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브리즈 Mar 26. 2024

하루동안 느끼는 향(香)

40 넘은 중년 남자의 하루 향기 이야기

오늘은 문득 음식물 쓰레기의 봉투를 여미면서 향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게 된다. 한 달 전 우연히 아내를 따라, 나이 40을 넘어 향수를 처음으로 사게 된 후 향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사람들은 하루 동안 어떠한 향을 맡으며 살아가는 걸까? 그것이 궁금해서 그날은 향에 집중을 해보았다.


1. 오늘은 제안서 발표가 있는 날이기에 슈트를 입고 5 뿜을 해주었다.   달콤한 우드향이 온몸으로 퍼진다. 베르가못과 얼그레이 향이 나며, 단향이 나면서 가을에 낙엽비를 맞듯한 그 향이다.(그냥 내가 이렇게 정의했다.)

조말론 오드 앤 베르가못

2. 차를 밖에 두어서 음식물쓰레기를 처리해야 한다. 뭔가 모순적이다. 향수 5뿜에 + 음식물 쓰레기 라니..

3. 엘리베이터에 아무도 없었지만 진한 향이 남아있다. 나의 모던하고 달콤한 우드향이 출근시간 때가 비슷한 위쪽에 사시는 아주머니의 향기에 압도되었다. 타인의 향으로부터 침범됨을 처음 느꼈다.

4. 음식물을 처리하려고 어쩔 수없이 재활용 정리장에 들린다. 퀴퀴한 향에 코를 찔린다.

5. 비가 온 다음 날이라 오랫동안 차에 묻어 있는 무겁고 텁텁한 향이 난다. 지난주에 선물 받은 디퓨져를 설치해 본다

6. 회사 주변에 도착하니  방금 일어나셨는지, 지역주민이 비가 오는 처마 밑에서 피우는 담배향, 낭만적이면서도 싫은 향이다.

7. 자리에 앉아 업무툴을 켜고 카누 커피믹스를 타서 마셔 본다. 은은하고 고소하다. 머그잔을 둘러싼 손이 따뜻하다.

8. 직원이 자리에서 아침식사를 하는지 까먹 계란의 노린내가 코를 통과한다.

9. 점심시간에 식당에 들어가니 주꾸미 비빔밥의 맛과 참기름 향이 가득하다.

10. 예전에도 문제행동을 가지고 계신 어르신이 가까이 와서 또 화를 내신다. 몸에서 여러 가지가 섞인 냄새에 한 걸음 물러서게 된다.

11. 여초회사이다 보니 점심시간이 끝난 후 여직원들이 우수수 들어온다. 라벤더향과 프리지어향, 강한 화학향을 뽐내며 살며시 내 앞을 스쳐 지나간다.

12. 어제부터 연락이 되지 않았다고 하여 어르신 댁에 찾아갔더니 굳게 닫힌 철문, 열쇠집 아저씨를 불러 을 열어보았다. 오랫동안 묵은 홀아비 냄새가 가득하다. 화장실 문을 열어보니 대변냄새가 뿜어져 나온다. 움직임이 없어서 돌아가신 줄 알았지만 그러나 살아계셔서 다행이다. 119를 불렀다.

13. 사업제안서 PPT를 마치고 카페에 들렀다. 에그타르트의 부드러운 향과 쇼콜라의 쌉싸름한 향이 섞여 풍미가 더하다.

14. 카페 테이블 위에는 활짝 피어 있지만 향이 나지 않는 장미.. 하지만 생화가 맞다고 한다. 향이 없는 장미라니..

15. 늦은 시간까지 교육이 있어서 야근을 하고 돌아왔다. 고요한 거실을 지나  잠자는 방으로 가서 곤히 잠든 아들(초5)을 안아본다. 정수리에서는 기름냄새, 얼굴에서는 아직 아기향이난다.

16. 샤워부스에서 따뜻한 물을 틀어놓고 포근한 샴푸와 향긋한 바디워시향을 맡으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오늘 하루 동안 맡아본 무수히 많은 향이 내 코를 지나 뇌로 전달되었다. 40대가 되면서 나만의 향기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패션과 취미 등 나의 이미지를 드러낼 수 있지만 나만의 고유한 향은 무엇인지 찾고 싶었다. 돈을 주고 사는 향수가 과연 내 향인가? 아니면 그 향수로 나의 고유한 향이 숨겨지는 것인가?


어찌 되었건, 나이가 들다 보니 혹여나, 남들에게 이상한 냄새를 풍기지 않을까?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요즘 향에 대한 관심은 나에게 위로를 준다. 잠시 손을 들어 손목의 향을 맡으면 위로가 된다. 차에서 가만히 앉아 디퓨져 향을 맡으면 잠시나마 쉼이 주어진다. 그것이 40대의 인생인가 보다.



작가의 이전글 서울국제마라톤 그리고 1년 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