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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라토너 거북 맘 Nov 20. 2021

담력 훈련

운동/러닝 이야기

기다리던 토요일 새벽 4시다.

'오늘은 좀 한적한 곳으로 가볼까.'


차를 몰고, 아직 잠에 빠져있는 깜깜한 도로를 지나

사이판에서 가장 외진 곳인 최북단으로 향한다.


달빛이 참 따스하게 느껴진다.

새벽바람도 달콤하다.

너무 조용해서 아스팔트 위에 바늘 하나만 떨어뜨려도

새벽의 적막이 깨져버릴 것처럼 깊은 고요함이다.


부지런한 새벽바람이  이름 모를 나무와 풀들을 깨우자 '스스스' 하며  기지개를 켠다.


아무도 없는 아스팔트 위를 달리는 나를 따라오는 건

외로운 그림자 하나와 오늘따라 유난히 밝은 달 하나뿐.


풀숲에서 간간이 들려오는 부스럭 소리는

모르긴 해도 사자나 호랑이는 아닐 것이다.

그럼 된 거다.


여긴 2차 세계 대전의 격전지였던 장소라

바다로 뛰어들어 자살한 일본군들부터

전쟁통에 억울하게 죽은 영혼들이 많은 곳이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근데, 왜 하필 그 이야기가 지금 이 순간 생각나느냐 이거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5킬로 거리를

평소보다 조금 더 속도를 내서 달렸다.

절대 겁이 나서 그런 건 아니다.


'급수 조끼에 작은 물병 하나만 들었을 텐데 왜 이렇게 무거운 거야.'

순간, 머리카락이 쭈뼛하게 서는 느낌이 든다.

'누가 내 등에 업힌 건가? 아님 뒤에서 누가 잡아당기고 있는 건가?'

젠장, 돌아보면 안 된다.

이런 경우, 절대 돌아봐서는 안 되는 거다.


'오오, 기록이 나쁘지 않은데?'

기록 단축을 위해 종종 이 시간에 여기 와야겠다고 생각한다.


아직 한참 어두운 새벽에 러닝을 즐기는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이런저런 사색에 빠질 수 있는 완벽한 시간이고

서서히 밝아오는 하늘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둠 속에서 조금씩 커지는 한 줄기 빛이

마치 내게 희망과 에너지를 주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아니, 아무도 없는 그 새벽에 혼자서 안 무서우세요?"

토요일 새벽 러닝을 마치고 항상 들르는 커피숍 사장님의 질문이다.


"아니요, 뭐 그다지... 오히려 거기서 사람을 만나면 그게 더 무섭죠."

그러자 사장님은 일리가 있는 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향긋한 아이스커피를 내민다.


러닝 훈련이 아닌, 담력 훈련을 한 것 같은 느낌이 제법 짜릿하다.

다음 주에도 예약 확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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