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거나 말거나, 옮기거나 말거나.
거시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뉴질랜드의 삶은 평화롭고 단조롭고 아름답다. 언어의 장벽이 있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친절하기에 생활하는데 무리는 없다.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친절은 한데. 그래. 친절은 한데 말야............................??'
마침표가 아닌 물음표로 끝나는 문장의 끝엔 어색함이 따라온다. 여행을 하다 보면 며칠 동안 씻지도 못하고 이동하느라 피로에 찌들어 시든 시금치처럼 사람이 눅진해질 때가 있다. 하지만 나는 타우랑가에 짐을 풀고 아이는 학교를 다니는 중인데도 가끔은 시든 시금치 처럼 될 때가 있다.
여행을 떠나 왔는데 생기를 잃는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지만 한 곳에 오래 있다 보면, 여행을 떠나온 목적도 이유도 녹아 사라져 버리는 순간이 올 때가 있다.
지금 한국은 한겨울이다. 폭설이 내렸다는 소식을 뉴스를 통해 전해 들었다. 폭설은 고층 빌딩으로 가득 찬 한국의 도시를 하얗게 집어삼킨다. 마치 모든 것을 리셋하겠다는 듯이 말이다. 새하얀 눈 속에 피어나는 네온사인의 빛은 눈 속을 파고든다. 이내 도시는 거무죽죽하게 녹아내리는 눈으로 검은빛 도시로 변한다.
다시 집 밖을 나선다. 한국과는 다른 계절의 이곳. 여름이 오고 있는 이곳. 아직은 봄이다. 봄의 계절을 따라 길을 걸었다. 어제 나의 딸이 가져온 스쿨 이어 북을 곰곰이 생각하며 걸었다.
'왜 그랬을까. 수많은 유학생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왜 나의 딸은 사진 한 장 실리지 않았을까. 버젓이 유학생 페이지가 있었는데.'
바깥세상은 봄인데 나는 회색빛이다. 여행을 하다 보면 인종차별로 인한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때로는 소매치기로 빡칠때도 있다. 하지만 나는 나의 감정은 지금 어디쯤일까? 빡침일까 개빡침일까 개개개빡침일까.
유학생활을 하다 보면 우스갯 소리로 하는 말이 있다.
'나 몸에서 사리가 나올 것 같아. 암이 도질 것 같아. 발암이네.'
외국에서의 생활은 불편함을 감소하고, 부조리한 것을 받아들이고, 불합리한 것을 이해하는 넓고 단단한 마음이 필요하다.
한 여름 장마철 폭우가 쏟아지고 다시 뜨거운 햇살이 떠오를 때 온몸은 찐득한 습기로 가득 찬다. 메타세쿼이아와 같은 길을 걷고 있고, 바람은 시원하고, 햇살은 뜨거운데 내 몸은 습기고 가득 찬다. 마음속 열린 창문으로 온몸 가득 찬 습기를 빼내려 애쓴다. 깊이 숨을 들이마시고 깊이 숨을 내쉬고.
누군가 물을 것이다.
'그럼에도 왜 뉴질랜드 타우랑가에 살아?'
훌쩍 떠나 왔듯이 언젠가 다시 훌쩍 돌아가게 될 것이다. 다만, 아직은 그날이 아닌 것이다. 이곳을 사랑하기를 마음먹었듯, 이곳의 부조리함을 끌어안아 보려 애쓴다. 나의 딸은 이곳을 사랑한다고 했다.
'예진아, 한국으로 돌아간다면 언제가 좋을까?
'엄마. 나는 이곳을 사랑해. 이곳에서 살 수 있다면 최대한 오랫동안 있고 싶어. 나는 내 친구 딜런, 아디, 맥킨지, 애슐리, 하퍼, 릴리, 올리비아, 리암, 노아, 루나, 멜, Mrs. K, Mrs. Adam, KAren, 별이 언니, 루한이 오빠,로안,,,,그리고,, 아무튼 사랑해. 이곳의 공기도, 학교도, 집도, 이웃집 머피도. 하지만 한국도 좋아. 한국은 나의 나라니까. 나의 말도 할 수 있고, 나의 고양이들도 있고, 나의 가족도 있어.'
나의 딸은 금세 잊어버렸나 보다. 학교 점심시간 때 학교 놀이터에서 어떤 아이에게 뺨을 후들겨 맞았던 일도, 나의 딸이 앉으려는 의자에 발을 올리고 비켜 주지 않아 곤란했던 그 몇 번의 일도, 담임 선생님의 폭언도, 담임선생님이 의도적으로 누락했던 위클리 업데이트 메일도, 학교 스포츠 팀에서 다른 아이들은 돌아가며 두세 장씩 받는 상장도 끝나기 2주 전에 처음 받았을 때도, 다른 아이들은 한 번도 안 하는 교체 선수도 예진이는 여러 번 할 때도, 주목받는 포지션을 두 번 밖에 못해 속상해 눈물을 삼키던 때도, 유학생 포토 북에 사진이 없는 이 상황도 말이다. 엄마는 속상하지만 나의 딸은 이 모든 것을 잊을 만큼 학교를, 친구를, 이곳을 사랑한다.
그래서 당장 돌아갈 수 없다. 예진이는 이곳을 사랑하니까.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이곳에 있으니까.
아주 먼 곳에 당신의 소중한 것이 있다. 돌아갈 곳이 있다. 그리하여 당장 돌아가 버린다면 그다음은 어떻게 될까? 이방인으로 사는 삶은 결코 녹록지 않다. 특히 커뮤니티 성향이 강하고 지연, 학연 관계가 더욱 강한 뉴질랜드에서의 삶은 멈춤으로의 여행을 하는 여행자에게는 큰 어려움이 생기곤 한다. 나는 이곳에서 나고 자란 키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비단 문화적인 문제만은 아니다. 학교의 지인 커뮤니티에 속할 수 없기에 그저 받아들이고 웃어넘기고 사랑으로 포용해야만 한다. 학교에는 수많은 지인으로 얽히고 얽힌 거미줄 같은 인간관계로 유학생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는 인간관계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학년이 올라가 입시를 준비해야 하는 중요한 학년일 때는 특히나 더 어려움이 발생한다. 자신의 자녀가 더 점수를 잘 받기를 바라고, 내 지인의 자녀를 챙겨주는 성향이 있으니까. 그 모든 부조리함을 소수인 유학생만이 느끼기에 따질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곳을 사랑하냐고? 학교 안에는 한국과는 다른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한다. 이곳에서 영원히 살 수는 없겠다.
돌아갈 때는 언제 일까?
나의 딸이
'엄마. 나는 이곳을 사랑해. 나에게 소중한 모든 것들이 이곳에 있어. 하지만 나는 지금 떠나도 괜찮아. 소중한 것들이 이곳에 두고 가지만, 내가 다시 그것들을 만나러 올 수 있어. 나는 나의 사랑을 이곳에 두고 떠나는 게 아니야. 단지 이곳에 잠시 맡겨두고 가는 거지. 그러니까 나는 한국으로 돌아가도 괜찮아.'
이런 말을 할 때 돌아갈 수 있다.
소중하고 사랑하는 것을 만나러 언제든 떠나 올 수 있는 곳이 정해져 있다. 앞으로 나의 딸의 인생에 중요한 쉼표가 될 타우랑가. 어찌 이곳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쉽게 떠나왔듯이 쉽게 떠나갈 수 있다. 하지만 소중한 것들은 이곳에도 있다. 언제든 그것을 만나러 돌아올 수 있는 타우랑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