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내 지하방에 애정이 없었다.
돈도 없었고, 애써 꾸며봤자
이 공간을 내가 원하는 곳으로
만들 수 있을 거라는 기대도 없었다.
비스듬한 계단을 하나씩 내려갈 때마다
어둠 속으로 한 칸씩 들어가는 기분마저 들었다.
침대엔 미카엘과 이케아에서 산
남색 체크무늬 침대 커버를 씌워두었고,
체리색 서랍장엔 옷을 대충 던져 넣었다.
사람들의 발이 보이는 창문은
가방에 있던 머플러로 대충 가려놓았다.
그 방은 나를 아무렇지도 않게
방치하던 그때의 내 모습과 닮아 있었다.
미카엘을 내 방에 영화 보자고 초대했다.
여러 플랫메이트들이 드나들고,
얇은 벽 사이로 옆방의 소리가 또렷이 들리는,
내 취향이라곤 한 줄도 적히지 않은 곳.
그렇지만 나는 그를 원했다.
카키빛 머리카락, 팔에 반짝이던 솜털들,
타투로 뒤덮인 말라빠진 그의 등을 안아주고 싶었다.
내가 그때 자주 보던 영화는
하울의 움직이는 성, Her,
아멜리에 같은 영화들이었는데
다운받아 놓은 영화로는
그의 취향을 맞추기엔 한계가 있을 것 같았다.
미카엘처럼 취향이 분명한 사람들 앞에서는
나 자신을 드러내기가 어려웠다.
그가 방문을 노크하자
나는 룸메이트들이 문 근처에 얼쩡거리지 않길 바라며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그는 신고 있던 워커를 벗고 들어오려 했지만 나는 빠르게 그를 안으로 들였다.
그는 워커를 신은 채 내 어둠 속으로 들어왔다.
내가 영화를 켜는 동안 미카엘은
조용히 방 안을 둘러봤다.
그가 매번 입던 카키색 항공 점퍼가
아닌 남색 점퍼를 입고 왔다.
항공 점퍼는 세탁기에 돌렸는데
솜이 다 빠져서 버렸다고 말했다.
나는 사람들의 기분이나 달라진 기색을 금방
알아차리는 편이었는데 그날의 그는 바뀐 점퍼처럼
어딘가 낯설고 차갑게 느껴졌다.
그는 창문을 가려놓은 머플러의
색이 우울해 보인다고 하며
내 공간 평가하는 것 같은 말투를 썼다.
침대 옆 협탁 위에 노트북을 올려두고,
우리는 옆으로 나란히 누워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보기 시작했다.
등 뒤에서 ‘이게 무슨 영화람’ 하는
그의 생각이 전해지는 듯했다.
영화를 끝내지 못한 채
우리는 그 방에서 처음으로 밤을 함께 보냈다.
타투로 뒤덮인 그의 등은 부드럽고 따뜻했다.
새벽까지 침대에 누워 음악을 들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나도 모르게 물었다.
Do you want to go to Korea with me?
우리 한국에 같이 갈래?
한국에 갈 계획 같은 건 사실 없었지만
말이 먼저 튀어나왔다.
나는 그와 함께 있는 다음 장면을
이미 상상해 버린 상태였다.
그는 대답 대신 굳은 표정이었다.
이른 아침, 그는 학생 비자를 찾아가야 한다며
옷을 입고 서둘렀다.
왜 이렇게 일찍 가냐고 묻자 그는 말했다.
“I think we’re on different paths.
Maybe we should stop seeing each other.”
(우리는 서로 다른 길에 있는 것 같아.
이쯤에서 그만 만나는 게 좋을 것 같아.)
왜냐고 물었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