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비의 바람 부는 날

- 여전히 우아하게!

by 골드가든

바람이 세차게도 분다. 바람이 분다기보다 바람이 이동한다는 표현이 더 맞을 듯 하다. 밀림의 동물떼가 이동을 하듯 우렁찬 소리로 어디를 가는지 참으로 바쁘고, 거세게 이동을 하는 날이다. 간헐적으로 흩뿌리는 빗방울은 너무 힘들게 움직이는 바람의 눈물인가 싶기도 하다.

이제 둘째까지 초등학생이 되어 아침 일찍 집을 비우니 8시 30분부터는 나의 시간이다. '오늘은 무얼할까?' 8시 30분~ 오후 1시까지 4시간 30분의 시간을 드라마나 집안의 허드렛일만 하며 보내고 싶지는 않다.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고 싶어.' 전업주부인 나는 늘 내게 이렇게 얘기한다. 그리고 하루의 계획을 갖으려고 한다.

오늘은 도서관행 당첨이다. 항상 아이들의 책을 빌리고 반납하기 위해 가는 곳이다. 그런데 오늘은 나를 위해 도서관행을 택했다. 코로나로부터 조금씩 자유로워지면서 도서관 입구 한 켠에 북카페 같은 곳이 생겼다. 그 곳에서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싶었다. 아이들과 도서관에 오면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사치 같은 행동이다. 아이들 없는 이 때가 아니면 못하겠다 싶었다.

큰 포부를 안고 노트와 책을 들고 도서관을 향해 걸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도서관으로 가는 내 발걸음이 어찌나 무겁던지... 왜 이러지? 왜 이렇게 몸이 무겁지? 설마 가기 싫은건가? 아이들의 일이라면 비가 오더라도, 바람이 세차게 불더라도, 혹 몸이 피곤하거나 아프더라도 열일을 제처두고 움직이면서 정작 나만을 위한 시간과 내 일에 대해서는 이토록 게으르고 의지가 약하다. 하지만 이런 날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게으른 인간이고는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난 특히 전업주부는 게으르면 안된다,라는 생각으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시선이 중요하지 않다고는 하지만 난 집에서 놀고 먹는 사람이 아니다, 전업 주부도 직업이기에 무척이나 바쁘고 애쓰며 살고 있다,라는 것을 몸으로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난 한시도 게으름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쓰며 살고 있다. 자격지심이라 할지라도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나란 사람에게 게으르면 안되지 않은가? 그냥 차라리 핑계를 대자. 먹구름 잔뜩 낀 하늘과 시속 70km는 넘어보이는 이 거대한 바람 때문, 날씨 탓이라고.

눈꺼풀도 무거워 눈을 깜박일 때마다 갯벌에 빠져 나오지 않은 발을 낑낑거리며 들어올리는만큼의 힘을 들여야 했지만 그래도 도서관을 갔다. 난 도서관에 도착할 것이고, 그 곳에서 책을 펼쳐 읽을 것이고, 그리고 글도 쓰고 올 예정이니, 난 반드시 해야했다. 내 의지는 이러한데, 자꾸 뇌 어디에선가, 가슴 어디에선가는 발길을 돌려 집으로 돌아가서 침대에 누워 달콤한 낮잠을 자두는 것이 어떻겠냐고 한다. 악마의 속삭임을 무시하자, 무시하자. 이렇게 되뇌이며 걸어서 10분 남짓 거리를 걸었다. 빗방울이 후두둑 떨어지기 시작했다. 바람도 윙윙 이렇게 세차게 부는데 비까지 내리면 어떻게 한담? 역시 날을 잘못 잡았어, 오늘은 집에서 나오지 않은게 좋을뻔했어,의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이제라도 집으로 돌아갈까? 아냐, 도서관이 코 앞인데...

그렇게 목적지인 도서관에 도착했다. 10여분 걸어오는 길이 왜 이렇게 멀었는지... 난 내 목적지에 도착을 했고, 한 권의 책을 꺼내 읽었으며 또한 몇자의 글도 썼다. 해낸 것이다. 적어도 오늘의 내게 떳떳할 수 있겠다.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런데 불현듯, '왜 이렇게 아둥바둥 살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전업주부는 게으르면 안된다고 누군가 내게 강요한 것도 아니고, 읽지도 않는 아이들 책을 매주 대출하고 반납해야 한다고 누군가 내게 지시한 것도 아니고, 내게 피곤한데 굳이 도서관에 와서 책을 읽어야 한다고 체근하지 않았는데 나는 왜 이렇게 힘이 겹도록 살고 있는 것인가? 바람이 이토록 거세게 부는 날조차!

여전히 나는 아이들이 읽을 책 몇 권과, 내가 읽을 책 몇 권을 빌려 터벅터벅 길을 걸었다. 발밑에 갯벌이 잔뜩 묻어있는듯 발걸음이 참 무거웠다. 바람 탓에 살이 부러져서 버려진 우산이 차도와 인도 여기저기에 보인다. 도로가에는 물웅덩이가 만들어져 있고, 꽃잎이며 나뭇잎들이 무수히 떨어져 있다. 은행나무 가로수에서는 아직 푸릇푸릇한 은행 열매들이 바람에 이기지 못하고 우수수 떨어져 있었다. 검은 구름에 세찬 바람... 으스스한 날씨다. 꼭 지금의 내 마음 같았다. '오늘 날씨.. 참 지랄맞네.'라며 한숨을 쉬듯 걷고 있는데, 눈 앞에 배추 흰 나비 두 마리가 나풀나풀 날아다닌다. 눈을 감았다 떠보았다. 이 바람에 나비가 날려가지 않고, 자신의 의지대로 나풀거리는 것이 신기하고, 원하는 꽃잎에 앉았다 다시 나는 모습이 이상하리만큼 신기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아할 수가 있는 것인가? 이토록.... 이토록.....

부드러운 나비의 날개짓에는 바람과 구름이 상관 없는 듯 보였다.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아니, 엄밀히 말해 나비가 이겨냈다. 이 작은 나비 한 쌍이 바람을 이겨냈다. 산들산들 약한 바람이 아닌 나뭇가지를 부러트리고, 은행 열매를 우수수 떨어지게 만들고, 우산을 꺾기게 만드는 강한 바람을 이겨냈다. 나비는 강한 바람이 불 때, 빗줄기가 굵을 때 자신의 몸을 피할 줄도 안다. 그리고 때를 기다려 바람이 약해지면 세상 밖으로 나온다. 그리고 살기 위해 꿀을 먹는다. 여전히 그 몸짓은 우아하고, 뽀송거린다. 나비의 생존 방식이다. 품위를 잃지 않으면서 달콤한 꿀을 먹을 줄 안다. 나비의 바람 부는 날은 결코 힘들지만은 않은 것 같다. 현명하고, 지혜로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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