를 응원하면서도 나를 걱정하고 챙겨주는 고마운 마음에 순간 울컥해 눈물이 났다.
그러면서 엄마 생각도 났다. 엄마도 내가 고3이었을 때 나처럼 걱정했을까? 진눈깨비가 내리던 추운 겨울날 나를 고사장으로 데려다주고 마음이 어땠을까? 합격자 발표가 나던 날 밤새도록 전화기를 붙들고 있다가 마침내 합격했다고 새벽에 나를 깨우던 엄마 모습이 떠오른다. 알았어, 하고 무심하게 말하고 다시 잠을 잤던 내 모습이, 실컷 자고 오후에 학교에 가서 합격자 발표 벽보에 내 이름이 진짜 있나 하고 찾아보던 나의 모습도 흐릿하게 떠오른다.
불현듯 이런 모든 감정을 겪어야 하는 게 어른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가 초등학교 때에는 늘 반장이 되길 원했다. 내 아이가 최고라는 생각이 너무 지배적이었던 시절이기도 했다. 아이가 사춘기가 오면서 아이보다 내가 더 힘든 시간을 보냈다. 내 아이가 평범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는 시기였다. 세상에는 너무 똑똑하고 잘난 아이들이 많았다. 이제는 모든 것을 내 의견이 아닌 아이 의견대로 하는 나이가 되었다. 아이가 다양한 경험을 하고 힘들고 어려운 일도 겪으면서 현명하게 인생을 살아가기를 바란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너무 아프지는 않았으면 하는 마음 또한 든다.
앞으로 나는 나중에 아이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모습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건 또 어떤 마음일지, 어떤 기분이 들지 가름조차 되지 않는다. 더욱이 내가 할머니가 되는 모습은 상상하기도 싫다.
나도 부모가 처음이라서 라는 말이 생각난다. 뭐든지 처음인 부모가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진짜 부모가 되는 일은 어렵기만 하다.
부모가 태산처럼 높게 보였을 때가 있었는데 지금의 나도 우리 아이에게 태산처럼 높게 보이는 산일까?
그렇다면 나는 오르기 힘든 높은 산보다는 포근하게 감싸주는, 벼가 노랗게 익어가는 황금빛 평야 같은 드넓은 대지가 되어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