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I. 캐나다 _ 1. 남색수건

by 에리스
2018 Vancouver




2018년 9월, 나는 다시 한국을 떠나 밴쿠버에 있었다.

혼자 낯선 도시로 이동한 건 여러 번 있었지만,

이런 감정은 한 번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밴쿠버의 9월 공기는 차갑고,

햇볕은 뜨거웠다.

모든 것이 선명하게 원래의 색으로 보여서

더 낯설게 느껴졌는데

나는 그런 기분을 설명하기 어려워

엄마 보고 싶은 기분이라는 말을 자주 썼다.

정말 보고 싶어서이기도 했지만

그 말 말고는 달리 표현할 수가 없어서였다.


호주와 하와이에 이어, 서른 살에

나는 또다시 커다란 캐리어를 끌고

별다른 계획 없이 이곳에 와 있었다.


3일만 예약한 에어비앤비는 3층 집의 지하였다.

창문도 없는 작은 방에 매트리스 하나,

그리고 방문 안쪽엔 거대한 정말 거대한 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어딘가 흉측해 보이기까지 한

짙은 핑크색 드림캐처가 걸려 있었다.


악몽을 반복해서 꾸던 며칠 동안,

나는 눈을 뜰 때마다 그 드림캐처와 정면으로 마주했다.

나쁜 꿈을 걸러 준다던 물건이

오히려 악몽을 불러오는 것 같았다.


캐나다는 월말에 집을 구해

다음 달 첫날에 입주하는 문화라는 것도 몰랐던 나는

9월 말 도착하자마자 페이스북과

크레이그리스트에 올라온 광고에

닥치는 대로 메일을 보냈다.


집을 빨리 구해야 한다는 사실이

나를 조급하게 만들진 않았다.

영어를 “How are you” 정도만 할 수 있던 시절부터

혼자 외국에서 일자리를 찾고,

방을 구하며 나를 먹여 살려 온 경험이 있었으니까.


그보다도, 해외 경험에 대한 설렘은 사라졌고

처음부터 또다시 적응해야 하는

앞으로의 삶이 예상되어

시작도 전에 지치는 기분이었다.


첫 집 뷰잉은 비앤비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떨어진 곳이었는데

가는 길에는 동화 속에서나 나올 것 같은

집들이 늘어서 있었다.

버섯 모양의 지붕과 푸른색의 수국,

둥글거나 길쭉한 나무들.

그 사이로 핑크색 외벽의 2층 집이 모습을 드러냈다.


현관에서 터키인 매니저를 만나

인사를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1층의 공용 공간인 부엌과 화장실을

보여줬다. 국적도 나이도 제각각인

10명이 쉐어하는 집이라고 했다.

집안 곳곳에는 사람은 살지만

어쩐지 삶은 머물지 않는 기운이 느껴졌다.


그는 방을 보여주겠다며 나를 지하로 데려갔다.

지하에는 방이 3개, 욕실 겸 세탁실이 있었다.

방이라기보다는 창고나 주차 공간을

억지로 개조해 놓은 형태였다.

월세는 750불. 2층 부엌과 화장실, 세탁실은 공유 공간.

이미 하와이나 호주에서도 비슷한

환경을 겪어 봤기 때문에 놀랍진 않았지만,

비스듬한 계단을 따라 내려가며

이미 이 집은 아니라고 느끼고 있었다.


매니저가 방문을 노크하자

방 옆 욕실 문이 열리며

하얀 김 사이로 방금 샤워를 마친 남자가 나왔다.

파랗게 보일 정도로 하얀 피부와 알 수 없는 문신들.

그리고 허리에 감긴 남색의 두껍고 커다란 수건.

그는 약간 당황한 표정을 감추듯

빠르게 방으로 들어갔다.

그때의 나는 몰랐다.

전혀 인상적이지 않던 그 남색 수건이

오래 눈에 남을 줄은.


잠시 뒤 옷을 입은 그가 나왔다.

나는 미안한 듯 작게 "Hi" 하고 인사했다.

매니저가 그에게 새로운 타투를 했냐고 물었지만

대답하지 않았고 여러 색의 LED 조명이

깜빡이는 방을 무심하게 열어 보여 줬다.

나는 이미 이 집에 살 생각이 없어서

방을 제대로 보지 않았다.

그저 어딘가 부끄러움이 섞인 얼굴을 가진,

록을 좋아할 것 같은 소년이 보였을 뿐이었다.


매니저는 다시 나를 1층 거실로 데려갔고,

보증금이나 집의 시설에 대해 이것저것 설명했다.

그 사이 그 남자가 흑인 친구와 함께

지하에서 올라와 우리 옆에 앉았다.

흑인 친구와 터키인 매니저는

서로 말장난을 치고 있었지만,

동시에 나를 의식하는 게 느껴졌다.

불편한 그들 뒤로 조용히 신발끈을 묶고 있는 그가 보였다.

밝은 곳에서 보니, 어딘가 40대 중년과 7살의 어린아이의

표정을 섞어 놓은 듯한 묘한 인상이 눈에 들어왔다.

매니저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들리지 않았다.


집을 나서려는데 그와 흑인 친구가 함께 따라 나왔다.

그들은 다운타운에 가기 위해 5분 거리의

지하철역으로 가고 있었고,

나는 그 지하철역을 지나 비앤비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가 나에게 물었다.

"Are you going to take the room?"

(그 방 계약할 거예요?)


사실 그의 발음이 정확히 들리지는 않았지만,

나는 느낌만으로 "Hmm…" 하고 망설이며

아마도 아닐 거 같다는 뉘앙스로 대답했고,

그가 "Oh—oh."하고 대답했다.

오의 첫음절이 크게 튀어나오는 오—오였다.

그 소리는 내 머릿속에서 진동처럼 반복되었다.


우리는 지하철역 맞은편 신호등에서 잠시 멈춰 섰고

그가 다시 물었다.

"Where are you going?" (어디 가요?)

"Back to my place." (숙소로 돌아가요.)


그는 부끄러운 듯 미소를 지으면서도

아쉬움이 얼굴 전체에 떠올랐다.

그리고 내 얼굴도 그랬다.

화,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