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가 두려워 마음을 열지 못하는 이들에게
도라에몽이 어디로든지 문을 꺼냈다. 그는 나와 초면이다. 그는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나의 눈앞엔 뜬금없이 문 하나가 놓여 있다. 과연 나는 이 문을 열 수 있을까?
오늘 <빅 볼드 뷰티풀>이라는 영화를 보았다. 이 감독의 전작을 보지는 못했지만 좋아하는 배우가 나오며 포스터의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한글 제목이 왜 뷰티풀에서 끝나는지 잘 모르겠다. 원제는 <A Big Bold Beautiful Journey>이다. 크고 대담하고 아름다운 여정이라는 뜻이다. 이 영화는 사랑으로 향하는 여정을 보여주는 영화이다. 일단 데이비드 역의 콜린 파렐과 세라 역의 마고 로비가 주인공이다. 데이비드는 아일랜드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이민자이고 세라는 전형적인 미국인이다. 데이비드는 이민자의 냉담한 모습을 보여주며 뭔가 딱딱하고 격식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와 반대로 세라는 자유로워 보이고 열정적인 듯 보인다. 영화의 초반부에서는 색깔로든 억양으로든 이 두 사람 간의 차이가 보인다.
사랑을 향한 여정이라고 하면 로맨스 영화의 너무나 흔하고 뻔한 소재이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여정은 참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서로를 향한 여행이 아닌 나를 향한 여행의 반복이다. 다시 말해 마음의 문을 열기 위해 노력하는 그들이 내면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이 내면의 여행을 굉장히 아름답게 풀어냈다고 생각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에 대한 대답으로 많은 영화들은 판타지를 내놓는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이다.
세라와 데이비드는 같은 렌트가 업체를 통해 차를 빌려 지인의 결혼식에 갔다. 둘은 이 결혼식에서 처음 만났다. 서로 같은 동내에 사는 걸 알고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데이비드는 세라를 딱딱하게 대하고, 세라는 데이비드를 한없이 가볍게 대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서로가 인연이 아닌 듯 헤어졌지만, 각자 집으로 가던 중 그들이 빌린 렌터카의 내비게이션은 그들에게 대담하고 아름다운 여정을 시작하겠냐고 묻는다. 그렇게 여정은 시작되고 둘은 휴게소에서 만나 함께 여정을 시작한다. 내비게이션이 가리키는 곳으로 무작정 떠나기 시작한다. 그곳에는 문이 하나가 있다. 처음 도착한 문은 남자가 혼자 여행을 하면서 들렀던 등대이다. 그리고 다음엔 여자가 자주 방문하던 박물관이다. 이런 식으로 이들은 함께 자신의 기억 속의 문들을 열어보기 시작한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어디로든지 문 앞으로 가보려고 한다. 이 문 뒤에는 무엇이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문이란 걸 처음 본 사람은 아무 생각 없이 열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문을 열어본 기억이 있으며, 그 과정 속에서의 상처들이 있었다면, 그가 다시 이 문을 열기까지는 많은 고심이 필요할 것이다. 물론 문을 열었을 때 환상과 같은 현실이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아닐 수도 있다. 문 뒤의 현실은 불확실함으로 가득 차 있다. 우리는 이 불확실함을 두려워한다. 기억 속의 상처들이 이 불확실함을 두려움으로 승화시키며 문을 열기를 주저하도록 이끈다. 이 상처를 딛고 문을 연다는 것은 참으로 대담한 여정일 것이다.
많은 영화들이 상처를 이겨내는 법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이 이야기 들는 절대로 한 방향으로 귀결되지 않는다. 각자 다른 방식과 방법을 이야기한다. 모두가 격은 현실과 경험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서는 어떤 방법을 선택했을까? 지금까지 열어보았던 마음에 문을 다시 열어보기로 한다. 지금까지 나의 일생을 되돌아보며, 내가 열었던, 그리고 상처받았던 마음의 문 앞에 다시 나를 세운다. 그리고 다시 그 순간으로 돌아가보며 그때의 상처들을, 그때의 환경에서 다시 마주해 본다. 그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이 보이기도 한다. 이제야 깨달은 것들은 문 너머에 후회로 존재한다. 서로는 서로의 상처를 함께 공감하고 어루만져준다. 그렇게 서로는 마음의 상처들을 되돌아보며, 자신의 새로운 마음의 문을 열 준비를 한다.
새로운 사람을 위한 문을 열기 위해서 기존의 문들을 다 열어보아야 한다는 것은 참으로 까다로운 일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모습은 그들의 마음속에 얼마나 많은 상처들이 있는지 보여준다. 사랑에 상처를 받은 기억들과 상대에게 상처를 준 기억들은 새로운 사람의 만남을 저지한다. 흔히 트라우마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마음속 깊숙이 박혀있는 상처들은 나의 다음 발자국을 막는다. 이 트라우마들은 사실 현명하다. 우리가 더 이상 고통받지 않기를 원한다. 다음 발자국이 나에게 얼마나 큰 새로운 상처를 줄지, 혹은 기존의 상처를 더 아리게 할지 알기 때문에 나의 다음을 저지한다.
나도 마음의 문이 잘 열리지 않는다. 꼭 이성을 위한 문이 아니더라도 새로운 인간관계를 쌓는 것에 버거움을 느낀다. 새로운 사람들을 아무리 만나도 나의 마음속 깊이 있는 울타리는 절대로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낯을 가려서 그런 것이라고 단순히 성격 탓으로 돌려왔다. 하지만 이 문을 걸어 잠그고 있는 상처들이 존재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영화처럼 나의 마음속의 상처들을 되돌아볼 수 있다면 어떨까? 이렇게 영화처럼 문 하나만 넘으면 그때의 순간으로 돌아가 상처의 순간을 지금의 정신으로 마주한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은 알고 있는 채로 그때의 상처의 순간들에 간다면, 물론 현실이 바뀌지는 않겠지만은 내 마음속의 상처는 어느 정도 사그라 지지 않을까? 그다음 어디로든지 문을 마주한 나는 밝은 표정으로 저 문을 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영화처럼 과거의 문들을 다시 열어보는 행위는 현실에선 불가능하다. 스스로 나를 되돌아보는 일은 너무나 어렵다. 그렇기에 이들의 발걸음이 대담한 여정이지 아닐까? 그렇기에 만남은, 혹은 사랑이 아름다운 가치를 품고 있는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