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된다는 것, 무뎌진다는 것
쇼마이 신지의 태풍클럽을 전에 본적 있다. 영화를 보면서는 모호한 이야기 전개에 크게 감명받지 못했다. 하지만 영화를 곱씹어 생각할수록 매력적인 영화라는 것을 느꼈다. 혼란 속에서 능동적으로 혼란을 헤쳐나가려는 아이들의 모습을 잘 보여줬다고 생각했다. 춤과 음악을 통해 그들은 고립된 학교 안에서 성장하고 있었다. 이 감독이 아이들을 대하는 방식이 다른 감독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했고 그의 시선이 참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다음 작품인 이사를 보았다. 첫 등장부터 나온 삼각형의 식탁이 매우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3인가족에게 가장 안정적인 식탁 구조야 말로 삼각형일 것이다. 어디로든 기울지 않은 상태에서 식사를 할 수 있다. 독특한 것은 구도상 아이가 중심이었고 누구보다 어른 같아 보였다. 이 아이의 아빠가 별거를 하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사실 이 영화의 이야기라고 할 것은 크게 없는 것 같다. 그냥 이혼가정의 아이가 성장하는 이야기이다. 온전히 아이의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본다는 것이 느껴졌다.
아이는 달리기를 좋아한다. 사실 좋아한다는 느낌보다는 어쩔 수 없이 달리는 느낌이었다. 자신이 현재 감당하기 힘든 감정이 나오면 달리기를 통해 그 감정을 떨쳐보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느 면에서 보면 태풍클럽의 아이들이 춤을 추는 것과 같이 이 아이도 달리기라는 행위를 통해 혼란 속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능동적인 태도를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태도가 이 감독이 아이들을 바라보는 시선이라고 생각했다.
아이의 엄마와 아빠는 이혼이라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서로 떨어져 사는 게 편하기에 따로 살기 시작한 것 정도로만 생각한다. 서로에게 더 맞는 선택을 한 것이다. 현실의 눈에서 바라보면 이 선택은 별거 아닐 수도 있고 사실 정답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의 눈에서 바라본 이 선택은 결코 가볍지 않았고 어찌 됐든 그의 마음엔 한줄기의 금이 가버린 것이다. 깨지지는 않았지만 금이가 버린 유리병은 작은 충격에도 깨져버릴 것이다. 금이 간 유리병 속에서 찰랑거리던 물도 병이 깨져버린다면 아무것도 아니게 되어버린다.
아이들은 한없이 이상을 꿈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의 어깨는 한없이 가벼워야 하고 그렇기에 그들은 이상을 향해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상에는 현실의 장애물들이 참 많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아이들은 이 현실의 장애물들을 피해 한층 더 높이에서 이상을 바라보며 행복을 꿈꾸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직 아이들의 유리병은 가냘프기 때문에 작은 충격에도 쉽게 금이 가기 마련이다. 점점 어깨가 무거워질수록 지상에 내려오게 될 것이고 그러면 바라볼 수 있는 이상이 점점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어깨가 무거워 질수록 그의 유리병은 점점 단단해져 있고 점점 더 충격에 무뎌지게 된다고 생각한다.
어린 나이에 부모님의 부재는 한없이 이상을 꿈꾸며 날고 싶던 아이에게는 감당할 수 없을 타격이었을 것이다. 그의 마음엔 균열이 생겨버렸다. 그는 그 균열을 아무리 다시 붙이려고 해 봐도 붙여지지가 않았다. CTRL+Z 같은 단축키가 소용이 없는 순간은 늘 존재한다. 금이 가버린 유리병을 붙이는 것 대신 그는 더 단단해지기로 다짐했다고 생각한다. 어른이 되기로 다짐한 것이다. 어른이 된다고 그 균열이 다시 붙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더 무뎌질 것이다. 균열을 가지고 성장하는 아이를 바라보는 우리는 먹먹한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 균열이 무뎌질 만큼 단단한 병을 가지게 되는 것, 그것이 그를 위한 유일한 바램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