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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운경 Sep 18. 2024

시경 속의 피어나는 꽃

박달나무 추적기

다른 나무는 다 물에 도 오직 박달나무만이 비중이 높고 무거워 물에 가라앉는다고 한다.   박달나무가 이렇게 단단하고 강한 것의 표상이 되고 보니 사람들은 이 나무를 수레바퀴를 만들거나 단단한 농기구를 만드는데 긴요하게 사용해 왔다.  실제로 박달나무 비중이 다고 하는 활엽수인 자작나무 단풍나무, 오리나무, 느릅나무 그리고 침엽수인 소나무 편백보다 높게 나타난 연구결과가 있다. 


박달나무를 노래한 멋진 청년 백석은 영변에 약산 진달래꽃을 노래한 김소월과 같은 고향 평안북도 정주태생이다. 비록 북한에서 활동하여 오랫동안 그의 시가 금기시 되어왔지만 그의 토속이고 고어와 방언을 적절히 사용한  시는 서정시의 새로운 지평을 열기도 한 천재 시인이었다. 백석의 시 중 '나무 동무 일곱 동무' 중에서 박달나무의 쓰임새에 대하여 노래한 시 일부분을  보  박달나무가 연장이나  농기구로 사용된 것을 보고픈 북녘의 전원 풍경과 함께 감상해 볼 수 있다.


"박달나무는 말하였네―

(나는 커서/우리 외삼촌처럼/밭갈이 연장 되고파.)

 (생략)

그리하여 박달나무는/평양 농기계 공장 들어가/말쑥하게 다듬키워 보섭채 되어/느림줄 멋지게 허리에 달고/연안벌 넓은 벌에 해가 맞도록/제나라 살진 땅을 갈아엎네"

*보섭채:보섭(보습의 방언)을 지탱하는 나무.


나의 조부와 부모님 고향  평안남도 성천군 통선면 하리였다. 아버지가 평양에서 상업학교를 다닌 연유로 나는 늘 북한의 성천과 평양을 중심으로 한 주변지역의 산야에 관심이 많았다. 어머니는 정식으로 배우지 못하여 심훈의 상록수에 나오는 배경처럼 일제강점기 청년들이 도시에서 농촌봉사를 나와 가르쳤을 때 한 구석에서 끼여 겨우 한글을 터득한 것이 배움의 전부였다. 그나마 일제강점시대에 농촌계몽운동의 하나였던 조선일보의 문맹퇴치운동과 동아일보의 브나로드(만중 속으로) 운동의 영향으로 겨우 한글을 배운 경위였다. 큰 형이 어디서 구해 온  북한지역의 50,000/1 지도로 나는 어머니가 일러주는  대동강의 지류인 하천이 있는 옛 고향의 산세를 지도로 확인하여 가며 어머니에 고향의 향수를 조금이나마 느끼게 해 주곤 했다. 내가 백석 관심을 가지고 그의 시집을 한 권 소유하고 있는 이유기도 하다.


박달나무의 단단함을 일찍이 고래부터 모를 리 없어 시경 <<위풍 >> <벌단伐檀>에 박달나무로 수레바퀴를 만든다는 노래 한 구절을  들어보자.


박달나무 베어서 황하 가에 쌓았네 / 황하의 물은 맑고 물결이 이네 / 농사도 안 짓거늘 삼백 전 벼 웬 말이며

사냥도 안 한 터에 담비 가죽 왜 걸렸나 / 군자들이여 일 않고 먹으면 어떻게 하나

(생략)

바퀴 할 나무 베어 황하 가에 두었네 / 황하의 물은 맑고 잔물결 이네 / 농사도 안 짓거늘 삼백 균 벼 웬 말이며 / 사냥도 안 한 터에 메추리가 왜 걸렸나 / 군자들은 어찌해서 일 않고 먹나 (시경강설, 이기동)


예부터 단단한 박달나무 수레바퀴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시경은 말해주고 있다. 또한, 예나 지금이나 가렴주구(苛斂誅求)가 주특기인 부패한 관리는 얼마든지 있어  일을 하지 않고 노니는 것은 당연지사요 온갖 수탈을 일삼아  백성들의 삶을 궁핍하고 피폐하게 했다는 것을 시경은 말해주고 있다. 


시경 위풍(魏風) 석서(碩鼠큰쥐)에 세금의 명목으로 수탈을 일삼는 한 구절이 재미있다. 부패한 관리를 도적보다 못한  큰 쥐에 비유한 것이 매우 통쾌하다.


