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경 속에 피어나는 꽃

전나무와 함께하는 침엽수

by 전운경

전나무 하면 오대산 월정사길과 광릉숲의 하면서도 폭포수 같이 쏟아져 내리는 듯한 푸른 전나무숲이 떠오른다. 수형으로 보아도 원추형의 하늘을 찌르는 수려한 모습은 사시사철 언제 보아도 흐뭇한 기분이 감돈다. 숲해설가로서 탐방객에게 식물의 진화에 대한 설명을 즐기는 나로서는 전나무를 포함하는 침엽수에 관심이 깊어져갔다.


겉씨식물(밑씨가 씨방 안에 있지 않고 드러나 있는 식물)인 침엽수는 꽃을 피우는 속씨식물( 꽃식물 가운데 밑씨가 씨방 안에 싸여 있는 식물)에 비해 여러 가지 측면에서 다른 점을 보여준다. 먼저 항렬로 치자면 나자식물인 침엽수는 속씨식물에 비하면 무려 약 1억 5천만 년이나 먼저 육상에 모습을 나타낸 대선배다. 비록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침엽수가 38% 이상을 점유하며 33%에 그치는 활엽수보다 우위를 차지하고는 있지만(산림청 2020 산림기본통계) 번식에 있어서 보다 효율적인 속씨식물의 등장에 그만 침엽수는 그 설 땅을 잃어버리는 추세에 있다. 지금은 세계적으로 육상식물의 90% 이상을 속씨식물이 점유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2050년에는 소나무를 볼 수 없을 것이라는 뜨끔한 말도 전해온다. 침엽수는 점차적으로 지구 온난화 등의 영향으로 북쪽으로 밀려나가고 있는 것이다.


꽃을 피우지 않는 침엽수에 비해 속씨식물은 꽃을 피운다. 이것이 아마도 두 식물의 가장 뚜렷한 차이일 것이다. 침엽수가 속씨식물에 자리를 내어주는 주요한 이유로는 수분에 있어서 바람에 의존하는 침엽수에 비해 속씨식물은 곤충이나 동물이 직접 수분에 조력하기 때문에 매우 효율적이고 성공적인 번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침엽수의 수포자가 바람에 몸을 싣고 암꽃에 안착할 확률은 속씨식물의 그것에 비해 극히 적다. 수분에 실패한 포자는 2~3일 이면 그 수명조차 다하여 번식이 용이하지 않다. 이러한 서로 다른 수분의 방식이 속씨식물이 침엽수를 밀어내고 90%의 점유를 차지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중생대 3백만 년 전에 기후가 따뜻해짐으로 침엽수는 점차 변방으로 밀려나 기기 시작했다. 중생대 백악기(1억 4천5백만 년 전~6천6백만 년 전) 동안에는 꽃피는 식물(속씨식물)의 세포가 작아지기 시작하고 빠른 세포분열이 가능해졌다. 그 결과 잎에 상당한 수의 세포가 가해저 광합성이 증대하여 그 세력을 더 힐 수 있었다. 침엽수 지대가 높은 곳이나 북쪽으로 후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추운 북쪽지방지대가 높은 지역에서는 쥐라기(2억 년 전~ 1억 4천5백만 년 전) 말기의 침엽수의 화석이 많이 발견되고 있다. 소나무, 가문비나무, 전나무, 낙엽송,에 이어 노간주나무, 사이프러스(cyprus)가 뒤를 이었다. 비록 침엽수가 꽃피는 식물에 압도적으로 밀리기는 해도 아직도 북반구의 대부분은 침엽수림이 건강하고 울창하게 자라고 있는 것이다.


침엽수가 춥고 황량한 지역에서도 살아남고 울창한 숲을 이룬 배경에는 침엽수 나름대로의 복안이 있었다. 길고 뾰족한 잎과 큐티클로 무장한 침엽수의 잎은 수분을 상실하지 않고 건조한 환경에서도 견딜 수 있었다. 관다발 시스템에 있어서는 속씨식물의 보다 넓은 도관(속씨식물의 물관)에 반해 침엽수는 매우 좁은 가도관(겉씨식물이나 양치식물의 물관부에 있는 주된 요소)을 가지고 있다. 좁은 가도관은 부에 기포가 생기더라도 아주 작은 물방울이기 때문에 쉽사리 막히지 않아 가도관이 폐색 되는 색전증에 대항한다. 만 아니라 침엽수의 가도관 벽은 매우 두터워 파손되는 일이 드물다.

