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바뀌고 나서도 나는 10분 거리 안에
살고 있는 그를 어디에서도 마주치지 않았다.
그의 플랫메이트 레이자의 SNS를 보는 일은
어느새 하루의 루틴이 되어 있었다.
새로운 일자리와 이사 갈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더라도
여기서 커리어 기반을 마련하고 싶었다.
노트북 화면에는 구직 사이트가 켜져 있었고,
나는 같은 공고를 몇 번째 다시 읽고 있었다.
내가 이곳에 온 이유를 스스로 계속 상기시켰다.
선택할 수 있는 유동적인 삶,
한국이 아닌 곳에서 사진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내 안에 항상 불씨처럼 남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감정에 끌리듯 선택했고,
막연한 희망을 믿었다.
비자 기간이 한정된 외국인으로서
포토그래퍼 같은 직종의 풀타임 일자리를
구하기 어렵다는 건 알고 있었다.
커피숍에서 일하다가 만난 친구들이나 단골손님들에게
포트레이트 촬영을 제안하기도 했다.
밴쿠버에서 프리랜서 포토그래퍼로 살아보려는 시도였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사진은 언제나
상업 사진과는 거리가 있었다.
당장 돈이 필요했고,
파트타임으로 렌트와 생활비를 감당하기엔 빠듯했다.
수십 군데 지원했던 회사 중 한 곳에서 연락이 왔다.
산부인과 안에 있는 작은 스튜디오였다.
갓 태어난 아기의 뉴본 사진을 촬영하는 일이었다.
로컬 회사였고, 인터뷰를 본 뒤 곧바로 트레이닝이 시작됐다.
이사할 집도 구했다.
지하방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고,
그 공원과도 여전히 가까웠다.
동네를 옮겨 새로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지만,
나는 그 동네가 여전히 좋았다.
마리아에게 집을 구했다고 말할 때도 그렇게 말했지만,
그때도 나는 그를 완전히 떨쳐냈다고 할 수는 없었다.
어딘가에서 우연히 마주칠 것 같았고,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일자리를 구했고,
집도 더 이상 지하방이 아닌 햇볕이 드는 2층이었다.
아래층에는 집주인 가족이 살고 있었고,
새로 지은 집이라 깔끔하고 안전해 보였다.
나는 그렇게 내 생활이 안정되어 간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의 SNS를 끊을 수는 없었다.
화면을 넘기면 미카엘은 여전히 그 안에 있었다.
그는 레이자와
내가 그와 해보고 싶던 일상을
매일 함께하고 있었다.
어느 순간 나는 그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
드라마를 보는 시청자가 되어 있었다.
그만큼 그녀는 하루의 모든 순간을 sns에
공유했다.
드라마가 갑자기 끝난 건,
그녀가 자기 나라로 돌아간다는 소식을
스토리에 올렸을 때였다.
플랫메이트들과 마지막 파티를 하는 모습 속에서
미카엘 특유의 나른하고 어딘가 슬픈 표정을 봤다.
나는 그가,
사랑하게 된 여자가 떠날 사람이라는 걸 알아서
한 번도 고백하지 못한 채 보내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상상했다.
다시 혼자가 될 그를 떠올리며 마음이 아팠다.
새로운 일은 예상했던 대로 공장식 사진 촬영이었다.
사수가 알려준 스크립트를 외워
출산 직후의 병실을 돌며 영업을 하고,
갓 태어난 아기를 촬영대에 올리고
달러샵에서 사 온 물건들로 장식해 사진을 찍었다.
형광등 아래에서
비슷한 울음소리가 반복되었다.
하루 종일 비슷한 얼굴과 크기의 아기들을 찍으며
나는 공장에서 아기가 찍혀 나온다면
이런 기분일까 생각했다.
그곳에서 5년 넘게 일했다던 동료는
페루에서 와서 밴쿠버 컬리지에서 사진을 전공한 사람이었다.
이곳에서 포토그래퍼로 일자리를 구하는 건 어렵다고 했다.
밴쿠버에 온 지 얼마 안 된 내가
자신과 같은 일을 한다는 사실이 불편한 듯 보였고,
그가 나의 사수와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도 금세 알아챘다.
어느 날, 카페에서 일하고 있는데
스튜디오에서 연락이 왔다.
나를 고용한 사수가
사장의 허락 없이 채용을 진행한 것이었고,
그래서 고용을 취소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락커 열쇠를 돌려놓으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그곳에서의 일이 좋았던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사진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나를 조금은 안정시키고 있었다.
사람들에게 “사진 찍는 일을 한다”라고
말할 수 있다는 것도 그랬다.
내가 밴쿠버에서 붙잡고 있던
거의 유일한 일이어서
실망은 더 컸다.
락커키를 돌려놓고 돌아오는 길,
공원 벤치에 앉아
한동안 그대로 있었다.
그때 휴대폰이 울렸다.
나는 메시지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미카엘이었다.
“Can we meet for a bit?”
(잠깐 볼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