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I. 캐나다_2.나무타기

by 에리스


며칠 사이 나는 여러 집들을 보러 다녔다.

비앤비를 더 연장하면 비용이 터무니없이

올라갔기 때문에 하루이틀 안에 결정을 내려야 했다.


옵션은 세 개였다.

지하철역에서 멀지만 동양인 여성들만 사는

아주 조용하고 깨끗한 집.

3층집에 인도인 남성들만 살고,

한 뼘 간격으로 침대를 놓고 쉐어해야 하는 방.

그리고 지금은 그 남색 수건의 주인이 살고 있지만

곧 비게 될 그 지하방.

언제부터였는지 모르지만,

나는 안정감보다 리스크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

조금 불편해도, 마음이 움직이는 쪽을 선택했다.


동양인 여성들만 사는 집은 안전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

인도인 남성들만 사는 집은 굳이 감수할 가치가 없었다.

하지만 그 핑크색 집의 지하방은 이상하게 마음이 끌렸다.

이유를 말하자면 논리적이지는 않지만

그 지하방이 그때의 나와 닮아 있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결국 그 지하방을 선택했다.


며칠 뒤, 그 방으로 짐을 옮기고

방 안에 잠시 앉아 있었다.

싱글침대 하나, 서랍장과 작은 행거,

사람들의 발이 보이는 작은 창문 두 개.

나의 타국에서의 삶은

또다시 그렇게 시작되었다.


몸은 피곤했고, 며칠째 제대로 먹지도 못한 탓에

기운이 없었지만 이불을 사야 했기 때문에 밖으로 나갔다.

5분 거리의 지하철역으로 걸으며

집을 보러 왔을 때 그 남자와 나눈 짧은 대화가 떠올랐다.


어디로 이사 갔을까 생각도 잠시,

역 입구 교통카드 충전하는 곳에

터키인 매니저와 그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어색함에 서둘러 카드를 찍고

역 안으로 들어갔다.


마침 열차가 도착했고 문이 열리자

그가 뛰어들듯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니트에 코트까지 들고 나왔지만

그는 반팔에 반바지, 등에 작은 백팩 차림이었다.


그는 처음 물었을 때와 비슷한 톤으로 물었다.

“Where are you going?” (어디 가요?)

나는 정면만 보며 이케아에 간다고 대답했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 같이 가도 되겠냐고 물었고

나는 괜찮다고 답했다.

그는 자기도 이 방으로 이사 오던 첫날

이케아에 가서 이불을 샀다고 말했다.

지하철을 타고 또 버스를 갈아타고, 다시 걸어가던 길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말하자면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당장 덮고 잘 이불이 필요하다는 것과

나를 어색하고 불편하면서도

어떤 알 수 없는 감정이 생기게 하는

누군가가 옆에 있다는 것을 제외하면.


우리는 여러 번 환승을 하고

또 걸어서 이케아의 미로 속으로 들어갔다.

그 안은 그때의 내 기분처럼 어지러웠다.

쇼핑을 마치고 푸드코트로 내려가

그는 미트볼, 나는 생선튀김을 고르고

우리는 처음으로 마주 보고 앉았다.


그의 악센트가 익숙하지 않아

이름은 들었지만 발음하기 어려웠고,

나이도 뭐도 잘 몰랐지만 오면서

그가 흘리듯 말했던 어린 시절

이야기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좋지 않은 가정환경 때문에 십 대 시절을

거의 홈리스처럼 보냈고

자기 나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말.

그 뒤로도 그는 가족 이야기를 할 때

항상 먼 나라 사람 이야기 하듯 무심한 말투를 썼다.


마주 보고 앉아 눈을 바라보는 건

여전히 어색했지만 나는 그를 유심히 관찰했다.

40살과 7살이 미묘하게 섞여 있는 인상과

아주 옅은 카키빛 눈동자,

얼굴과 팔의 주근깨와 이마 주름들,

미색에 가까운 솜털이 햇빛에 반짝이는 것까지.

그는 미카엘이고 스물네 살이라고 했다.


내 나이를 물었지만 나는 괜히 나이를 맞혀보라고 했다.

나는 사람들 앞에서 나를 조금 유치하게 만드는

오래된 버릇이 있었는데 영어 때문만은 아니었다.

조금은 가볍게 굴어야 상대가

나를 편하게 대하는 것을 알아서

몸에 밴 습관 같은 것이었다.

그는 나를 자신보다 한두 살 아래로 추측했다.

내가 그보다 여섯 살이 많다는 것을 듣곤

아이 같은 표정으로 놀라워했다.


나는 어색해서 계속 말을 했고,

그는 내 유치한 주저리를 듣다 말고

잠시 눈을 감고 몇 초 동안 미소를 지었다.

왜 갑자기 눈을 감냐고 묻자 그가 말했다.

“I’m feeling this moment.”

(이 순간을 느끼는 중이에요.)


오글거릴 법한 말이 진심으로 들렸던 건

그의 순수한 표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분명 순수한 사람들을 좋아했지만,

그날은 쉽게 편해지지 않았다.


이케아에서 돌아와 이불을 방에 내려놓고

그가 보여주고 싶다던 집 앞 공원에 갔다.

가로등이 거의 없어 길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어두웠고 하늘을 반쯤 가린 커다란

나무 실루엣들만 보였다.


그는 시멘트 대신 흙길만 골라 걸었고,

걸음은 맞추기 힘들 만큼 빨랐다.

갑자기 자기가 잘 타는 나무가 있다며

공원 한쪽, 끝이 보이지 않는 큰 나무 앞으로 나를 데려갔다.

그는 성큼성큼 팔을 뻗어 올라가더니

어둠 속으로 한동안 사라졌다가 내려왔다.

나는 나무에 매달려 잇몸이 드러나게

웃고 있는 그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그 모습이 매력적이면서도 왜 저러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후 나는 사람들에게

그가 나무 타는 모습에 반했다고 말하고 다녔다.


화, 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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