바늘잎은 활엽수에 비하여 바람에 저항성을 가진다

침엽수는 엽록소(chlorophyll)를 보호하는 유익한 분자구조를 가지고 있어 엽록소를 보호하여 겨울에도 광합성을 유지한다. 이에 반해 대부분의 속씨식물은 겨울에 잎을 다 떨쳐버려 봄에 다시 잎을 만들어 하므로 광합성을 준비하는데 시간 더 필요하다. 거칠고 황량한 암석이나 토양 등에서도 잘 견디는 침엽수는 귀중한 물을 구하는 데 있어서도 짙게 깔리는 안개를 이용할 줄 안다. 뾰족하고 기다란 바늘잎에 달라붙은 수증기는 보다 효과적으로 바늘잎의 한쪽에 물방울을 생성하게 해 준다. 가령 활엽수의 넓은 잎 수증기가 가라앉아도 물방울이 되기 전에 증발해 버 물로 사용하기 용이치 않다. 침엽수는 처음부터 뾰족한 잎을 가지고 있었을까. 조상 침엽수는 현대 양치류와 비슷한 잎을 가지고 있었고 더 넓고 평평했을 것으로 여겨진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침엽수는 특수한 바늘 모양 또는 비늘 모양의 잎을 발달시키는 과정을 겪었다.


그렇다면 멋진 침엽수는 언제부터 생겨난 것일까? 몹시 궁금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4억 5천만 년 전 바다로부터 육상으로 진출한 최초의 식물은 이끼였다. 이후 4억 2천만 년 전에 나타난 관다발식물에서 시작하여 3억 7천만 년 전의 종자식물을 거쳐 원시나자식물을 지나고 종자고사리가 출현하였다. 가장 먼저 지구상에 나타난 침엽수로는 고생대 석탄기 말기인 3억 년 전에 나타났다. 종자고사리로부터 진화한 Walchia(왈치아)는 최초 침엽수 속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어서 페름기 초기에는 Voltzia(볼트지아)가 나타났으나 지금은 모두 멸종되었다. Walchia는 독일의 동식물학자로 이고 Voltzia는 프랑스의 지질학자의 이름을 각각 붙인 것이다. 현존하는 침엽수는 페름기 말기에서 쥐라기에 걸쳐서 볼트지아 속으로부터 진화하여 중생대 기간 동안에 번성하였다. 그러나 언급한 대로 백악기에 와서 꽃피는 속씨식물의 등장에 침엽수는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현재 한반도에 자생하고 있는 소나무속은 중생대 백악기에 황해도와 전북 등지에서 분포하였고 오늘날 다양한 종으로 진화하였다. 전나무속은 중생대 백악기에 출현한 이래 홀로세까지 살아남았다(한반도에 자생하는 침엽수의 종 구성과 분포, 공우석)


Walchia(좌), Voltzia(우) 는 각각 초기 침엽수의 조상 화석으로 생각되어진다. (사진 Wikipedia)

전나무는 소나무과의 전나무속 식물로서 역시 침엽수로써 50종 이상의 전나무(속 Abies)는 주로 북미, 유럽, 아시아를 포함한 북반구에서 발견다.

그럼 시경에는 전나무가 어떻게 소개되고 있나 살펴보자.


시경 <<국풍>> <위풍衛風> 죽간(竹竿)에 우리와도 너무 흡사한 정서를 가진 시가 전한다. 시경을 읽다 보면 우리의 정서에 부합하는 이야기들이 너무나도 친근하게 다가온다는 것을 느낀다. 복잡하고 난해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소박하고도 가슴을 울리는 공감을 전해준다. 이미 시집을 와서 친정에도 쉽게 갈 수 없고 옛 고향생각에 아련히 잠기는 여인의 모습은 우리네 여인들의 발자취와 크게 다름없다.

