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기 시작한 이후로도
그 집은 여전히 불편했다.
얇은 벽 사이로 룸메이트의 소리가 선명히 들리고
그의 이름이 새겨진 냉장고 칸은 한 뼘 정도라
요리를 해 먹을 환경도 아니었지만
서로에 대한 감정은 더 애틋해졌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꼈다.
미카엘은 일하러 나가는 날보다
집에 있는 시간이 더 길었다. 일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상황을 답답해하고 불안해했다.
내가 카페 일을 마치고 돌아올 때쯤이면
그는 뒤뜰에 난 창문으로
내가 오고 있는 걸 강아지처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내가 가까이 붙어 있으면 쉽게 잠들지 못했다.
등을 돌리고 누워 굳이 보지 않아도 되는
영상을 틀어놓은 채 그 빛을 보다가 잠에 들곤 했다.
항상 어떤 악몽을 꾸는지 온몸이 땀에 젖어 있었고
넘어지는 것처럼 다리를 움찔거리기도 했다.
돌아누운 그의 등에는
알 수 없는 타투들이 가득했다.
용이나 신화 속에 나오는 인물들 ,
오래된 문자처럼 보이는 것들이 겹겹이 얹혀 있었다.
그가 먼저 잠든 밤에 나는 자주 그것들을 들여다보며
미카엘의 머릿속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 걸까 생각했다.
허리 쪽에는
“You get what you give.”
라는 문장이 작게 새겨져 있었다.
어느 날, 카페에서 일하던 도중
이민 법무사를 만나고 오겠다던 미카엘이 찾아왔다.
원래도 하얗던 그의 얼굴은
파랗게 질린 것처럼 창백했고
세상이 끝난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는 지금 일하는 회사에서
비자 스폰서를 받아 캘거리지역으로 가면
계속 일을 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고,
우리는 함께 가기로 했었다.
그런데 처음부터 서류가 잘못되어 있었고
더 이상 비자를 연장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나는 함께 일하는 친구의 소개로
다른 이민 법무사를 알게 되었고 그와 함께 찾아갔다.
그는 영주권을 받고 싶다면
지금은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고
캐나다를 잠시 떠났다가 돌아와야 한다고 말했다.
그때쯤 나의 비자도 끝나가고 있었다.
우리는 연인이라는 사실을 설명했고
둘이 함께 비자를 받으려면
잠시 국경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돌아와야 한다고 했다.
함께 산지 석 달쯤 됐던,
처음으로 함께 보내는 크리스마스이브에
우리는 당장 연말에 어디로 가야 할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벨기에와 한국에 들러
각자의 가족들에게 인사를 하고
다시 캐나다로 돌아오기로 했다.
나는 친구에게 이 사랑이 전쟁 속에서
이어지는 것 같다고 말했었다.
그와 내가 어디로도 갈 수 없어
윌로우 나무 밑으로 비를 피했던 그 밤처럼
우리는 여전히 어디로 흐를지 모르는 채 함께였지만
나는 이 시간이 끝나지 않기를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