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에 합격하면 송도 캠퍼스로 간다. 인천광역시 연수구 송도과학로 85에 연세대학교 국제캠퍼스가 있다. 모든 학과 학생이 송도캠퍼스에서 1학년을 보낸다. 기숙사에는 전교생이 들어갈 수 있는 방이 있다.
도서관은 캠퍼스의 중심이다. 건물 사이 골목은 도서관 앞으로 통한다. 수업이 끝나는 n시 50분마다 도서관 앞에서 서로에게 인사하는 소리가 여기저기 들렸다. 학과 동기, 고등학교 동기, 재수학원 동기, 친구의 친구, 과동기의 친구, 고등학교 친구의 친구와 인사하고, 놀고, 술 마신다. 갓 입시를 끝낸 20대 신입생 2,900명이 모여서 생활하니, 밤마다 술집이 성황이었다.
대학교 1학년, 송도 생활은 서로의 고민을 토로하던 시기였다. 소위 ‘딥톡(deep talk)’이라는 용어를 쓰면서 서로의 고민을 진지하게 얘기하고, ‘딥톡‘을 끝내고 온 사람들끼리 서로끼리만 공유한 생각이 있다면서 남다른 유대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내 연애에서 나는 잘하고 있느냐, 지금 내 학과가 과연 맞는 것이냐, 학번대표를 누가 하느냐, 학생사회는 어떻게 되느냐, 지금까지 나는 어떻게 살았냐, 앞으로 나는 무얼 해야 하나.
주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던 것 같다. 나는 1학년 1학기 기숙사에 논리퀴즈매뉴얼이라는 책을 가져갔다. 행정고시 1차를 위한 논리학 책이었다. 당시 룸메이트는 17학번 경제학과 형이었고, 행정고시를 고민하던 사람이었다. 이 형이 내 얼굴을 보기 전에 저 책을 먼저 봤다. 나는 이 형에게 고민상담을 많이 했던 것 같다. 특히 술 취한 날은 기억도 안 난다. 흐릿한 기억에는 “나 고등학교에서 그렇게 열심히 살았는데...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해도 되나 싶다... “였던 고민이었다. 그 형은 언제나 위로해 줬고, 20살이 뭐 그런 걸 생각하냐고 말했었다. 1학년 1학기는 참 인복이 많았다. 며칠 전에 이 형이 생각났으나 4년 동안 형의 전화번호가 바뀐 것 같다.
나는 어리둥절하면서 술자리에 따라가면서도, 4수 형의 수험기, 과동기의 연애 이야기, 다른 사람들의 동아리 활동을 듣는 게 좋았다. 나에게 없는 경험들이 궁금했고 재밌었다. 그래서 친구들의 술자리에 따라가면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기대했다. 술보다는 사람이 좋았다.
어느 날은 경제학 강의 기말고사를 하루 앞두고 공부를 멈췄다. 그리고 친구에게 심각한 표정으로 위로를 구했다. 내가 ”해볼까...” 하며 미루다가 끝났던 총학생회 모집에 과동기가 지원해서 붙은 것이다. 그때 나는 친구에게 “나는 왜 이리 나태할까...” 말했다. 친구는 나와서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친구는 거의 위로를 해주었다.
내가 왜 이러는지,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건지, 술자리에 가서 놀아도 되는 건지. 모든 것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20살은 어떻게 보여야 하는 나이인지 알고 싶었다. 그러면 마음 편히 놀거나, 진로를 찾거나, 빨리 공부를 시작하거나 뭐라도 하겠다는 생각이었다.
이런 경험 때문인지, 마음이 복잡할 때면 송도 생활이 떠오른다. 다시 찾아간 적도 여러 번이었다. 캠퍼스 건물은 차가운 디자인을 고수하고 있었고, 캠퍼스 바닥 하얀 돌들은 햇빛을 반사하며 여전히 눈부신 색을 드러내고 있었다. 도서관은 캠퍼스 중앙을 지키고 있었으며, 학생들은 수업 종이 치면 도서관 앞으로 몰려 나왔다. 내가 다닐 때와 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제 여기 속한 사람이 아니었다. 룸메이트 형들, 과동기들은 없고, 그때의 나도 보이지 않는다. 나는 이제 이곳에서 이방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