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엔드

사랑 속에 피어나는 분노

by 진민

사랑이라는 것은 가까운 듯 멀리 존재하는 감정인 것 같다. 연인관계에서 사랑은 필수불가결한 감정일 것이다. 사랑이 없으면 연인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일반적인 인간관계에서는 사랑이 필요한 것일까? 일반적인 인간관계라 하면은 나와 상호작용을 하는 사람들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사람마다 상호작용의 정도가 다르긴 하겠지만 이런 관계 속에서 사랑이라는 감정을 키워야 하는 것일까? 사랑이라는 감정은 기쁨 슬픔 두려움과 같이 직관적인 감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도 높은 정을 사랑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어느 정도 이상의 정을 상대방에게 건네어주었을 때 상대방은 사랑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 같다. 나의 입장에서는 사랑을 건네준 것이 아닐지라도 상대방에 입장에서는 사랑을 받았다면 그것은 물론 나에게 받은 것이다. 사랑은 때로는 모호하거나 입체적인 감정인 것 같다.



영화 <해피엔드>를 봤다. 해피엔드라는 영화는 참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청춘에 관한 이야기도 있고 이민자에 관한 이야기도 내포되어 있다. 하지만 가장 핵심적인 이야기는 사회의 체제에 맞서 일어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사회의 불합리한 부분에 있어 분노하고 반발하며 자신의 권리 혹은 자유를 위해서 맞서 싸우는 청년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타협하려는 마음과 바꾸려는 마음 어느 것도 절대적인 답이 아닌 상황의 딜레마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참 정치적인 영화라고 생각했다. 여기에 청춘들의 고민이나 이야기까지 겹쳐지니 굉장히 풍부한 이야기라고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보고 난 뒤 이 영화감독의 인터뷰 기사를 읽게 되었고 거기서 다른 시선으로 이 영화를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사랑이 있어야 분노가 있다"라는 문장이었다. 여기서 분노라는 것에 대해 고민해 보게 되었다.



주인공 남자인 코우는 왜 갑자기 사회의 문제에 대해 분노하기 시작했을까? 그도 원래는 유타와 함께 음악만을 좋아하는 소년일 뿐이었다. 하지만 후미에게 관심이 가기 시작하며 그의 분노가 점점 커져갔다고 생각한다. 초반에 보이는 후미에 대한 관심은 이성적인 관점의 관심이라기보다는 인간적인 관점이라고 생각되었다. 코우는 세상문제에 소리를 내고 있는 후미를 보며 자신의 주변의 친구들과는 색다른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코우의 후미를 향한 인간적인 궁금증과 관심은 점점 인간의 정으로 확대되고 그 정이 쌓이고 쌓여 사랑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결국 코우의 분노의 시작점은 후미에 대한 관심, 그리고 사랑이었다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후미는 왜 세상의 불합리성에 대해 분노를 하는 것일까? 물론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것은 명백히 옳은 행위이다. 하지만 모두가 옳은 행위를 하며 살아가는 것은 이상적인 상상 속의 세상일 뿐이다. 후미가 분노하는 이유는 세상이 바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인 것 같다. 이 믿음이라는 감정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에서 나오는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후미는 세상에 대한 강한 애정이 있기 때문에 분노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이제 나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지금까지 누군가에게 분노해 본 적이 있나?라는 생각을 했다. 사람을 넘어서 나는 지금까지 살면서 어떤 것에 진심으로 분노해 본 적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마 없던 것 같다. 지금까지 나는 본성이 착하기 때문에 딱히 화를 내지 않는다고 생각했고 물론 내면으로는 스트레스가 쌓일 때도 있지만 분노를 표출하지 않는 나의 모습이 나의 장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영화를 보고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누군가에게 분노를 하지 않는 이유는 내 마음속에 그 누군가에 대한 충분한 사랑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그렇다면 세상과 체제의 불합리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내가 이 세상에 그만큼의 정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세상은 더 좋게 또는 아름답게 바뀔 수 있음을 믿지 못하는 것 같다. 나의 분노의 결핍은 선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사랑의 결핍을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마음껏 분노하는 사람들을 보며 오히려 멋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단면적인 그들의 분노 자체를 보는 것이 아닌 그 이면에 있는 그들의 사랑의 에너지를 보기 시작했다. 나는 바꿀 수 없으면 내가 바뀌는 것이 정말 중요한 자세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내가 사람이나 세상을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들이 바뀔 것이라는 믿음이 없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결국 그들에 대한 사랑이 부족했던 것이다. 물론 사랑이라는 감정이 절대적으로 옳은 감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의 모습을 되돌아보며 내가 굉장히 차가운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점점 나이가 듦에 따라 연애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마음에 대해서도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연애를 떠나 나는 아직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사랑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사랑이란 감정이 참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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