쥐야 쥐야 큰 쥐야 나의 기장 먹지 마라 / 석삼년을 섬겼건만 나를 아니 돌봐주네 / 이제 그대 떠나서 저 즐거운 곳에 가리 / 즐거운 땅 그곳에는  살 곳 있으리라(시경강설, 이기동)


힘없는 백성을 수탈하는 건 조선왕조 500년 내내 있었고 조정에서는 끊임없이 가렴주구를 일삼는 부패한 관리와 처리에 대한 논의가 있어왔다. 의사당에서 이념 논쟁과 정쟁을 일삼는 국회의원들에게 주어지는 각종 특혜와 재물이 하루하루 힘들여 가며 생활하는 자영업자 및 근로자의 얇은  월급봉투에서 나오는 것임을 볼 때 현대판 진화된 가렴주구가 아니고 무엇일까.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 남의 재물을 탐하는 건 오히려 자연법칙에 가까워서 고래로부터 늘 있어왔던 터라 어찌할 수 없는 노릇인가 보다.


한편, 시경 <<대아>> <대명大明>에 박달나무가  수레바퀴로 쓰이고 있음이 확인다. 주나라의 무왕과 문왕 그리고 태공망의 업적과 활약이 어우러진 흥미 있는 대목이다. 


드넓은 목야는 아득하게 펼쳤는데 / 박달나무 수레가 찬란하고 화려하네 / 수레 끄는 네 필 말들 씩씩하게 달리는데 / 태사인 태공망은 새매 날 둣 날렵하여 / 무왕을 돕는 솜씨 마음껏 발휘하여 / 은나라의 군사들을 마음대로 무찌르네 / 청명한 아침 되니 밝은 태양 떠오르네(시경강설, 이기동)


상나를 멸하고 주나라를 세운 문왕과 무왕의 업적이 시경에 자주 등장한다. 문왕은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그의 아들 무왕이 주나라를 세우는데 커다란 기초를 제공한다.  그는 유능한 사람들을 등용하고, 백성들의 삶을 넉넉하게 해 주는 등 선정을 베풀어 백성들의 흠모와 지지를 받은 군주였다. 이 시는 문왕 이후 그의 아들인 무왕이 강태공으로 알려진 태공망의 도움으로 주나라 건국에 일등공신이 된 이야기를 노래한 시다. 시경은 당 시대의 백성들의 삶과 정신세계를 읽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재미있는 역사의 이야기도 들려주곤 한다.


좌로부터: 까치박달나무, 물박달나무, 박달나무 : 모두 자작나무과의 수목으로 미상화서의 꽃차례를 보여주고 있다.

내가 박달나무에 깊은 관심을 가진 것은 사실 단단한 목질에 연유함이 아닌 박달나무의 꽃차례에 있었다. 유이화서(미상화서)라도 불리는 꽃대의 긴 축에 촘촘히 늘어지듯 피어나는 꽃차례는 상당한 호기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사실 자연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은 마치 서커스를 보는 듯 신비롭고 기이하며 환상적이다. 특히 식물에서 볼 수 있는 모든 다양한 모습은 어떻게 생긴 것에 상관없이 모두 의문을 품게 만든다. 우주탄생의 서곡인 빅뱅 이후 수십억 광년을 지나 온 빛으로 아득한 은하를 관찰하는  신비와 수억 년 이상의 진화를 거친 우리 눈앞에 펼쳐진 식물의 경이는 크게 다르지 않게 우리에게 호기심과 경외감을 선사한다. 그렇지 않다면 세상에 모든 자연현상에  무슨 재미와 살펴보는 보람이 있단 말인가.  


이 미상화서를 영어로는 catkin이라고 하는데 그 어원이 흥미롭다.  Oxford English Dictionary에 따르면, catkin이라는 단어는  버드나무와 다른 식물의 솜털 같은 꽃차례에 사용되는 네덜란드어 "katteken"(새끼 고양이)을 번역하여 만들어낸 것으로, 영어로 처음 등장했다고 한다.

그림 좌: 버드나무의 꽃. 마치 우측의 가지에 매달린 고양이와 흡사하다, 우:고양이가 버드나무의 꽃과 같이 보이는 삽화가 흥미를 끈다.