*竹竿:낚시대


휘청휘정 낚싯대로 기수에서 낚시하네 / 두고 온 님 그립지만 멀어서 갈 수 없네

원천은 왼쪽 기수는 오른쪽 / 여자가 시집가면 부모형제 멀어지네

기수는 오른쪽 원천은 왼쪽 / 싱긋 웃는 고운 웃음 걸음마다 패옥 소리

출렁이는 기수 물에 회(檜)나무 노 소나무 배 / 수레 타고 나가 놀아 나의 시름 씻어보자

(시경강설, 이기동)


시에서 회나무의 회(檜)는 본디 오래전부터 중국에서는 향나무를 칭한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이 檜를 전나무로 해석하여 왔다. 향나무나 전나무나 모두 침엽수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나무로 이해하여 왔으므로 여기서는 檜를 전나무로 하여 글을 쓰는 것으로 하겠다.


전나무는 일반적으로 시원한 기후를 선호하며 종종 산악 지역에서 발견된다.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전나무는 러시아의 우수리강 주변의 우수리란드와 중국 만주지방의 해이룽장성, 지린성 그리고 요녕성에서도 볼 수 있다. 곧게 자라며 아름다운 수형을 자랑하는데 보통의 침엽수와 마찬가지로 추운 곳에서 아주 잘 자란다. 특이한 것은 전나무의 암꽃은 나무의 가장 윗부분에서만 달려 솔방울도 꼭대기에만 달리다 보니 좀처럼 구경하기가 쉽지 않다. 전나무의 열매는 소나무 열매와는 확연히 다른 질감과 느낌을 준다. 녹색의 큰 기둥과도 같은 열매는 마치 커다란 건축물의 열주와도 같은 느낌이다.

침엽수의 솔방울도 몹시 흥미를 유발하는 기관이 아닐 수 없다. 씨를 보호하기 위한 몸부림이라고 할까. 솔씨 하나라도 빠질세라 솔방울의 인편이 마치 캥거루 새끼를 뱃속에 집어넣고 다니며 안전할 때 놓아주는 듯 애틋한 모성애가 느껴진다. 각 인편은 왁스코팅이 되어 있어 바람이나 비 혹은 눈 등 여러 가지 자연환경에 대하여 보호기능이 있다. 애써 힘들게 키운 자식을 다 내보내고 홀로 집을 지키는 우리네 어머니와도 같이 전나무의 솔방울은 씨를 다 날려 보내고 위태롭게 겨우 몸을 지탱하고 있는 듯하다.

DSC09497.JPG 전나무의 씨를 품고 있던 인편이 바람에 날려 기둥(축)만 가까스레 남아있다.

그런데 이러한 솔방울이 속씨식물의 꽃의 진화에 관여하였다고 하니 놀랍고 신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겉씨식물은 구과식물과 소철류를 포함하는 씨앗을 맺는 식물 그룹으로 생식 구조로 구과 곧 솔방울을 생산한다. 겉씨식물 구과에서 발견되는 기존 유전 프로그램에서 최초의 꽃 식물이 진화하여 오늘날 우리가 보는 다양한 꽃 식물로 발전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겉씨식물 구과에 있는 유전 프로그램이 수정되어 최초의 꽃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National Science Foundation,December 14, 2010,What 'pine' cones reveal about the evolution of flowers)

(좌) 전나무의 솔방울은 마치 거대한 열주의 기둥과도 같아 보인다. (우) 전나무의 넓은 부채모양의 열편과 날개 달은 씨앗

진화라는 것이 어느 목표를 두고 진행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다만 유구한 세월의 자연환경 속에서 스스로 갖출 것을 준비하고 필요 없는 것을 떨쳐버리기도 하는 것이니 앞으로도 식물이 먼 미래에 어떠한 모습으로 변할지는 예측하기 힘들다.


그러나 매우 확실한 건 말할 수 있다. 나무와도 같은 침엽수의 기원이 여러 단계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고 기묘하게 씨를 감싸고 때를 맞춰 방사하는 원추형의 솔방울도 신기하기 그지없다. 이러한 솔방울에서 속씨식물의 진정한 꽃이 생겼다는 것에는 소름이 돋는 듯한 놀라움과 경외가 느껴지고 이는 곧 커다란 즐거움으로 변하는 기쁨을 만끽해 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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