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1.캐나다_7.커피컵 속 와인

by 에리스



그는 여전히 내 집에서 10분 거리의

쉐어하우스에 살고 있었고,

내 하루는 그의 일상을 훔쳐보는 것으로 시작해 끝났다.

처음엔 그의 친구 벤의 스토리.

그다음은 플랫메이트 레이자의 인스타그램.

고맙게도 그들은 매일 미카엘을 등장시켰다.

저녁마다 요리를 하고, 보드게임을 하고,

맥주를 마시며 웃는 모습.

나는 그 화면들을 거의 중독적으로 들여다보며

내 수치심을 자극했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카페에서 일하는 시간을 늘렸다.

출퇴근길엔 늘 어딘가에서 그를 마주칠 것만 같았다.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스치면 나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

그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차 있었다.


카페에선 손을 계속 움직였다.

커피를 만들고, 아무도 시키지 않은

수백 개의 냅킨을 접고, 바닥을 닦고 또 닦았다.

멈추면 생각이 밀려왔다.

밴쿠버에 온 뒤 미카엘 외엔

누구와도 가까워지고 싶지 않았고

좁아진 마음으로 만든 관계 때문인지

그의 단절은 배신보다 수치심으로 남았다.

그래서 나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해야만 내 체면이 남았다.


마리아는 그 시기에 만났다.

콜롬비아 친구로 비슷한 시기에 밴쿠버에 와서

같은 카페에서 일했다. 또래인데도 말투나 태도는

나보다 훨씬 나이 든 사람처럼 느껴졌다.

일하다가 답답한 마음이 올라온 날,

흘리듯 내 상황을 얘기했을 때

조용히 듣고 있던 그녀는 말했다.

“Right now, the most important thing is that you’re safe.”

(“지금 너한테 제일 중요한 건, 네가 안전하다는 거야 “)


그녀 자신에게도 하는 말처럼 느껴졌는데, 그 말 한마디로 숨이 조금 가라앉았다.


밤이 되면 다시 혼자가 되었다.

밴쿠버의 겨울은 매일 비가 내렸고,

카페 일을 마치고 집까지 걸어가는 30분 동안

나는 우산 대신 와인을 들었다.

평소라면 우산을 썼겠지만

드라마 속 실연한 여자는 그럴 수 없었다.

Sia의 목소리는 내 안의 비명을 대신했다.


가끔 와인이 없을 땐 카페에서 가져온 커피컵을 들고

보틀샵에서 와인을 사 컵에 따라 마시며 걸었다.

그게 없으면 하루가 버거웠다.

한 번은 퇴근길에 내 지하방이 아닌 위층으로 올라갔다.

룸메이트들이 클럽에 간다며 떠들고 있었고,

평소라면 그러지 않았겠지만 그날은 따라나섰다.

커피컵 속의 와인을 본 그들은 한동안 나를 놀렸다.

그 뒤로 나는 조용하고 새침해 보이던

동양 여자애에서 편한 친구가 되었다.


그렇게 12월이 지나가고 있었고

영상 속 미카엘의 일상도 계속되고 있었다.

그는 내 생일도, 크리스마스도, 연말도

플랫메이트들과 함께 보냈다.

그 안의 그는 내가 알던 사람보다

더 가볍고 자유로워 보였다.

내가 바라던 모습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게 낯설었다.


나도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었지만

다시 혼자가 되어 방으로 돌아오는 길엔

여전히 그를 생각하고 있었다.




화, 일 연재
이전 06화Part I. 캐나다_6.싸늘한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