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카엘이 그의 나라로 돌아간 뒤,
나는 지하방에서 잘 나오지 않았다.
블라인드를 열지 않으면 불빛 하나 없는
깜깜한 방 안에 가만히 누워 있거나,
잠시 은행 계좌를 만들러 가거나,
근처 쌀국수 집에 다녀오는 것이 전부였다.
그게 아니면 침대에 누워
그와 문자를 주고받았다.
그가 떠난다는 문자, 도착했다는 문자,
아빠와 새엄마 집에서 머무르고 있다는 이야기,
오늘은 무얼 먹었고 누구를 만났는지.
우리는 거의 모든 하루를
서로에게 보고하듯 공유했다.
그는 캐나다 밖에서 새로운 비자를 받기 위해
한 달 정도 자기 나라에 다녀와야 한다고 했고,
되도록 빨리 돌아오고 싶다고도 말했다.
우리가 이케아에 함께 가고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낸 지
며칠이 지나지 않아 그는 떠났다.
그날 밤 나를 집 앞까지 데려다 주며
내 방에서 같이 영화를
보고 싶다는 말도 했지만
나는 거절했다.
거절을 하며 마음이 아팠다.
하루밖에 함께 보내지 않았지만,
나는 이미 그를 안아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항상 무언가를 한 그의 하루에 비해
내 하루는 너무 할 이야기가 없어서
부지런했던 척 지어내기도 했다.
플랫메이트들의 소리가 들리는
위층은 일부러 피했다.
주방에 가서 마트에서 산 음식을
내 이름이 적혀 있는 냉장고 칸에
재빠르게 넣고 다시 지하로 내려왔다.
이전 거처였던 하와이에서라면
나는 그들 사이로 들어가기 위해
억지로라도 웃음을 지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럴 힘조차 남아 있지 않은 사람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카페에서 일을 시작했다.
SIN 넘버를 만들러
가던 길에 들렀던 곳이었고,
문에 붙은 구인광고를 보고 이력서를 냈다.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중국인 사장은
단호한 말투로 바로 다음 날 출근해 보라고 했다.
일하는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내내 입꼬리를 올리고 있던 탓에
끝나면 녹초가 되어 있었다.
퇴근해 집 문을 열면
열두 명이 사는 거실에선
웃음소리가 흘러나왔고,
나는 웃는 얼굴을 고정한 채
그 소리를 지나쳤다.
다양한 국적의 플랫메이트들은
대부분 좋은 사람들이었다.
마치 적절한 밸런스를 맞춰
고른 사람들이 모인 집단 같았다.
사람들과의 형식적인 대화가 늘어날수록,
깜깜한 지하방에
하루하루 잠식될수록
미카엘은 더 애틋해졌다.
그는 우리 가족은 이렇다 라는 말을
직접 하지는 않았지만,
말투에서 그가 얼마나 멀리 서 있는 사람인지,
오랫동안 함께 살았다는 새엄마조차
얼마나 남처럼 말하는지를 들으며
그가 그의 나라에서
어떤 마음으로 머무르고 있는지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방 안에는
매니저가 나를 위해 가져다 놓았다는
서랍장 위의 체리색 몰딩 거울이 있었고,
그날 이케아에서 그와 함께 고른
남색 체크무늬 이불과 작은 행거가 있었다.
캐리어에서 옷을 꺼내
행거에 걸다가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한국에서 밴쿠버로 오기 전 산
빈티지 코트 안쪽에
국기 그림과 함께
Made in Belgium이라는 라벨이
커다랗게 붙어 있었다.
나는 그때까지도 미카엘이 정확히
어느 나라 사람인지 몰랐다.
유럽 어딘가의 작은 소도시라는 것만 알고 있었고,
벨기에가 영어로 벨지움이라는 것도
그 라벨을 보고 처음 알았다.
그때도 나는 이미 그를 좋아하고 있었지만
그의 국적조차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이
이상하게도 마음에 걸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 무심함이 조금 흐뭇했다.
벨기에는 초콜릿이
유명하다는 것 밖에 몰랐지만
미카엘이 사는 나라라니
나는 벌써 그 나라가 좋아지고 있었다.
그는 대화할 때
“Oh! Huh~!” 같은 추임새를 자주 썼는데,
그 소리는 한국말의 ‘오~’, ‘우와’와 비슷하면서도
어딘가 더 눌러 담은 느낌이 있었다.
괜히 쿨해 보이고 싶어 하는 사람의
습관 같은 추임새로 들리기도 했다.
내가 “너의 국적을 드디어 알게 됐어!”라며
코트 안쪽 라벨 사진을 찍어 보내줬을 때도,
그는 비슷한 소리를 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