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I. 캐나다_6.싸늘한 등

6. 싸늘한 등

by 에리스
Lonetree,2020



나의 어떤 모습이 그의 따뜻하고 부드러웠던 등을

하룻밤 사이 돌처럼 차갑게 식게 만든 것인지

짐작할 수 없었다.

내가 그렇게 매력이 없었던 걸까.

내 지하방이 초라해 보였던 걸까.

하룻밤 사이에 마음이 식어버리는 사람들에 대해 생각했다.


나무를 타던 그, 잇몸을 드러내며 웃던 표정.

하루 종일 이어지던 대화들을 떠올렸다.

어제까지만 해도 그는 나에게

처음 만난 순간부터 망설일 틈이 없던 사람이었고,

나는 이미 그다음까지 자연스럽게 떠올렸었다.


미카엘은 SNS를 거의 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의 룸메이트의 SNS 스토리에서 그를 찾아냈다.

화면 속에서 그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웃고 있었다.

모자를 뒤로 쓰고 록밴드 티셔츠를 입고,

여자 룸메이트들과 보드게임하는 모습, 맥주 마시는 모습.


하룻밤 사이에 관계는 끝났고,

나는 그의 일상을 훔쳐보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독백처럼 메시지를 보내던 나에게

한 줄의 답장도 하지 않던 그가

그날 밤,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11월의 밴쿠버 밤은 차갑게 식어있었다.

하와이에서 살다 온 나는 겨울옷이 별로 없어

발목이 훤히 보이는 청바지와 반스 단화를 신고

우리가 처음 만났던 공원 앞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멀리서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그가 다가왔다.


SNS에서 봤던 모자를 쓰고 있었다.

내 앞에서는 한 번도 쓰지 않던 것이었다.

모습은 그대로였지만 눈빛은

이미 다른 곳을 보고 있었고,

미소는 사라져 있었다.


그는 자신이 이곳에 살겠다고

결심한 순간들에 대해 짧게 얘기했다.

다시 벨기에로 돌아가고 싶지 않고,

그래서 누군가와 만난다면

이곳에서 사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내가 이곳에 언제까지 머무를지 말한 적이 없었지만

그렇다고 가지 않겠다고 말한 것도 아니었다.


나는 늘 잠시 들렀다 가는 사람처럼 살고 있었다.

가방은 반쯤만 푼 채 지냈고,

미래에 대한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고,

집에 돌아오면 늘 조용히 방 안으로 숨어들었다.

그는 그걸 보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를 붙잡았다.

그를 너무 원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가 떠나면,

버티고 있던 내가 무너질 것 같았고,

다시 그 상태로 돌아갈 자신이 없어서였다.


그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며

“C’est la vie.”

(인생이 그런 거지.)라고 말했다.

미카엘의 눈동자는 더 이상 순수하지 않았고,

말들은 그날의 칼바람처럼 가슴을 스쳤다.


나는 다시 깜깜한 지하방으로 내려갔다.

화,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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