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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한 이유가
누군가에 대한 미움이었다니

미움만 사라지면 되지 왜 당신도 사라지려나

by 장시무

오래전 일이 문득 떠올랐다.

인생의 연륜이 그득한 분과 대화를 나누었다. 결론은, 이제 떠나려 한다는 것이다. 자기가 원래 있던 곳을 떠나온 이유가 어떤 미운 한 사람 때문인데, 그가 이제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간다는 것이다. 돌아가는 이유는 아주 정당하다. 내가 미워했던 사람 때문에 떠날 수밖에 없었는데 그가 사라졌으니, 돌아가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당연히 돌아가야지.

그분 입장에서는 십분 이해된다.

그런데,

그에게는 '돌아감'이지만, 떠나 온 이후로 관계를 맺은 사람에게는 '헤어짐'이다. 이건 단순한 말이 아니라 '이별 통보' 아니던가. 이런 질문이 스멀스멀 기어오른다.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들의 동력은, 그를 향한 당신의 미움이었나? 우리가 함께 한 시간의 소중함이었나?' 단 한 번도 담을 생각이 없었던 의심이 든다. 결국 잠시였지만 우리를 하나 되게 한 것은 '미운 그 사람'이니, 이 모든 감정의 소용돌이의 근원이 '당신이 미워했던 그 사람'이 되는 건가? 기억해 보니, 그 사람 때문에 힘든 이야기를 얼마나 들어주고 위로해 주었던가!


내가 잘 알지도 못하는 그 사람이 내 인생에 이렇게 영향을 미치다니. 소름이 끼친다.


아직은,

뭔가 이 상황을 정의 내리기엔 내 언어가 짧다. 내 경험이 일천하다. 화도 아니다. 멍하다. 좋은 마음으로 헤어지는 것도 있을까? 연인관계만 사랑과 정을 이야기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처음에는 자기 목적대로 움직이는 사람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을 두고 보니, 이해된다. 아프지만 이해된다. 의도치 않아도 누구의 기쁨이 다른 누구에게는 슬픔이 될 수 있는 게 우리가 사는 삶이다. 나도 내 인생의 궤도를 따라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했을 터, 그 안에 미소로 떠나보내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며, 아쉬움과 눈물로 뒷모습만 바라본 사람도 있지 않았겠나. 어찌 우리가 그것을 다 헤아리며 살까?


또 하나 내 인생노트, 배움 칸에 한 줄 채워진다. 세상에 사람을 움직이는 동력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미움'도 그중 하나다. 아주 강력하다. 그리고 관계라는 것이 그물망처럼 엉켜 있어서, 내가 모르는 사람이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것을, 그것을 모르고, 또 알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그런 미약한 존재가 인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미운 사람이 사라져라 함께 바랬는데, 응답의 결과가 헤어짐이라니. 이 아이러니 한 인생.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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