러한 유이화서의 꽃차례는 조록나무아강의 참나무과와 자작나무과 , 그리고 버드나무과와 같은 한정된 수목에서 발생하는 멋진 현상이다. 조록나무아강은 주로 꽃잎은 없고 작은 꽃으로 이루어진 유이화서를 가지고 있는 것이 큰 특징이다. 박달나무는 조록나무아강의 자작나무과 식물로 자작나무과는 역시 수꽃이 유이화서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유이화서는 원추화서로 달리는 이나무(Idesia)에서 진화되었을 수 있다고도 식물학자들은 생각하는데 최초의 유이화서는 지금과 같이 길지 않고 작게 시작했을 거라고 추측한다. 러한 유이화서의 진화는 최소한 두 번 이상의 참나무과 식물과 버드나무과의 식물에서 수렴진화(생명 공통의 조상이 없는 비등한 속성을 띠는 종이 비슷한 환경 조건에서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생존을 유지하는 독립적 진화:네이버사전) 되었다고 식물학자들은 추측한다.  유이화서는 버드나무에서와 같이 곤충에 의해서 수분되기도 하나 보통은 많은 포자를 이용하여 바람에 의존하여 수분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이화서와 같은 가지를 늘어뜨려 수많은 포자를 형성하여 바람에 날리는 방법운 상당히 효과가 있다고 본다(주1).


나는 박달나무를 찾아보기로 했다? 인터넷을 샅샅이 뒤져보니 서울 안산 중턱에 어느 지점에 있다고 해서 3번을 찾아가 보았으나 허사였다. 나무가 많기로는 이 만한 곳이 있을까 홍릉숲에도 몇 회 찾아보았지만 물박달이요 까치박달만이 약올리 듯 서있다. 심지어 광릉숲에서도 눈을 밝히고 찾아보았으나 역시 허사였다. 나무가 많다고 하는 창경궁에도, 서울의 궁궐 숲 어디서도 볼 수 없었다. 도대체 박달나무는 어디에 있다는 말인가?


박달나무가 소리도 없이 나를 찾아온 것은  2024년 뜨거웠던 8월이었다. 5인의 자연환경해설사 모임 중  낙서를 시 쓰듯 하는 L이 양구 펀치볼투어를 제안하였고 전원에서 사색을  즐기 낭만적 취향인 C의 자동차로 언제나 생생하고 풍부한 들판을 기억하고 있는 H와 떠나게 되었다. 1148미터의 도솔산을 비롯한 연봉들이 펀치볼을 호위하듯 둘러 에워싼 아래  펀치볼은 평화롭게 누워있었다. 펀치은 DMZ가 바로 앞인 최전방지역임에도 지극히 평화롭게 느껴지는 마법을 부리는 양 장관의 풍경을 보여준다. 박달나무는 이 깊고도 울창한 숲 속에 의연히 버티고 서 있었다. 태고의 자연, 박달나무와의 조우, 이렇듯 박달나무는 내게 모습을 보여주었다.

자작나무는 긴 꽃차례를 아래로 드리운다

자작나무과인 박달나무일본에서는 오노오레감바(()라고 한다. 오노(ノ)가 곧 도끼의 뜻이고 오레(オレ/折れ) 곧 부러짐의 뜻이요 간바(バ)는 자작나무라는 뜻이다. 한자로도 斧(도끼 부)折(부러질 절)樺(자작나무 화 )로 쓰여 박달나무가 자작나무과임을 시사한다. 이렇듯 도끼도 부러뜨릴 정도로 강한 박달나무라 '박달나무도 좀이 슨다' '딱딱하기는 삼 년 묵은 물박달나무 같다' '문경새재 박달나무는 홍두깨 방망이로 다 나간다' 등 다양한 속담이 전해진다. 박달나무의 단단함은 그 쓰임새도 많아 수레바퀴나 다듬잇방망이, 그리고 참빛을 비롯하여 건축과 가구재로도 다양하게 쓰이고 있다. 필자가 박달나무를 그렇게 찾아도 보기 어려웠던 이유가 박달나무의 다양한 쓰임새로 남벌되어 지금은 박달나무를 쉽게 볼 수 없는 나무가 되어버린 것이다.  오늘날, 식물을 대하는 인식이 많이 바었고 신단수(神檀樹)와  민족의 나무로도 알려져 있는 만큼 우리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나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주1)(Evolution of Catkins: Inflorescence Morphology of Selected Salicaceae in an Evolutionary and Developmental Conte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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